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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정후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슈퍼스타였던 아버지를 둔 덕분에 감내해야 할 것이 많았다. 그는 “색안경을 쓰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많았다. 경기를 뛰어도, 상을 받아도 ‘아빠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내가 잘하면 ‘이종범 아들인데 저 정도는 해야지’라고 했다. 초등학교 5∼6학년 땐 너무 힘들었고, 내색할 수도 없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프로 유니폼을 입은 이정후는 조금씩 아버지의 후광을 떨쳐냈다.
“프로에 와서 너무 행복했다. 프로는 내 이름으로, 이종범 아들이 아닌 이정후로 모든 것을 평가해줬기 때문이다. 웬만한 것으로는 아버지 이름을 지우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MVP 같은 큰 상을 꼭 받고 싶었다. 그러면 그 그늘을 지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상식에서 그런 말을 하고 싶었고, 타이밍도 딱 맞았다.”
물론 이정후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아버지 이 코치다. 사실 이 코치는 고생길이 뻔하기에 야구를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야구 배트를 잡았고, 마침내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로 우뚝 섰다.
“이런 부모님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버지께선 내게 일절 야구 이야기는 안 하신다. 못했을 때 선수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아시니까 그랬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부모님의 간섭에 힘들어했을 때, 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야구를 잘한 우리 아빠도 내게 간섭을 안 한다. 너희 부모님을 꼭 만나서 내가 우리 아빠 이야기를 하겠다’고 한 적도 있다.”
이 코치는 보기보다 장난기가 많은 아빠다. 때로는 아들과 티격태격하고 때로는 격의 없이 웃으면서 친구처럼 지낸다.
“한번은 경기가 안 풀려 다소 풀이 죽어 왔는데, 아버지로부터 SNS 메신저로 유튜브 영상 링크가 왔다. TV 방송에서 웃긴 장면을 모아 놓은 것인데, 보면서 배꼽을 잡았다. 아버지는 제게 늘 이러셨다. ‘잘 안 돼도 멀리 보고 가는 거야’라는 이 말이 힘이 됐다. 아버지는 제가 야구를 하는 이유다. 아버지를 보며 야구를 시작했고,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그러나 최근엔 여러모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버지가 요즘 저 때문에 힘든 것 같다. 저로 인해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아버지를 생각하면 울컥해진다.”
어머니도 빼놓을 수 없다. 어머니 정 씨는 아들의 야구 입문을 이끌었다. 2007년 아홉 살짜리 꼬마 이정후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야구부 테스트를 보러 갔다. 당시 이 코치는 전지훈련 중이었다. 잘나가던 야구 선수의 아내였던 정 씨는 아들의 선천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그걸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알뜰살뜰 챙기고 야구에 좋다는 일은 뭐든지 다 했다. 지금도 아들의 식단과 컨디션 관리는 정 씨의 몫. 이정후는 “사실 야구 선수 이정후는 엄마가 다 키웠다”면서 “아버지는 현역 선수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어릴 적 야구는 엄마랑 추억이 더 많다. 어머니에게 너무 감사하다. 올겨울 시상식에서 탄 상금으로 동생과 함께 선물을 드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정후가 국내 타격의 일인자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게다가 그에겐 ‘타격 천재’라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그는 손사래를 친다. 실은 소문난 노력파이기 때문이다. 야구장에 가장 먼저 나오고, 가장 늦게 나간다. 한번 훈련에 몰입하면 밥 먹는 시간조차 아껴가며 방망이를 휘두른다. 올해 좋은 성적의 비결은 역시 피나는 훈련이었다. 지난해 타격왕이었던 이정후는 올해도 자만하지 않고 연습에 더 매진했다. “지난해 타격왕이 되고 나서 타격 메커니즘을 완전히 찾았다고 느꼈다. 그런 타격감을 잃기 싫었다. 이전 비시즌엔 웨이트트레이닝 정도만 하고 기술 훈련을 하지 않았는데 감각 유지를 위해서 12월 초부터 기술 훈련을 시작했다. 캠프 땐 ‘올해는 다치지만 않으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믿음이 있었고, 결국 올해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
이정후는 훈련뿐 아니라 ‘야구 공부’에도 힘을 쏟는다. 전통적 타격 지표 외에 세이버메트릭스(수학·통계학적으로 야구 기록을 분석하는 방식) 지표도 챙기는 학구파다. 실제 연구와 분석이 장기다. 자신의 경기 영상을 몇 번이고 되돌려 보며 밤을 지새우기 일쑤다. 팀 전력분석실의 단골손님이 바로 이정후. 배트 스피드와 타구 강도 등 각종 첨단 데이터를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려 애쓴다. 이정후는 “올해 내 BABIP(타구가 필드 안이었을 때의 타율) 수치가 1군에 데뷔한 이후 가장 안 좋아 걱정이 됐다. 수비 시프트도 신경이 쓰이는데, 최근엔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전력분석팀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정후는 ‘슬럼프’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그는 “나는 아직 어린 선수”라면서 “내겐 슬럼프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될 거 같다. 프로에서 10년 이상 잘했던 선배들에게 맞는다. 내가 타격감이 떨어지면 그건 그저 실력일 뿐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정후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루틴이 있다. 바로 ‘수면’이다. 이정후는 하루 최소 10시간을 잔다. 홈·원정 관계없이 평균 11시간 이상 자기 위해 노력한다. 일반인으로선 다소 과한 수면 시간이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면 전날 있었던 일을 바로 잊고 털어버리는 스타일이라 잠을 많이 자는 게 오히려 정신을 집중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게 이정후의 설명. 하지만 여기엔 꼭 필요한 조건이 있다. 숙면을 위한 전용 베개다. 이정후는 자신의 승용차 트렁크에 전용 베개를 넣고 다닌다. 그는 “한번은 베개를 깜빡하고 원정을 떠났는데, 잠이 안 와 고생했다. 베개는 내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물건”이라고 했다.
이정후는 프로야구 무대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최정상은 공성(攻城)보다 수성(守城)이 더 어려운 법. 그래서 쉴 틈이 없다. 12월부터 1월은 비시즌이지만, 여전히 방망이를 돌린다. 요즘 그의 머릿속은 온통 야구로 가득 차 있다.
이정후는 12월 중순 짧은 휴가를 끝내면 본격적으로 내년 시즌 대비에 들어갈 계획이다. “내년 목표는 무조건 팀 우승이다. 올해를 기점으로 내 버킷리스트에 있던 것을 다 이뤘다. 우승만 차지하면 버킷리스트를 완벽하게 채우게 된다. 무조건 팀 우승을 위해 뛰겠다.”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진출이다. “지난해 도쿄올림픽을 다녀온 뒤 더 좋은 투수들을 상대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사실 미국, 일본 투수들과 상대 성적이 나쁘지 않았고, 삼진도 안 당했다. 이런 투수들을 상대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고 싶다.” 먼저 미국 무대에 진출한 선배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말이 큰 힘이 됐다. “넌 무조건 미국 올 수 있어!” 이제 그에게 필요한 건 시간과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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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정후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슈퍼스타였던 아버지를 둔 덕분에 감내해야 할 것이 많았다. 그는 “색안경을 쓰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많았다. 경기를 뛰어도, 상을 받아도 ‘아빠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내가 잘하면 ‘이종범 아들인데 저 정도는 해야지’라고 했다. 초등학교 5∼6학년 땐 너무 힘들었고, 내색할 수도 없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프로 유니폼을 입은 이정후는 조금씩 아버지의 후광을 떨쳐냈다.
“프로에 와서 너무 행복했다. 프로는 내 이름으로, 이종범 아들이 아닌 이정후로 모든 것을 평가해줬기 때문이다. 웬만한 것으로는 아버지 이름을 지우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MVP 같은 큰 상을 꼭 받고 싶었다. 그러면 그 그늘을 지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상식에서 그런 말을 하고 싶었고, 타이밍도 딱 맞았다.”
물론 이정후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아버지 이 코치다. 사실 이 코치는 고생길이 뻔하기에 야구를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야구 배트를 잡았고, 마침내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로 우뚝 섰다.
“이런 부모님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버지께선 내게 일절 야구 이야기는 안 하신다. 못했을 때 선수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아시니까 그랬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부모님의 간섭에 힘들어했을 때, 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야구를 잘한 우리 아빠도 내게 간섭을 안 한다. 너희 부모님을 꼭 만나서 내가 우리 아빠 이야기를 하겠다’고 한 적도 있다.”
이 코치는 보기보다 장난기가 많은 아빠다. 때로는 아들과 티격태격하고 때로는 격의 없이 웃으면서 친구처럼 지낸다.
“한번은 경기가 안 풀려 다소 풀이 죽어 왔는데, 아버지로부터 SNS 메신저로 유튜브 영상 링크가 왔다. TV 방송에서 웃긴 장면을 모아 놓은 것인데, 보면서 배꼽을 잡았다. 아버지는 제게 늘 이러셨다. ‘잘 안 돼도 멀리 보고 가는 거야’라는 이 말이 힘이 됐다. 아버지는 제가 야구를 하는 이유다. 아버지를 보며 야구를 시작했고,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그러나 최근엔 여러모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버지가 요즘 저 때문에 힘든 것 같다. 저로 인해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아버지를 생각하면 울컥해진다.”
어머니도 빼놓을 수 없다. 어머니 정 씨는 아들의 야구 입문을 이끌었다. 2007년 아홉 살짜리 꼬마 이정후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야구부 테스트를 보러 갔다. 당시 이 코치는 전지훈련 중이었다. 잘나가던 야구 선수의 아내였던 정 씨는 아들의 선천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그걸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알뜰살뜰 챙기고 야구에 좋다는 일은 뭐든지 다 했다. 지금도 아들의 식단과 컨디션 관리는 정 씨의 몫. 이정후는 “사실 야구 선수 이정후는 엄마가 다 키웠다”면서 “아버지는 현역 선수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어릴 적 야구는 엄마랑 추억이 더 많다. 어머니에게 너무 감사하다. 올겨울 시상식에서 탄 상금으로 동생과 함께 선물을 드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정후가 국내 타격의 일인자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게다가 그에겐 ‘타격 천재’라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그는 손사래를 친다. 실은 소문난 노력파이기 때문이다. 야구장에 가장 먼저 나오고, 가장 늦게 나간다. 한번 훈련에 몰입하면 밥 먹는 시간조차 아껴가며 방망이를 휘두른다. 올해 좋은 성적의 비결은 역시 피나는 훈련이었다. 지난해 타격왕이었던 이정후는 올해도 자만하지 않고 연습에 더 매진했다. “지난해 타격왕이 되고 나서 타격 메커니즘을 완전히 찾았다고 느꼈다. 그런 타격감을 잃기 싫었다. 이전 비시즌엔 웨이트트레이닝 정도만 하고 기술 훈련을 하지 않았는데 감각 유지를 위해서 12월 초부터 기술 훈련을 시작했다. 캠프 땐 ‘올해는 다치지만 않으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믿음이 있었고, 결국 올해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
이정후는 훈련뿐 아니라 ‘야구 공부’에도 힘을 쏟는다. 전통적 타격 지표 외에 세이버메트릭스(수학·통계학적으로 야구 기록을 분석하는 방식) 지표도 챙기는 학구파다. 실제 연구와 분석이 장기다. 자신의 경기 영상을 몇 번이고 되돌려 보며 밤을 지새우기 일쑤다. 팀 전력분석실의 단골손님이 바로 이정후. 배트 스피드와 타구 강도 등 각종 첨단 데이터를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려 애쓴다. 이정후는 “올해 내 BABIP(타구가 필드 안이었을 때의 타율) 수치가 1군에 데뷔한 이후 가장 안 좋아 걱정이 됐다. 수비 시프트도 신경이 쓰이는데, 최근엔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전력분석팀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정후는 ‘슬럼프’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그는 “나는 아직 어린 선수”라면서 “내겐 슬럼프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될 거 같다. 프로에서 10년 이상 잘했던 선배들에게 맞는다. 내가 타격감이 떨어지면 그건 그저 실력일 뿐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정후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루틴이 있다. 바로 ‘수면’이다. 이정후는 하루 최소 10시간을 잔다. 홈·원정 관계없이 평균 11시간 이상 자기 위해 노력한다. 일반인으로선 다소 과한 수면 시간이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면 전날 있었던 일을 바로 잊고 털어버리는 스타일이라 잠을 많이 자는 게 오히려 정신을 집중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게 이정후의 설명. 하지만 여기엔 꼭 필요한 조건이 있다. 숙면을 위한 전용 베개다. 이정후는 자신의 승용차 트렁크에 전용 베개를 넣고 다닌다. 그는 “한번은 베개를 깜빡하고 원정을 떠났는데, 잠이 안 와 고생했다. 베개는 내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물건”이라고 했다.
이정후는 프로야구 무대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최정상은 공성(攻城)보다 수성(守城)이 더 어려운 법. 그래서 쉴 틈이 없다. 12월부터 1월은 비시즌이지만, 여전히 방망이를 돌린다. 요즘 그의 머릿속은 온통 야구로 가득 차 있다.
이정후는 12월 중순 짧은 휴가를 끝내면 본격적으로 내년 시즌 대비에 들어갈 계획이다. “내년 목표는 무조건 팀 우승이다. 올해를 기점으로 내 버킷리스트에 있던 것을 다 이뤘다. 우승만 차지하면 버킷리스트를 완벽하게 채우게 된다. 무조건 팀 우승을 위해 뛰겠다.”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진출이다. “지난해 도쿄올림픽을 다녀온 뒤 더 좋은 투수들을 상대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사실 미국, 일본 투수들과 상대 성적이 나쁘지 않았고, 삼진도 안 당했다. 이런 투수들을 상대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고 싶다.” 먼저 미국 무대에 진출한 선배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말이 큰 힘이 됐다. “넌 무조건 미국 올 수 있어!” 이제 그에게 필요한 건 시간과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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