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프로 꿈꾸던 야구선수, 어떻게 한화 통역이 됐나…왕옌청과 '운명의 파트너' 되기까지 [인터뷰]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김선혁 통역은 프로야구 선수였다. 배명중과 배명고에서 야구를 했고, 중학교 시절에는 국가대표도 경험했다. 하지만 고교 3학년, 프로 지명이라는 현실의 벽을 앞두고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 그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다. 대만 유학이었다.
김선혁 통역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먼저 대만으로 간 선배가 있었다. 프로 선수가 되지 못해도 야구를 하면서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며 "처음에는 한국 프로에만 집중했지만, 지명을 받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그 선택지가 떠올랐다"고 돌아봤다.
사실 결정은 빨랐다. 고교 3학년 시즌 초반 어깨 부상까지 겹치면서 프로 진출이 쉽지 않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부모님과 상의하면서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대만행을 결정했다. 대학 원서도 쓰지 않았다"며 "언어 하나만 배워도 앞으로 선택지가 넓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시작은 맨땅에 헤딩이었다. 단 3개월 중국어를 배우고 대만으로 넘어갔다. 김 통역은 "한국에서 배운 중국어와 대만에서 쓰는 중국어가 달라 처음에는 거의 아무것도 못 알아들었다"며 "그래도 한국인이 거의 없다 보니 현지 선수들과 계속 생활하면서 언어가 빨리 늘었다"고 말했다.
대만에서도 야구는 계속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선수와 학생, 두 가지를 모두 잡기란 쉽지 않았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마지막으로 1년만 더 도전해보기로 했고, 결국 대학 4학년을 앞두고 선수의 꿈을 내려놓았다.
김 통역은 "더 늦기 전에 다른 길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야구와 중국어를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첫 기회는 국제대회에서 찾아왔다. 한국에서 열린 베이스볼5 대회에서 대만 대표팀 통역을 맡았고, 이후 프리미어12 등 대만야구협회의 추천으로 통역 업무를 이어갔다.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가던 중 아시아쿼터 제도가 시행됐고, 왕옌청의 한화 입단 소식을 접했다. 왕옌청은 아시아쿼터 첫 해 유일한 대만인 선수다.
김선혁 통역은 "기사로 계약 소식을 봤는데 다음 날 바로 통역을 맡아볼 생각이 있냐는 제안이 왔다. 처음에는 너무 갑작스러워 고민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게 정말 큰 경험이 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야구 선수로 오지는 못했지만 다른 역할로 1군 현장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선수 전담 통역은 처음이라 매일 배우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왕옌청과는 동갑내기 친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그의 일상을 지켜보고 있는 김선혁 통역은 왕옌청을 '모범생'이라고 표현했다.
김 통역은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후회한 게 '조금만 더 열심히 할 걸' 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옌청이는 스스로 정한 훈련 계획을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시간이 부족하면 남들보다 더 일찍 나와 자기 루틴을 소화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성공하려면 저 정도 간절함이 있어야 하는구나'를 다시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선수 출신인 만큼 불펜에서 캐치볼 상대가 필요할 때는 직접 글러브를 끼고 공을 받아주기도 한다. 통역 이상의 역할. 선수의 꿈은 접었지만 야구는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야구 덕분에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는 "대만에 가기 전에는 언어를 배울 수 있을지 가장 걱정했다"며 "막상 해보니 누구든 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느꼈다. 저도 했는데 못할 게 없더라. 그 경험이 지금까지도 가장 큰 자신감이 됐다"고 말했다.
김선혁 통역의 최종 목표도 여전히 야구에 있다. 아직은 경험을 쌓는 단계다. 하지만 언젠가는 한국과 대만 야구를 잇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교류나 에이전트 분야 등 두 나라를 연결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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