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에 왔지만, 고등학교 때는 스스로를 '별 볼일 없는' 선수라고 했다. 구속은 시속 120㎞에 머물렀다. 올해 SSG 마운드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신인 박성빈(21)은 "고등학교 때 공도 그저 그런 선수였다. 대학교 가서, 그리고 여기(프로)에 와서 많이 늘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나는 감각도 그렇게 좋지 않은 선수"라고 몸을 낮췄다.
올해 성적을 보면 의외의 답변이기도 하다. 사이버한국외대를 나와 2024년 SSG의 7라운드(전체 70순위)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단한 박성빈은 결과를 떠나 SSG 팬들이 가장 시원하게 바라본 투수였다. 보통 신인급 선수들이 결과를 지나치게 의식하다 자기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박성빈은 그렇지 않았다. 거침없는 승부로 큰 주목을 받았다. 성적도 좋았다. 퓨처스리그 34경기에서 4승2패15세이브1홀드 평균자책점 2.44로 활약한 것에 이어 시즌 막판에는 1군에 올라와 3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했다. 볼넷은 하나도 없었다.
스스로를 돌이켜볼 때 약했던 선수라고 말한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구속도 특별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손에 감각이 좋은 선수도 아니었다. 박성빈은 "고등학교 때는 구속이 시속 120㎞ 정도에 머물렀다. 제구도 안 됐다"고 했다. 지명을 받지 못한 건 당연했다. 야구만 보고 달려왔는데 실망이 컸다. 120㎞의 공으로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박성빈은 계속 가보기로 했다. 그 결정은 박성빈의 인생을 바꿨다
박성빈은 "그냥 야구만 아니면 답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공부 쪽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축구도 같이 하다가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면서 "잃을 것도 없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자는 생각이었다"고 대학 시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와 나약함을 지우기 위해 의식적으로 공격성을 장착했다. 그 결과는 박성빈을 프로로, 그리고 1군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동력이 됐다.
사실 지금도 마음 한켠에는 나약한 점이 있다고 말한다. 숨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도망가지 않는다. 가운데만 보고 던진다. 박성빈이 올해 1군에서 평균자책점 0의 결과와 별개로 강한 인상을 심어준 이유다. 박성빈은 "제구에 자신감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타자와 승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조건 유리하게 카운트를 잡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고 하면서 '여기'만 보고 계속 세게 던진다고 했다. '여기'는 스트라이크존, 투수들이 궁극적으로 가야 할 곳이다. 방향성은 확실히 잘 잡고 있는 셈이다.
1군에 데뷔했고, 성적도 좋았고, 그 성과를 가지고 팀 내 최고 유망주들이 모이는 가고시마 캠프까지 왔다. 나름대로 성공적인 첫 시즌이라고 할 만하다. 박성빈은 주위의 칭찬에 감사해 한다. 그는 "나는 코스를 정교하게 딱딱 던지는 투수는 아니다. 여기만 보고 세게 던지는 그런 투수다. 공격적으로 들어가는 게 내 장점"이라면서 "구위가 압도하는 정도는 아닌데 공의 끝이 조금 더러워서 타자들이 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해주신다"며 주위의 칭찬이 자신감을 배가시키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자신의 장점은 계속 이어 가고 싶다는 게 박성빈의 가장 기본적인 각오다.
공이 더 좋아지고, 타자들을 상대할 무기가 더 많아지면 자신감은 더 붙게 되어 있다. 가고시마 캠프는 그 과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박성빈은 "1군에서 많은 경기에 나가지 못했다. 성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으면서 "지금 가장 부족한 건 변화구다. 지금 슬라이더와 직구, 투심을 던지는데 1군 코치님들이 말씀하시길 체인지업을 던져 다른 쪽에서 떨어지는 변화구를 만들려고 한다. 체인지업은 계속 연습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좌·우 타자에 모두 결정구 하나씩이 있다면 활용성은 배가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구속도 느리지 않고 2m가 넘는 익스텐션을 가지고 있어 체감 구속은 훨씬 더 빠르다. 이숭용 감독도 박성빈의 공격적인 성향을 높게 평가한다. 경기에서 크게 지고 있거나, 혹은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코칭스태프가 이런 어린 투수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실점'이 아니다. 몇 점 주더라도 투구 수를 아끼면서 많은 이닝을 소화하길 바란다. 그렇게 결과가 좋으면 팀 내 입지도 단단해 진다. 대다수 스타들이 이 과정을 거친다. 이 감독은 박성빈이 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기대한다. 팀 내 옆구리 유형 선수들이 많지 않은 만큼 1군 활용의 가능성도 열어뒀다. 박성빈에게는 대단히 좋은 기회다.
박성빈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성과를 계속 이어 나가 2025년에는 1군에 자리를 잡는 데 목표다. 장점은 계속 보여주겠다고 의지를 다진다. 박성빈은 "맞더라도 들어가는 것은 자신이 있다. 피하지 않을 것이다"면서 "타자들의 이름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 똑같은 타자라고 생각하고 포수만 보고 던진다. 이 타자가 누구냐 하면 나 혼자 위축된다. 그런 것을 안 하려고 한다. 신경을 쓰지 않고 내 공만 던질 것이다. 투수도 공격적이면 타자들이 쉽게 치지 못한다"고 재차 다짐했다. SSG가 목말랐던 그 공격성이 2025년 마운드의 희망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