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가 나왔다고? 스피드건 맞는지 확인 한 번 해봐"
SSG 가고시마 마무리캠프 중 진행된 일본 실업팀과 연습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이숭용 SSG 감독은 한 선수의 구속에 깜짝 놀랐다. 즉시 프런트에 "스피드건을 확인해보라"고 지시했고, 스피드건에 이상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감독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면서 "지금 이 시기에 저 구속이 나오면 내년에는 더 올라갈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감독을 깜짝 놀라게 한 선수는 2025년 SSG의 5선발 경쟁에 강력한 후보로 떠오른 우완 정동윤(27)이다. 이날 다른 선수들은 모두 1이닝씩을 던졌지만, 정동윤은 선발로 나서 3이닝을 너끈하게 무실점으로 막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어린 시절 큰 체구에도 불구하고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140㎞대 초반에 머물러 아쉬움을 남겼던 정동윤은 마무리캠프에서 140㎞대 중·후반의 빠른 공을 던지며 코칭스태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장 큰 약점이 하나 둘씩 지워지고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사실 오래 돌아왔다. 야탑고를 졸업하고 2016년 SSG의 1차 지명을 받은 정동윤은 추후 프로 선수로서의 몸을 만든다면 완성형 선발로 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모은 선수였다. 193㎝라는 건장한 체격 조건에 공의 각도 좋았고, 여기에 다양한 변화구를 던질 수 있었다. 손에 감각이 워낙 좋다는 평가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좀처럼 1군의 벽을 뚫지 못했다. 구속은 올라오지 않았고, 1군 선발진에는 자리가 없었다. 신체적으로 너무 유연한 게 탈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상무에 다녀와 의욕적으로 다시 1군 도전에 나섰지만 2021년 1경기 출전에 그쳤고, 이후로는 팔꿈치 수술까지 겹치면서 잊힌 유망주가 됐다. 하지만 SSG는 정동윤을 포기하지 않았다. 항상 성실한 훈련 자세를 눈여겨 본 SSG는 2024년 시즌 중반 미국 트레드 애슬레틱에 정동윤을 보내 단기 연수를 받도록 했다. 여기서 몸에 힘을 쓰는 법을 많이 배운 정동윤은 돌아온 뒤 확실한 구속 상승세를 보이며 올해 1군 3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했다.
사실 데뷔 당시의 정동윤과 지금의 정동윤은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됐다. 데뷔 당시에는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위주의 투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구속도 빨라지고, 새롭게 장착한 커브가 더 돋보이는 선수다. 트레드 애슬레틱에서는 정동윤의 커브에 대해 "마치 벽에 맞고 떨어지는 것 같다"는 호평으로 자신감을 북돋았다. 올해 1군에서도 커브가 결정구 몫을 하면서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숭용 감독도 내년 5선발 후보 중 하나로 정동윤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다.
어쩌면 프로 데뷔 이후 가장 좋은 기회가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구단에 감사한 마음이 큰 정동윤도 이 기회를 잡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정동윤은 "돌아보면 너무 감사한 시즌이었다. 내가 나이도 적은 편이 아닌데 나의 가능성을 보고 구단에서 투자를 해 주셨다. 그런 것에 엄청나게 감사했다. 2군 성적이 막 좋지도 않았는데 콜업이 돼 1군에서 오래간만에 던져볼 기회도 있었다"면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 해보려고 한다"고 의욕을 다졌다.
"선발이든 불펜이든 그것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모두 할 수 있다"고 의욕을 다지는 정동윤은 비시즌 동안 투심패스트볼을 연마하고 있다. 냉철한 자기 분석에서 시작된 업그레이드 시도다. 정동윤은 "패스트볼과 커브가 있는데 반대로 꺾이는 구종이 하나 있어야 한다. 트랙맨 데이터를 봤는데 패스트볼의 수직 무브먼트가 너무 평균값이라 타자들이 잘 칠 수 있는 공이다. 투심을 한 번 던져보자고 했고, 경헌호 코치님과 연습을 하면서 메커니즘 수정도 조금 들어가니 직구의 수직무브먼트가 더 좋아졌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투심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실전에서 바로 던지고 있을 정도로 여전히 좋은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몸에 익었다 생각했을 때 다시 도망가는 게 감각이다. 정동윤은 "계속 꾸준히 해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자신에게 전환점을 마련해 준 트레드 애슬레틱에 다시 다녀올 생각이다. 시즌이 끝나면 곧바로 미국에 갈 생각도 있었지만 일단 어느 정도는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는 트레이닝파트의 권유에 시점을 고민하고 있다. 정동윤은 "개수는 많이 가져가도 이제 큰 부담이 없다. 수술 후 70개를 던지면 다음 날 근육통이 심했는데 요즘은 70~80개를 던져도 너무 멀쩡하다. 체력적으로 이번 겨울이 중요하다"면서 "당장 미국에 갈 생각이었는데 고민을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조언을 듣고 선택해야 할 것 같다. 겨울에 나의 정립된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의욕을 보였다.
희망이 보여서 더 그렇다. 정동윤은 "상무에 다녀와서도 기회가 없었고 2년 있다가 수술도 하고, 수술도 길어졌다"면서 "올해가 기회다. 이제 마무리캠프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소 진중한 성격은, 어쩌면 시련을 겪으며 더 전사적인 성향을 추가하고 기회에 욕심을 낼 줄 아는 성격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구단도, 선수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SSG 마운드의 희망이 다시 뜰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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