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왜 그러지, 무슨 일이 있나"
올해 3월 SSG 퓨처스팀(2군)의 대만 전지훈련 당시, 한 신인이 연습경기에서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청주고를 졸업하고 2024년 SSG의 3라운드(전체 30순위) 지명을 받은 박기호(19)가 마운드에서 난타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시헌 당시 퓨처스팀 감독의 얼굴이 굳어졌고, 경기를 지켜보던 프런트도 가슴을 졸였다.
상대는 대만 프로 1군 팀으로 수준이 낮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7타자에게 내리 안타를 맞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이 정타였다. 경기 결과가 문제가 아니었다. 어린 선수가 시작부터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을까 모두가 노심초사였다. 8개월 전 당시를 떠올리는 박기호는 "그때 생각은 최대한 안 하려고 했다"고 웃으면서 "어떻게 보면 좋은 경험이었다. 그래도 그런 경험이 더 빨리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애써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이 연습경기는 그냥 단순한 연습경기가 아니었다. 자신의 방향성을 다시 되짚어보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박기호는 언더핸드에 가까운 팔 각도를 가지고 있다. 공의 무브먼트가 좋고, 약한 타구를 이끌어내는 좋은 능력을 가졌다. 청소년 대표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하고, 3라운드 지명으로 이어진 힘이었다. 그러나 한 번 벽에 부딪힌 박기호는 팔 높이에 대한 고민을 일찍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팔을 높이면 구속은 대개 빨라진다. 구속에 욕심을 내지 않는 투수는 없다. 가뜩이나 구속 혁명의 시대라 더 그렇다. 박기호에게도 유혹이 있었다. 일부 코칭스태프도 그런 방향을 권했다. 박기호는 "대만 캠프가 끝나고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경기보다는 몸을 더 만드는 것에 중점을 뒀다. 팔을 올리면 어떻겠느냐는 말도 있어 팔을 올려서 던져보기도 했다. 확실히 구속 같은 것은 좋아졌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11월 가고시마 캠프가 마무리된 지금, 박기호의 팔 높이는 차이가 없다. 원래 자신의 각도를 고수하기로 했다. 박기호는 "연습경기도 던져보고 시즌 시작해서도 퓨처스리그에서 던져봤다. 그런데 홈런 두 방을 맞았다. 공은 빨라지는데 내 길은 아닌 것 같았다"면서 "내 장점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구속은 오르지만 정타가 더 많아졌다. 원래 내 모습대로 던지자고 던졌는데 조금씩 더 좋아졌다"고 1년을 돌아봤다.
비록 1군 무대에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올해 퓨처스리그에서 28경기에 나가 54⅔이닝이라는 적지 않은 이닝을 소화했다.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성적이 더 좋아졌다는 것 또한 고무적이었다. 시즌 중반 2군으로 내려온 배영수 코치의 지도에서도 많은 덕을 봤다. 박기호는 "다른 변화구보다는 체인지업을 조금 더 집중적으로 던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러니 결과도 훨씬 좋아졌다. 팀에서 감독님, 코치님이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달라지니 훨씬 더 좋아졌고, 앞으로 컨트롤적인 부분을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구속에 대한 유혹을 이겨내고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기로 마음 먹은 박기호는 이숭용 SSG 감독의 기대주 중 하나다. 이 감독은 박기호가 전형적인 '경기용 투수'라고 본다. 빠르게 상대 타자들과 상대하면서 1~2이닝을 효율적으로 막아줄 수 있는 기대주로 이번 캠프에서 눈에 넣었다. 박기호 또한 그런 것이 자신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장점을 최대한 살려 1군의 벽에 도전한다는 각오다.
박기호는 "지금 어느 정도 틀은 잡혔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변화구와 직구를 던질 때 팔 높이에 조금의 차이가 있다. 최대한 차이가 안 나게끔 연습하고 있다"면서 "시즌을 치르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체력적인 부분이다. 역시 아마와 프로는 힘부터 다르더라. 힘이 밀린다는 생각을 조금 많이 했다. (이번 비시즌은) 공을 던지는 것보다는 몸을 만드는 데 집중해 훈련을 할 생각이다. 3~4번 클린업 트리오를 상대로도 힘으로 싸울 준비가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 돼서 아쉬웠다"고 보완점을 차분하게 짚었다.
빠른 구속으로, 혹은 힘으로 상대 타자를 윽박지르며 삼진을 잡아내는 것은 투수의 로망이자, 많은 팬들에게 희열을 주는 이벤트다. 그러나 삼진을 잡으려면 한 타자당 최소 세 개의 공이 필요하다. 박기호는 자신이 갈 길은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신 한 이닝을 세 개의 공으로 끝내는 투수가 되고 싶다. 지금 SSG에 필요한 선수다. "그런 투수가 될 자신이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박기호에게 큰 기대가 걸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