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교야구계에서도 한여름 낮 경기 개최가 한계에 달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고교야구연맹은 지난해 12월 경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기존 9회제를 7회제로 바꾸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제언을 내놨다.
하지만 다른 종목과 비교하면 대응이 지나치게 늦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본 축구계는 2024년부터 여름 전국고교대회를 비교적 기온이 낮은 후쿠시마와 홋카이도에서 고정 개최하고 있다. 육상계에서도 여름철 야외대회 방식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육상경기연맹의 다자키 히로미치 전무이사는 “중·고등학생이 여름에 야외에서 경기하는 대회 모델은 이미 파탄 났다”며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면 대회를 개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일본 야구에는 축구협회처럼 프로와 아마추어를 모두 총괄하는 단일 조직도 없다. 프로야구와 대학야구, 고교야구가 각각 따로 움직이는 구조여서 전체 일정을 조정해 고교야구 대회를 다른 계절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학교 일정도 걸림돌이다. 여름방학에 대회를 열면 수업 결손을 줄일 수 있고, 지역예선부터 전국대회까지 이어지는 일정도 이미 여름을 중심으로 굳어져 있다. 개최 시기를 바꾸려면 전국 학교와 야구단체, 구장 운영 주체가 얽힌 기존 시스템을 모두 다시 짜야 한다.
여기에 ‘여름 고시엔’ 자체를 하나의 로망으로 받아들이는 문화도 변화를 어렵게 한다. 일본에서 고시엔은 단순한 학생 스포츠가 아니라 뜨거운 햇볕 아래서 끝까지 버티는 모습을 통해 근성과 인내, 희생과 팀워크를 보여주는 국민적 드라마로 소비돼 왔다.
땀에 젖은 유니폼과 흙투성이 얼굴, 패전 뒤 눈물을 흘리며 고시엔의 흙을 담는 선수들의 모습은 대회의 상징이 됐다. 더운 날씨를 견디며 싸우는 과정까지 ‘청춘의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면서, ‘더울수록 고시엔답다’는 정서도 오랫동안 형성됐다.
방송사와 언론도 이런 이미지를 강화해 왔다. 여름방학 동안 장기간 진행되는 고시엔은 전국 학교와 지역사회, 동문을 하나로 묶는 대형 콘텐츠다. 개최 시기를 선선한 계절로 옮기면 단순히 일정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여름 고시엔’이라는 문화적 상징과 흥행 상품 자체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일본은 개최 시기를 바꾸는 대신 시설 확충과 경기 방식 조정으로 대응하고 있다. 고시엔구장은 2028년 봄 선발대회 100회를 앞두고 알프스석에 대형 지붕을 설치하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응원단의 열사병을 막기 위한 사업으로 공사비만 150억엔에 달한다.
그러나 야구계 내부에서도 7회제와 지붕 설치 같은 대증요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에 와타루 센다이이쿠에이고 감독은 지난 6월 고교야구연맹이 연 의견교환회에서 “장소와 시기, 개최 방식을 바꿀 수 있는지부터 논의해야 한다”며 성역 없는 개혁을 요구했다.
의료계에서는 기온 상승 속도를 고려하면 7회제로 줄이더라도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고토우라 요시히로 교토부립 마이즈루어린이재활센터 정형외과부장은 “기온이 더 오르면 7이닝 경기조차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거에는 한여름의 땀과 고생을 청춘의 낭만으로 포장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선수들이 실제로 열사병으로 쓰러지고 경기를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성세대가 지켜온 ‘여름 고시엔의 로망’과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정작 위험은 고교생 선수들이 떠안고 있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