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팬덤'은 단지 좋아하는 대상이 만들어주는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는 소극적인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콘텐츠를 재생산하고 또 개발하는 적극적인 생산자이기도 하다. 천만 관중 시대 KBO리그 팬들 역시 마찬가지다. 10개 구단 팬덤 모두에 다양한 방식의 '콘텐츠 제작자'가 생겨난 가운데, SSG 팬들은 구단과 협업을 할 만큼 참신한 콘텐츠들을 만들어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야구 팬의 아이돌 팬덤화'는 요즘들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치열한 토론을 이끌어내는 주제다. 아이돌 팬덤과 가까운 젊은 여성 팬들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프로야구의 시장성을 키운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하지만 모두가 이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스포츠 선수들과 아이돌은 엄연히 다른 성격을 지닌 만큼 '애정하는' 방식 또한 달라져야 한다며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팬덤'으로 시선을 좁혀보면 야구팬의 아이돌 팬덤화는 반길 만한 일이다. 논문 'K-POP 아이돌 팬덤의 문화생산 활동에 관한 연구 : 팬덤 문화활동 생산자를 중심으로(김유민, 2021,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 따르면 아이돌 팬덤이 '자체생산'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팬들은 아이돌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자, 자신에게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로 콘텐츠 제작에 나선다. 이러한 콘텐츠 생산 활동이 삶에 의미를 주고, 만족감을 충족시키며, 자기개발로도 이어진다는 반응이 나타났다.
여기서 '아이돌 팬덤'이라는 단어를 '야구 팬덤'으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구단은 팬들의 자발적 활동 덕분에 인지도를 올릴 수 있고,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구단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면서 스스로 행복을 찾는다.
여기서 눈에 띄는 팬덤이 SSG다. SSG는 과거 '비인기팀'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지만 최근 평균 관중 1만 명을 가볍게 넘기면서 안정적으로 많은 관중을 모으는 구단이 됐다. 더불어 온라인에서 팬들의 활동 범위 또한 넓어졌다. 표현 방식 또한 다양했다. SSG 팬덤에서는 매거진, 그래픽, 웹툰 형식 콘텐츠를 자발적으로 만들고 있다. SNS 알고리즘을 탄 이들의 콘텐츠는 다시 새로운 팬들에게 야구, SSG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하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진다.
SSG 랜더스 팬계정(@ssg_landers)은 일종의 '인스타그램 매거진' 성격을 띠고 있다. SSG 관련 소식이라면 무엇이든 다룬다. 팔로워가 지난해 3월 7000명에서 1년 9개월 만에 3만 명이 늘어났다. 랜더스페셜(@landerspecial)은 SSG 소식을 디자인 콘텐츠로 만들고 있다. SSG 선수들의 일러스트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면서 유명해진 뒤 모기업 쪽의 연락을 받고 본격적으로 콘텐츠 제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랜독스툰'을 연재하는 라핀(@lapin.landogstoon)은 시의적절한 '밈' 활용으로 다른 팀 팬들마저 빠져들게 만들었다
SSG랜더스팬계정은 "계정은 랜더스 창단 직후에 만든 것으로 기억한다. 팬들과 소통하면서 소식이나 영상을 올리고 싶어서 시작했다"며 "SSG 팬이 된 것은 2013년 쯤인 것 같다. 학교에서 야구장을 단체로 갔다가 그때부터 팬이 됐다. 매력 포인트는 '홈런의 팀'이라는 점, 훈훈한 팀 분위기, 다양한 먹거리, 빅보드가 있는 홈구장이다. 또 야구 외적으로 선수들이 구단 유튜브 콘텐츠에 많이 참여하고 재미있는 영상이 있어서 좋다"고 밝혔다.
올해 KBO리그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계정 또한 눈에 띄게 성장했다. SSG랜더스팬계정은 "2024년 KBO리그 흥행으로 랜더스 팬도 늘어나면서 계정도 가파르게 성장한 것 같다. 2023년 3월에 팔로워가 7000명 정도였고, 올해 4월만 해도 팔로워가 2만 1000명 대였다"고 돌아봤다. 1년 9개월 만에 3만 명이 늘었고, 이 가운데 1만 6000여 명은 최근 7개월 사이에 SSG랜더스팬계정을 팔로했다는 의미다.
랜더스페셜은 SSG 랜더스가 창단한 2021년 9월부터 그래픽 콘텐츠를 올리는 계정으로 출발했다. '와이번스 왕조'와 김광현의 투구를 보고, 특히 스포테인먼트 전략이 와닿아 2009년부터 야구 팬이 됐다고 했다. 모기업이 바뀐 지금도 수준 높은 굿즈와 다양한 오프라인 마케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또 새로운 팬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요즘 SNS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덕질 계정'은 주로 사진을 활용한 콘텐츠를 활용한다. 흔히 '찍덕'이라고 하는 방식인데, 랜더스페셜은 이와 달리 그래픽 콘텐츠를 제작해 눈길을 끌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기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그림, 디자인 콘텐츠를 업로드하다 본격적으로 SSG 랜더스를 다루는 그래픽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랜더스페셜은 "이마트 담당자께서 인스타그램 계정 운영을 제안해서 시작하게 됐다. 학창시절부터 발표자료 디자인, SNS 디자인에 관심이 있었고 세계 다수 구단들의 디자인 레퍼런스 등을 공부해 콘텐츠를 만들게 됐다"고 얘기했다. 이 경력을 바탕으로 SNS마케팅, 디자인 계통으로 창업까지 했다고.
또 랜더스페셜은 "비시즌에는 콘텐츠 소재가 부족하기도 하고, 본업으로 인해 콘텐츠 제작에 쓰는 시간이 줄어들기도 했다. 그래도 구단 매니저님께서 계속해서 기념구 이미지를 제공해주신 덕분에 꾸준히 소재를 얻을 수 있었다. 많은 팬들께서 내 디자인을 활용한 굿즈 제작을 요청해주셔서 나눔하기도 했다. 여러 기관, 기업과도 협업하면서 계속해서 계정 운영의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랜독스툰을 연재하는 라핀은 "2019년 9월에 첫 게시물을 올렸는데 그때는 야구에 대한 지식이 미흡해서 경기나 선수 얘기보다는 야구가 가미된 내 일상물에 가까웠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그때는 정말 많이 부족했다"고 돌아보면서 "야구장을 처음 간 것은 2015년이다. SSG의 매력은 조금씩 스며들게 만든다는 점 같다. 어느 순간 구장이 내 집 같고, 선수들은 원래 알고 지낸 사람들 같이 가족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선수도 구단도 팬들도 모두가 잘되기를 바라고 응원하게 된다"고 얘기했다.
'인스타툰'을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그때(처음 시작할 때)는 야구 일상툰이 많지 않았다. (있더라도)주로 포털사이트에 연재됐고 10개 구단을 모두 주제로 하거나 다른 구단 얘기였다. 인스타그램에는 SSG 팬들이 많은데 SSG를 소재로 하는 만화는 없다는 걸 알고 그리기 시작했다. 웃기는 걸 좋아해서 경기에서 이겨도 져도 많은 팬들이 공감하고 웃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고 밝혔다.그러면서 "만화를 봐주시는 '으쓱이(SSG 팬들)' 덕분에 계속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라핀은 "초창기에 그림판으로 그리던 때부터 계속 지켜봐주신 분들도 있고, 또 알고리즘을 통해 알게 되신 분들도 있는데 한 분씩 오실 때마다 너무 기쁘다. 인스타그램에 있는 야구 만화 중에 제일 웃기다고 해주신 분이 계신데 감동해서 저장해놨다. 으쓱이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분노할 때가 제일 좋다"고 했다.
이제 SSG는 엄연한 인기 구단이다. 2018년 이후 최근 7년 동안 네 차례 100만 관중을 달성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입장 제한이 있었던 2020년과 2021년을 제외하면 6시즌 가운데 네 차례 100만 관중을 넘긴 것이다. 2023년 106만 8211명, 올해 114만 3773명으로 창단 후 첫 2년 연속 100만 관중도 기록했다.
SSG랜더스팬계정은 "굿즈 구매나 포토카드 발급, 유니폼 마킹에 긴 대기줄을 보면서 정말 팬들이 많아진 게 실감이 난다"고 했다. 랜더스페셜은 "SK 시절과는 확연히 다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100만 관중도 여러 번 달성했고 티케팅도 상당히 어려워졌다. 2030 여성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만든 각종 캐릭터, 무신사 같은 패션 브랜드와 협업은 큰 화제가 되고 또 오픈런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밝혔다.
라핀은 "특별한 경기가 있는 날에는 티켓을 구하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무척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아기를 안고 오는 부모, 야구장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 막걸리와 함께 경기를 보시는 할아버지, 야구선수가 꿈인 아이들 등 누구든 SSG에 빠져드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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