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게 내려앉는 햇살 속에서 <코스모폴리탄> 5월호 커버 촬영을 마쳤어요. 모니터로 촬영 사진을 보는 내내 즐거웠습니다.(웃음)
제게도 너무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는 사진이 남는다는 건 특별한 일인데, 오늘 그런 사진이 많이 나온 것 같아 설레고 작업한 커버가 공개될 날이 기다려져요. 드라마 <눈물의 여왕> 속 결혼반지도 불가리 제품이었거든요. 1년 내내 촬영하며 함께했던 터라 반가웠어요.(웃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은 주얼리의 가치일 거예요. 지원 씨가 잃고 싶지 않은 건 뭐예요?
종종 그런 질문을 받곤 하는데, 답하기 힘든 난제예요.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기존의 가치관에서 벗어난 새로운 가치관이 세워지며 변화하는 걸 느껴요. 그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어요. ‘이것만은 꼭 지킬 거야!’가 아니라, 매일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는 자세를 배우게 됐죠.
지금 체감하는 변화도 있어요?
<눈물의 여왕>을 촬영하며 제가 연기한 ‘홍해인’에게서 매사 솔직하고 용감한 태도를 배웠어요. 덕분에 지금의 전 좀 더 크게, 잘 웃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해인’을 만나기 전의 지원 씨는 표현하는 데 있어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나 봐요.
그러게요. 예전엔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면, 지금은 “좋아요”라고 좀 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게 됐어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제가 느끼는 기분도 더 좋더라고요.
<눈물의 여왕>의 ‘홍해인’은 피도 눈물도 없이 차갑고 완벽해서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을 것 같은데, 내면엔 남모를 따뜻함과 여린 면을 가진 인물이라 좋았어요.
그게 제 목표였던 것 같아요. ‘마냥 차갑고 단단해 보이는데 왜 저렇게 행동할까? 저 사람의 이면엔 뭐가 있을까?’를 느끼다 결국 ‘해인’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저 역시 ‘해인’을 연기하면서 그 과정을 지나오기도 했고요. 그래서인지 ‘해인’은 제게 보듬어주고 싶은 사람에 더 가까워요.
<눈물의 여왕>은 결혼 후 소원해진 3년 차 부부가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사랑이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리죠. 김지원에게 사랑이란 뭔가요?
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좋아해요. 사랑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매일이 너무 힘들고 바빠서 사랑을 후순위에 두거나 잊고 살아갈 때가 많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었으면 좋겠는 거죠. ‘해인’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엄청난 무언갈 해주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옆에 있어주는 거다.” 전 그 말이 좋았던 것 같아요. 좋을 때나, 반대로 지치고 바닥을 치는 힘든 순간에도 곁에서 힘이 돼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싶어요.
혹시 그 반응도 봤나요? ‘홍해인’을 보며 지원 씨가 연기했던 드라마 <상속자들>의 ‘유라헬’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더라고요. ‘라헬’이 멋진 어른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요.(웃음)
저 그 반응이 정말 신기했어요! 사실 ‘홍해인’이라는 인물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느라 촬영하면서는 ‘라헬’을 떠올리진 못했거든요. 그리고 <상속자들>이 벌써 11년 전 작품이잖아요. 그런데도 ‘라헬’을 여전히 기억해주시고, 지금의 캐릭터와 비교해서 바라봐주신 것도 너무 감사해요.
김지원을 거쳐간 인물은 대체로 그런 것 같아요. ‘라헬’부터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염미정’, 드라마 <쌈, 마이웨이>의 ‘최애라’ 등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꾸준히 언급되죠.
돌아보면 제가 연기한 인물들은 곁에서 늘 응원하고 싶고, 주체적이고 강단이 있는, 멋진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생각하는 신념이나 가치관이 또렷한 사람. 그 신념이 지금 완벽하진 않더라도 차근차근 쌓아가며 지킬 수 있는 사람. 시청자분들과 마찬가지로 저 또한 그들을 통해 느낀 것도, 배운 것도 많았어요.
제 마음속에도 각인된 인물들이 있어요.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윤명주’는 군의관 그리고 여성으로서 누구보다 진취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줬고, <나의 해방일지>의 ‘염미정’은 매 순간 고뇌하며 스스로 정의한 해방을 향해 나아가는 인물이었죠.
정말정말 큰 복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작품이나 캐릭터는 어떤 연처럼 타이밍이나 상황 모든 게 맞아 떨어져서 저와 만나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그동안 만났던 모든 인물은 말씀하신 것처럼 진취적이고 강한 여성이었어요. 특히 ‘윤명주’를 보고 많은 분들이 ‘상여자’라는 말씀도 해주셨죠. 작품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저 스스로를 반추하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명주’는 제가 성장할 수 있는 면모도 있었죠. ‘배우로서 또 언제 이런 캐릭터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감사한 동시에 앞으로 만날 작품들에 대한 기대감도 생겨요.
스스로 보기엔 어떤가요? 김지원은 ‘상여자’인가요?
저요? 음… 상여자인가? (잠시 고민하며) 지금도 진취적이고 당당한 여성을 말할 때 ‘상여자’라는 표현을 쓰나요?
비슷해요. 하지만 요즘은 ‘여자’라는 표현에 가두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아, 맞아요. 어떤 모습을 두고 이제 ‘여자답다’ 혹은 ‘남자답다’라고 표현하지 않는다는 걸 느껴요. 그렇다면 저는 이렇게 답할게요. 그저 열심히 사는 사람.(웃음)
좋습니다.(웃음) 캐릭터를 매개로 ‘나’라는 사람을 반추해본다고 했잖아요. 그 경험은 지원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저 스스로에 대해 잘 알아야 그만큼 제가 연기해야 하는 캐릭터에 접근하고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어요. 꾸준히 해오다 보니 이 과정 자체를 좋아하게 됐죠. 개인적인 취향이나 가치관이 짙어지거나 확고해지는 변화도 좋고요. 50대가 되면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즐거워요.
스스로를 반추한다는 건 그만큼 ‘나’에 대해 알아가며 성장할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지금은 어때요? 30대의 김지원은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
요즘의 전 취미를 찾으려고 노력 중인데, 제일 어려운 일인 것 같더라고요. 그냥 아주 조금 확실해진 건 있어요. 나는 귀찮음에 취약한, 몸을 일으키는 게 천근만근인 사람이라는 것?(웃음) 근데 또 막상 하면 제법 즐겁거든요. 그래서 날씨가 더 따뜻해지면 등산을 해보고 싶어요. 동네 산부터 차근히 시작해 언젠가 한라산처럼 높은 산의 정상에 올라 사진도 남기고요. 아마 등산하는 날 빼곤 집에 있겠지만!
그런 생각이 변화를 부르는 법이죠.(웃음) 배우로서는 앞으로 어떤 작품, 어떤 캐릭터와의 만남을 기대하나요?
가리지 않고 제게 기회가 주어지면 모두 최선을 다해 할 테지만, 나~중에 먼 미래를 봤을 때 장르물 하나 남길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이나 영화 <차이나타운>도 정말 재미있게 봤거든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소소하거나 몽글몽글한 작품을 주로 봤는데, 요즘은 좀 더 굵직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을 보는 것 같아요.
꼭 해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말이 나온 김에 50대가 된 지원 씨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지금이랑 크게 다를 것 같진 않은데, 제 로망은 뜨개질을 잘하는 할머니가 되는 거예요. 지금은 뜨개질 아예 할 줄 모르긴 하지만요.(웃음)
뭐 어때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어요.(웃음)
그렇죠? 50대의 전 목도리 하나 정도는 뚝딱 잘 만드는 사람이 돼 있으면 좋겠어요. 배우로선 그때도 저를 계속 찾아주신다면 지금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고민하고, 또 괴로워하며 주어진 역할들을 잘해내고 싶어요.
결실은 때로는 고통을 동반하죠.
맞아요. 그래서 전 지금 느끼는 고통도 좋아요. 지금 제가 느끼는 이 힘듦은 분명 언젠가 제게 좋은 밑거름이자 성장통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거든요. 한 가지 더 꿈꾸는 게 있다면,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다정함이 꽤 많은 체력과 힘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타인에게 다정한 사람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어떤 순간에도 다정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고 싶어요.
ㅊㅊ https://www.cosmopolitan.co.kr/article/1864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