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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류지현 감독이 선택한 카드는 베테랑 노경은이었다. 구심과 상대에게 양해를 구해 약간의 시간을 번 노경은은 급하게 몸을 풀고 마운드에 올랐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2회를 철통같이 무실점으로 막아냈고, 손주영이 던지지 못한 3회까지 이어받아 또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노경은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주영이하고 편하게 얘기하면서 농담 삼아 '내가 뒤에 있으니까 편하게 던져라'고 얘기했었다. 2이닝까지 던지게 될 줄은 몰랐고, 그냥 다 짜냈다"고 너스레를 덜었다. 류지현 감독은 "노경은이 갑자기 올라가서 2이닝을 막아준 건 정말 존경스럽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고 밝혔다.
노경은은 2025시즌 77경기에 등판해 3승 6패 35홀드 3세이브 평균자책 2.14를 기록하며 2년 연속 홀드왕에 올랐다. KBO 최초 3년 연속 30홀드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마흔을 넘기고도 리그 필승조의 한복판에서 뛰는 투수. 그런 노경은에게도 태극마크는 13년 만이었다.
"경기 초반 실점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다. 그보다는 내가 대표팀에 뽑힌 이유를 증명한 계기가 돼서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어낸 것 같다." 그 짐을 덜어내는 데 2이닝이면 충분했다. 이어 노경은은 "던질 때는 떨리지 않았는데, 더그아웃에서 보는 입장이 제일 떨린 것 같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생일(3월 11일)을 이틀 앞두고 가장 기쁜 순간을 맞이한 노경은은 "생일을 상공에서 보내게 될 것 같다.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뜻깊은 생일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생일이라고 어필하지는 않겠다. 후배들이 알아서 챙기지 않을까?"란 농담과 함께 껄껄 웃었다.
한편 마무리 조병현은 8회부터 마운드에 올랐다. 원래 계획보다 이른 등판이었다. 쓸 수 있는 불펜 카드는 이미 앞에서 소진된 상황. 게다가 6대 1에서 김택연의 실점으로 6대 2가 되면서 한 점만 더 내주면 '2실점 이하'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조병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8회 1아웃부터 9회까지 1.2이닝을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투구수가 늘어난 9회 잠시 힘이 떨어지는 기미도 보였지만 의지로 버텼다. 9회 1사 후에는 이정후의 슬라이딩 캐치 호수비 도움도 받았다.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1루수 문보경의 글러브에 잡히며 한국의 8강행이 확정됐다.
조병현은 경기 후 승리 순간에 대해 "기억도 잘 안 난다"면서 "너무 집중해서 타자를 잡는 데만 집중했는데, 정말 좋은 공이 들어갔다. (아웃 순간) 이겼다는 게 기뻤다"고 밝혔다. "2점이 큰 점수가 아니기에 집중해서 던졌다"는 조병현은 "불펜에서 형들이 시즌처럼 던지라고 했다. 매 타자 집중해서 던졌다"고 말했다.
조병현은 2025시즌 69경기에 등판해 5승 4패 30세이브 평균자책 1.60을 기록한 리그 정상급 클로저로 자리잡은 투수다. KBO리그에서 이미 검증된 마무리 능력을 국가대표팀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도 유감없이 발휘해 보였다. 류지현 감독은 "조병현이 이런 경기에서 중압감을 이겨낸 것 자체가 앞으로 야구 인생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규시즌에서도 같은 팀 필승조로 나란히 뛰었던 두 사람이 국제 무대에서도 나란히 섰다. 노경은이 앞에서 버티고, 조병현이 뒤에서 막았기에 한국 야구가 2실점 이하라는 조건을 극적으로 채울 수 있었다. 조병현은 마이애미를 향해 "대한민국이 하나로 뭉쳐서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