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내 병을 믿어요”
서늘한 눈,
곧은 콧대,
꽃처럼 붉은 입술에 칠흑같은 머리칼.
정색하는 게 아니라 편안한 표정인데도,
화난거 아니냐고 주변에서 수군대게 만드는 사람.
쉽게 붉어지는 눈가 탓에,
뱀파이어 아니냐고 긴장타게 만드는 사람.
무지 서늘하지만 잘생긴,
그야말로 냉미남의 정석.
..인 그는,
웃기게도 성격상 동조성과 공감경향이 지나치게 높아
강한 두통, 이명 등의 신체적 증상으로까지 번지는 탓에
정신과 진료를 병행해야만 멀쩡함을 유지하는, 환자다.
무모했고 무신경했던 블루칼라의 아버지.
예민했고 여렸으며 쉽게 상처받았던 어머니.
어릴 때부터 섬세했던 무영의 마음은 언제나 타인을 향했고.
열아홉, 무영의 인생이 끝자락으로 떨어졌을 때,
무영 인생의 첫 멘토 강경호가 등장.
법이라는 실질적 힘으로 아버지와 무영을 보호한 그의 직업은 바로,
변호사였다.
그렇게 변호사를 꿈꿨건만,
막상 변호사가 된 무영은 형편없었다.
공감하는 마음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고,
회복될 틈 없이 덧나고 짓무르기 시작했다.
공감만으론 무력해 변호사가 됐는데,
공감을 제거하지 않으면 변호사로 기능할 수 없었다.
공감은 치료의 대상이었고,
결코 그의 무기가 될 수 없었다.
선배 박규의 제안으로 시작된 정신과 치료.
이후 그가 맡은 사건은 결코 가난한 자들에 국한되지 않았고,
어둡고 비참한 삶에 주목하지 않았으며,
밑바닥 인생이나 연민가는 이들에 닿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사생활을 닫아걸었고,
그 누구에게도 약점과 빈틈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시기어린 수군거림이 뒤따르기 시작했는데.
심리를 간파하고 파고드는 예리함,
냉정하고 집요한 추리,
마이크로 디테일을 발견하고 해석하는 능력,
무엇보다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대화 스킬.
웃는 얼굴 한번 보기 어렵지만
능력만큼은 알아줘야 한다는 소문이 자자할 때쯤..
나라를 떠들썩하게 뒤집었던 10년 전의 존속살해 사건에
이제서야 진범이 나타났다는 뉴스가 돌았고.
무영은 그 ‘암기영재 존속살해’ 사건의 진범,
예충식의 변호를 맡게 된다.
뱀파이어 정도면,
모두가 기피하는 흉악한 놈을 맡을 만도 하다는 주변의 평.
모두가 숨죽여 그의 참신한 변론을 짐작하던 그때
누구도 상상 못 할 속보.
변호사 한무영이 진범, 그러니까 제 의뢰인의 뒷통수를 치고 사임,
즉 변호사로서의 윤리관, 직무, 책임을 모두 저버리는
커리어 수어사이드..즉!
그 누구도 이해 못할, 멍청하고 경악스러운 선택,
바로 이로움이라는 선택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힘없이 뜨겁기만 했던 공감,
로움이 자신을 변호인으로서 ‘선택’한 그 순간.
이렇게 한 번쯤은, 자신이 꿈꿨던 그런 변호사가 되나 싶었는데.
로움과의 첫 대면에서 무영은,
로움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얼굴 이면에 감춰진
얼음송곳 같은 내면을 발견하고야 만다.
변호사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약자를 돌아보았던 진심을 잊지 않기 위해,
고통 끝에 복수를 택한 로움에게 끝까지 공감하기 위해
무영은 그녀가 가는 길을 막아서고,
때로는 대립하며,
인생의 배수진을 치기 시작하는데.
공감을 버린 이 여자에게 연대하기 위해
무영이 집어든 무기는 치부이자 약점이었던 ‘공감’.
갈등 끝에 택한 공감의 방식은
...바로, 사기였다.
무영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슼에 없길래 가져와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