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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이 인터뷰 너무 좋아(2022.05 싱글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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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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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섞이지 않는 무리 속, 여자의 웃음은 자신만의 완곡한 언어다. 대화의 변두리에 숨어 과열된 유희에 휩쓸리지 않은 채 가끔 필요한 여백만 메워주는 언어. 누군가 수긍을 바랄 때, 공감을 강요할 때 여자는 자주 말없이 웃어 보인다. 웃음이 그의 무표정을 감추고, 허기를 감추고, 고독을 감춘다. 사랑받을 자신은 없지만 미움받지 않을 자신은 있는 사람. 늘 존중하고 경청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어떤 말로도, 관계로도 마음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 <나의 해방일지> 속 미정은 여느 드라마 여주인공과는 다른 무채색의 고요 안에 홀로 있다. 꼭 창문을 두드리듯 간간이 읊조리는 내레이션을 제외하면 그 무엇으로도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짐작할 뿐이다. 그에겐 자신만의 세계가 있음을. 지금껏 누구도 들어선 적 없는, 자물쇠가 굳게 걸린, 정체 모를 빛깔로 가득한 정원이. 그러니까 지금 배우 김지원이 연기하는 건 미정의 흐릿한 무채색 고독만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어떤 공간, 어떤 색깔이 그의 안에 분명 존재함을 느끼게 하는 것. 지하철 검은 차창에 비친 미정의 얼굴은 텅 비어 있다가 때론 꽉 차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김지원의 전작 어디서도 이 배우의 이런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사실 김지원은 미정의 고요가 좋았다. 그의 내면이, 잘 드러나진 않지만 그 안에 담긴 많은 것들이 좋았다.

"굉장히 묵직한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항상 저의 로망이었거든요. 어디선가 들었는데 비밀의 정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기만의 꽃을 피운대요. 저는 이 말을 무척 좋아하지만 그렇게 하려 해도 늘 쉽지가 않더라구요. 근데 미정이는 본인만의 화단을 가꿀 줄 아는 사람 같아서 그게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물론 내향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일이 배우로서 만만한 과제는 아닐 것이다. 미정은 말수도 적고, 표정도 없고, 언니 오빠처럼 틈틈이 속내를 털어놓지도 않는다. 매일같이 집과 회사를 오가며 대중교통 안에서 반나절을 보내면서도 늘 '동네 탓'을 하는 이들에게 "서올에 살았으면 우리 달랐어?" 되묻는다. 김지원도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땐 '어렵다'고 느꼈다.

"정말 너무나도 좋은 작품이지만 캐릭터를 구현하는 입장에선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어요. 근데 감독님께선 제가 만약 너무 자신 있게 '할 수 있어요!'라고 했다면 그게 더 걱정스러웠을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이건 어려운 게 맞고, 그러니 우리가 좀 더 이런저런 대화를 계속 나눠봤으면 좋겠다고요. 그렇게 의견을 나누고 함께 조율하며 조금씩 맞춰나갔던 것 같아요."

실제로 촬영이 시작되자 과정은 걱정했던 것보다 수월했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고 움직이고 말하며 감정을 나누다 보니 막연하던 것들이 조금씩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김지원은 그 과정에서 사실 자신이 한 일은 별로 없었다고 말한다.

"일단 캐릭터의 내면을 드러내는 좋은 내레이션이 많고, 감독님께서도 연출적으로 큰 도움을 주셨거든요. 그래서 미정이의 내면을 꺼내 보여주기보다는 제가 미정이란 사람을 좀 더 이해하고, 그 사람에게 가까워지기만 하면 되는 거였죠. 저와 미정도 타인이니까 서로 알아가는 시간, 가까워지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에게 미정은 '고여 있을 수 있는 사람'이다. 다른 이들은 그저 지나치는 것을 가만히 머물러 바라볼 줄 아는 사람, 다른 이들이 흘러가니까 따라서 흘러가기보다는 좀 고인 채로 그것을 사유할 줄 아는 사람.

"무모하리만치 용감한 사람 같기도 해요. 사실 군중 속에서 본인의 내면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보통은 함께 휩쓸리기 마련인데, 거기서 자신의 뚝심을 지키고 있는 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용기가 아닐까요?"

그는 자신이 "미정이만큼 용기 있지는 못하다."며 작게 웃었다.

"미정이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어' '벗어나야겠어' '해방되어야겠어' 하고 스스로 결정하면 삶의 방향을 확 틀어버려요. 그게 저와 가장 큰 차이점이죠. 저는 고민도 많고 걱정도 많고 결정을 내리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인데 미정이는 딱 결심하고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직진할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미정을 이해하고 미정의 해방을 함께하며 김지원은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촬영이 끝난 지도 어느새 4개월이 지났지만, 그에겐 여전히 그때의 감각이 남아 있다. “작품 안에서 늘 고민했고 지금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어요. 나에게 해방이란 뭘까? 계속 돌아가는 삶의 굴레에서 나라는 사람에게 해방감을 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해방에 대한 열망과 고민이 지금까지도 제 안에 남아 있나 봐요. 아직 딱 이거다 싶은 답은 없지만, 생각해보면 해방이라는 게 꼭 삶의 궤도를 벗어난다는 의미만은 아니니까요. 예를 들면 하루 일을마친 뒤 차창을 조금 열고 바람 냄새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저에겐 작은 해방일 수 있죠. 막상 집에 가면 특별한게 없어도 저는 그 짧은 퇴근길이 정말 좋거든요.”



13년 전, 그가 처음 TV 광고 모델로 주목받던 때를 기억한다. 드라마 <상속자들>로 생애 첫 악역을 맡았을 때도 <태양의 후예>와 <쌈, 마이웨이>로 대세 배우가 됐을 때도. 그는 쉼 없이 활동을 이어왔고 매번 자신의 인생 캐릭터를 갱신했다. 대중의 눈에는 그의 필모그래피 자체가 하나의 눈부신 성장 드라마처럼 보일 수 있지만, 막상 배우 자신은 정신없이 걷다 보면 방향감각을 잃기 쉽 십상이다. 내가 걷고 있긴 한데 앞으로 걷는 건지 뒤로 가는 건지 모를 때도 적지 않다. 다만 그런 작고 무수한 진보와 퇴보의 경험치가 쌓여 하나의 거대한 성장 그래프를 이루는 게 아닐까. 김지원의 그래프에서 가장 격렬한 진폭은 늘 작품과 닿아 있다.

"작품에 임하면서 이 인물은 왜 이런 선택을 한 걸까, 나라면 어땠을까, 고민하고 또 이해하려 노력하다 보면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져요. 그러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하죠.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면 저 자신이 과거보다 어쨌든 한 발자국이라도 더 앞서 있더라고요. 작품을 할 때 제 삶의 진폭이 위아래로 가장 크게 움직이지만 결국은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이라 느껴요."

처음 연기를 시작한 순간을 돌이켜보면 지금 달라진 건 '잘해내고 싶다'는 마음.

"책임감일 수도 있고 욕망일 수도 있고, 뚜렷하게 어떤 감정이라 정의 내리진 못하겠어요. 다만 과거에 잘해내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정신없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제 최대치의 역량이었거든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예전 작품들을 볼 때마다 아쉬움이 남기 시작하더라고요. 당시엔 그게 저의 최선이었는데 1년, 2년 뒤의 시선으로 보니 부족한 거죠. 지금은 어떻게 하면 그런 아쉬움을 보완해 다음에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조금씩 수정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눈에 띄게 달라진 게 하나 더 있다. 과거 그는 누구에게도 "안녕하세요, 배우 김지원입니다"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했다. 자신이 그토록 존경하는 선배들과 같은 직업으로 불리기엔 스스로 부족함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배우라는 타이틀이 크고, 무거웠고 그래서 늘 자신을 '연기하는 사람'이라 에둘러 표현하곤 했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일을 해나갈 테니 이제 이 이름의 무게를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것도 중요하겠구나. 덕분에 배우라고 말하는 게 예전보다 조금은 수월해진 것 같아요. 스스로 좀 자랐구나 싶더라고요.” 요즘 그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변화다. 상식선에 머물되 계속 변화하는 것,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기본적으로 전 굉장히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이거든요. 늘 돌다리 두드리다가 돌다리를 부수는 스타일이라고 주변에서 얘기할 정도죠. 그래서 더 변화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나 봐요. 미정의 대사 중에 ‘멈추지 말자’는 말이 있는데, 저는 그 말이 너무 좋았어요.”


김지원은 인터뷰 내내 자신이 '고민 많은 사람'임을 여러 차례 밝혔다. 평소 일정 게이지의 고민이 늘 내장된 사람, 그렇다고 그게 또 엄청나게 큰 고민거리는 아닌 사람, 그저 일상적으로 곱씹는 무수한 고민과 걱정이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동력이라 믿는 사람. 어쩌면 그와 대화하며 <나의 해방일지> 속 미정과 닮아 있다고 느낀 지점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어떻게 방향을 정해나가는 게 맞을까? 내가 선택한 것들이 다시 돌이켜봤을 때도 좋은 선택이었을까? 자꾸만 되새기곤 해요. 그래야 다음에 또 다른 상황이 닥쳤을 때 좀 더 단단한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앞으로 그와 미정이 찾아낼 해방이 어떤 모습일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두 사람 모두를 성장시키리라는 믿음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설레는 건, 아직 우리에겐 그의 미정을 만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용기를, 그의 해방을 우리도 함께할 기회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이 인터뷰 읽고 김지원이라는 사람이 너무 좋아졌어

인터뷰 속 김지원이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인것 같은데 그래서 알면 알수록 자꾸 끌렸나싶고!

같이 읽고 싶어서 긁어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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