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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N(티브이엔)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아래 사괜)를 보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문강태(배우 김수현)한테 너무 공감되어서 감정이입 하면서 보고 있다”는 말을 했다. 친구들은 “네가? 김수현한테? 왜?”라고 반문하다가 순간 ‘아, 맞다….’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맞다, 너도 자폐인 동생이 있었지. 너도 비장애형제였지. 그렇구나, 문강태도 비장애형제인 거구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장애인가정의 서사는 주로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주로 어머니)에 집중됐다. 비장애형제는 주로 힘든 상황에서도 장애를 가진 형제자매를 돌보는 캔디형 천사 아니면 부모와 형제자매를 두고 집을 뛰쳐나가는 반항아 중 하나로 그려졌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인물이라기보다는, 장애인가정의 ‘불행 서사’를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소품 같은 역할이었다. 한 번도 비장애형제가 주인공인 적이 없었던 것은 미디어에서도, 비장애형제들의 실제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비장애형제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가 나온다니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앞섰다. 드디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대변될 수 있다는 기대감, 그리고 혹시라도 또 드라마에서 잘못 재현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주변의 다른 비장애형제들도 ‘혹시 또 발달장애인이나 비장애형제를 이상하게 그릴까 봐 보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드라마가 시작한 첫날부터 나는, 완전히 이 드라마에 빠져버렸다.
1회를 보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자폐성장애가 있는 형 상태(배우 오정세)와 그의 동생 강태가 전화 너머로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었다. 고집을 부리는 상태를 강태가 혼내다가 어르고 달래서 진정시키는 모습이 마치 나와 내 동생이 언젠가 나눈 대화를 그대로 가져온 것 같았다. 사실 비장애형제의 일상은 많은 부분 실랑이로 채워진다. 장애를 가진 형제가 원하는 것은 때로는 사회적 맥락 내에서 부적절하게 여겨질 수 있는데(드라마에서는 상태가 ‘지금 고문영 작가가 어린이병동에서 낭독회를 한다니 내가 당장 거기에 만나러 가겠다’고 한다), 비장애형제가 이를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나가는 한 장면이었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기존의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생생함이 느껴졌다.
‘사괜’은 여러모로 ‘혹시 이거 내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비장애형제의 삶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모든 것을 꾹꾹 누르고 참으면서 사는 강태의 얼굴이 비장애형제 그 자체여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괜히 눈물이 났다. 그런 비장애형제의 아픔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사 중 하나는 어린 강태에게 엄마가 건네는 말이었다.
“강태야, 너는 죽을 때까지 형 옆에 있어야 해. 키우는 건 엄마가 할 테니까 너는 지켜주고 챙겨주고, 그러면 돼. 알았지? 엄마가 너 그러라고 낳았어.”
‘너 그러라고 낳았다’는 말은, 강태는 형을 지켜주고 챙겨주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라는 뜻이다. 너의 존재에는 이유와 목적이 있고, 너는 그 목적에 복무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 잔혹해 보이지만 많은 비장애형제들이 실제로 듣는 말이다. 특히 강태처럼 장애인이 손위 형제인 경우 더욱 그렇다. 꼭 그 말이 아니더라도 평소 부모들이 농담처럼, 칭찬처럼 하는 말들은 너무 쉽게 비장애형제들의 어린 어깨 위로 쌓인다. ‘네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너 없으면 어떻게 사니’, ‘너에게 너무 고맙다’… 그렇게 비장애형제는 어릴 적부터 보호자의 기능을 받아들이고 또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그 뒤 어린 강태가 하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난 형을 지켜주는 사람이 아니야. 난 형께 아니라고. 난 내 꺼야. 문강태는 문강태 꺼라고.”
모든 비장애형제가 마음 한 켠에 가지고 있는 한 마디다. 나는 내 형제와 다르고, 내 형제에게 부속된 존재가 아니며, 나만의 감정과 욕구를 가진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어린 강태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날 상태가 눈앞에서 강에 빠져 죽을 뻔하고, 강태는 ‘형의 존재에 대한 불만을 품으면 내가 형을 죽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트라우마가 생긴다. 이후로 강태는 하고 싶은 모든 말을 삼킨다. 상태라는 존재와 상태를 돌보는 의무를 자신의 당연한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그저 버티며 살아낸다. 그런 강태가 또 다른 아픔을 가진 문영(배우 서예지)을 만나 본인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아가고, 결국 ‘진짜 진짜 행복한 얼굴’을 하게 되는 과정은 눈물겹게 아름답다.
박혜연(정신적 장애인의 비장애 형제자매 자조모임 ‘나는’) (nanun.teatime@gmail.com)
http://beminor.com/detail.php?number=15055&thread=03r01
사괜에 대한 기사지만 그 캐릭터를 한 김수현이 생각 나서 퍼옴
문제 있으면 삭제 할게
얼마 전, TvN(티브이엔)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아래 사괜)를 보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문강태(배우 김수현)한테 너무 공감되어서 감정이입 하면서 보고 있다”는 말을 했다. 친구들은 “네가? 김수현한테? 왜?”라고 반문하다가 순간 ‘아, 맞다….’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맞다, 너도 자폐인 동생이 있었지. 너도 비장애형제였지. 그렇구나, 문강태도 비장애형제인 거구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장애인가정의 서사는 주로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주로 어머니)에 집중됐다. 비장애형제는 주로 힘든 상황에서도 장애를 가진 형제자매를 돌보는 캔디형 천사 아니면 부모와 형제자매를 두고 집을 뛰쳐나가는 반항아 중 하나로 그려졌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인물이라기보다는, 장애인가정의 ‘불행 서사’를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소품 같은 역할이었다. 한 번도 비장애형제가 주인공인 적이 없었던 것은 미디어에서도, 비장애형제들의 실제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비장애형제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가 나온다니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앞섰다. 드디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대변될 수 있다는 기대감, 그리고 혹시라도 또 드라마에서 잘못 재현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주변의 다른 비장애형제들도 ‘혹시 또 발달장애인이나 비장애형제를 이상하게 그릴까 봐 보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드라마가 시작한 첫날부터 나는, 완전히 이 드라마에 빠져버렸다.
1회를 보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자폐성장애가 있는 형 상태(배우 오정세)와 그의 동생 강태가 전화 너머로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었다. 고집을 부리는 상태를 강태가 혼내다가 어르고 달래서 진정시키는 모습이 마치 나와 내 동생이 언젠가 나눈 대화를 그대로 가져온 것 같았다. 사실 비장애형제의 일상은 많은 부분 실랑이로 채워진다. 장애를 가진 형제가 원하는 것은 때로는 사회적 맥락 내에서 부적절하게 여겨질 수 있는데(드라마에서는 상태가 ‘지금 고문영 작가가 어린이병동에서 낭독회를 한다니 내가 당장 거기에 만나러 가겠다’고 한다), 비장애형제가 이를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나가는 한 장면이었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기존의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생생함이 느껴졌다.
‘사괜’은 여러모로 ‘혹시 이거 내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비장애형제의 삶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모든 것을 꾹꾹 누르고 참으면서 사는 강태의 얼굴이 비장애형제 그 자체여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괜히 눈물이 났다. 그런 비장애형제의 아픔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사 중 하나는 어린 강태에게 엄마가 건네는 말이었다.
“강태야, 너는 죽을 때까지 형 옆에 있어야 해. 키우는 건 엄마가 할 테니까 너는 지켜주고 챙겨주고, 그러면 돼. 알았지? 엄마가 너 그러라고 낳았어.”
‘너 그러라고 낳았다’는 말은, 강태는 형을 지켜주고 챙겨주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라는 뜻이다. 너의 존재에는 이유와 목적이 있고, 너는 그 목적에 복무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 잔혹해 보이지만 많은 비장애형제들이 실제로 듣는 말이다. 특히 강태처럼 장애인이 손위 형제인 경우 더욱 그렇다. 꼭 그 말이 아니더라도 평소 부모들이 농담처럼, 칭찬처럼 하는 말들은 너무 쉽게 비장애형제들의 어린 어깨 위로 쌓인다. ‘네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너 없으면 어떻게 사니’, ‘너에게 너무 고맙다’… 그렇게 비장애형제는 어릴 적부터 보호자의 기능을 받아들이고 또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그 뒤 어린 강태가 하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난 형을 지켜주는 사람이 아니야. 난 형께 아니라고. 난 내 꺼야. 문강태는 문강태 꺼라고.”
모든 비장애형제가 마음 한 켠에 가지고 있는 한 마디다. 나는 내 형제와 다르고, 내 형제에게 부속된 존재가 아니며, 나만의 감정과 욕구를 가진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어린 강태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날 상태가 눈앞에서 강에 빠져 죽을 뻔하고, 강태는 ‘형의 존재에 대한 불만을 품으면 내가 형을 죽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트라우마가 생긴다. 이후로 강태는 하고 싶은 모든 말을 삼킨다. 상태라는 존재와 상태를 돌보는 의무를 자신의 당연한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그저 버티며 살아낸다. 그런 강태가 또 다른 아픔을 가진 문영(배우 서예지)을 만나 본인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아가고, 결국 ‘진짜 진짜 행복한 얼굴’을 하게 되는 과정은 눈물겹게 아름답다.
박혜연(정신적 장애인의 비장애 형제자매 자조모임 ‘나는’) (nanun.teatime@gmail.com)
http://beminor.com/detail.php?number=15055&thread=03r01
사괜에 대한 기사지만 그 캐릭터를 한 김수현이 생각 나서 퍼옴
문제 있으면 삭제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