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빈민가에서 대구의 심장으로. K리그 축구팀 대구FC 주장 세징야(34) 얘기다. 그는 2016년부터 8년째 대구 핵심 선수로 굳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자마자 2부 리그에 있던 대구를 1부 리그로 끌어올렸고, 구단 역사상 첫 우승(2018년 FA컵)과 첫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 역대 구단 최고 성적(K리그 3위)을 올리는 과정에서 세징야는 선봉장이었다. 특히 2018년 FA컵에선 5골로 득점왕에 올랐고 MVP도 차지했다지금까지 대구 소속으로 213경기 출전 82골 54도움. 역대 대구 선수 중 최다 골, 최다 도움 기록이며 최다 출장 경기(박종진 242경기·은퇴)도 시간 문제다. 순도 100% ‘대구FC 레전드(전설)’로 남기에 손색이 없다. 대구에서 그는 ‘대팍(대구 홈구장 DGB대구은행파크)의 왕’ ‘대구에로(대구+아구에로)’라 통하며, 팬들은 그에게 ‘서진야’라는 한국식 이름도 안겨줬다. 아구에로는 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골잡이다.
세징야 본명은 세자르 페르난두 시우바 멜루. 1989년 브라질 상파울루주 상조제두히우프레투에서 태어났다. 인구 7000명의 가난한 마을. 5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와 할아버지는 농사일을 하며 4남매를 키웠다. 세징야는 둘째였다. 생계를 위해 어머니는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어머니가 한 달 치 식재료를 사다놓고 일감을 찾아 멀리 떠나면 4남매가 그걸로 끼니를 이었다. 10대로 접어든 뒤론, 가계를 돕기 위해 학교 수업이 끝나면 사환 일을 했다. 그러나 그에겐 꿈이 있었다. 여느 브라질 소년들처럼 축구로 세상을 호령해보겠다는 것. 퇴근 후엔 운동장에 가 혼자 공을 찼고, 주말엔 팀을 꾸려 연습 경기를 가졌다. 주변에선 “주말에라도 쉬어야지, 무리하면 일은 어떻게 하냐”고 핀잔을 줬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일과 학교, 축구, 이 세 가지 길을 병행한 끝에 2007년 브라질 명문 프로팀 SC코린치안스 유스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브라질 축구스타 호나우두도 뛰었던 팀이다. 그리고 3년 뒤 코린치안스에서 프로 데뷔까지 했다.
그러나 곧 닿을 것만 같던 축구 스타라는 꿈은 좀처럼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브라질 프로 클럽을 여기저기 떠돌며 6년을 노력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2015년엔 브라질 1부 리그 17경기에서 한 골도 넣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이름도 낯선, 한국, 그것도 대구라는 도시 축구팀이 손길을 내밀었다. 대구는 당시 K리그 챌린지(2부)에 속한 비주류 축구단. “브라질에 가면 싸고 실력 좋은 선수가 많다”는 이른바 ‘브라질 용병 붐’에 편승한 영입이었다. 당시 2부리그엔 브라질 선수만 20여 명이 뛰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도전이란 각오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세징야의 성공 스토리가 새 장을 열었다. 이종현(36) 대구 코치는 “팀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선수로서 성공해보겠다는 열망이 유독 강했고, 그래서인지 한국 선수들보다 1시간 일찍 나와 훈련에 임하고 몸관리를 철저히 했다”고 전했다.
전문
https://n.news.naver.com/sports/kfootball/article/023/0003756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