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의 선발 투수 부족은 외국인 투수 기용과 궤를 같이한다. 기아(KIA) 타이거즈가 2009년 시즌 27승을 합작한 외국인 선발 두 명(아퀼리노 로페즈, 릭 구톰슨)을 앞세워 통합 우승을 차지한 뒤 다른 구단들도 앞다퉈 두 명의 외국인 선수 자리를 투수로만 채우기 시작했다. 2014년부터 외국인 선수 3명 보유-2명 출전으로 제도가 바뀌자 외국인 선발 2명은 그대로 고착화됐다. 이는 국제 대회 성적 하락 시기와 맞물린다.
기존 국내 투수들이 3~5선발에 자리하면서 빠른 공을 가진 신인 투수는 자연스럽게 불펜으로 밀렸다. 미래 선발 가능성이 있는 좋은 공을 가졌다고 해도 현장 감독들은 1주일에 한 번 쓰는 선발보다는 2~3차례 기용이 가능한 불펜을 더 선호했다. 이기기 위해서는 선발보다 강한, 자주 쓸 수 있는 불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010년대 중반 리그 흥행을 위해 KBO가 공인구 반발계수를 높이면서 극단적인 타고투저가 이어지자 경험이 적은 저연차 투수들은 마운드에서 더욱 버틸 수 없게 됐다. 얻어맞고 낙심하고 도태됐다. 안우진(키움) 같은 선수가 간혹 나오기는 했으니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리그 자체가 선발 투수 육성이 어려운 환경이다. 당장의 성적이 중요한 구단과 현장 감독은 눈앞의 과실만 바라보고, 어린 선수들의 어깨는 불펜에서 소위 ‘갈리는’(소모되는) 리그가 된 지 오래다.
그나마 2023 세계야구클래식 참패 뒤 23살 이하의 어린 투수들로 대표팀 꾸리면서 원태인(삼성), 문동주(한화) 등이 국제무대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번 프리미어12에서 보듯이 가용 자원이 부족해서 부상 등이 겹칠 때 플랜 B, 플랜 C 등의 대안이 없다. 결국 리그 자체적으로 국내 선발 투수를 양적으로 늘리는 수밖에 없다.
문제점은 드러났고 해결 의지가 있어야 하지만 KBO와 구단들은 현재 프로농구, 프로배구와 같은 아시아쿼터 도입을 논의 중이다. 일본, 대만, 호주 등에서 선수를 수급하겠다는 것인데, 구단들이 원하는 포지션은 대체로 투수라서 이 또한 어린 선수들이 설 자리를 더 위협하게 된다. 표면적으로 ‘경쟁력 향상’을 이유로 들지만 경쟁에서 제일 먼저 소외되는 이는 어린 선수다.
프로축구 K리그는 2015년부터 ‘23살 이하 의무 출전’ 규정(클래식 기준·K리그 챌린지는 22살 이하)을 두고 있다. 각 구단은 23살 이하 선수를 경기 출전 선수 명단(18명)에 2명 포함해야 하고, 1명은 의무출전시켜야만 한다. 이런 로컬 규정으로 강제적으로 어린 선수들이 경기에 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2026 북중미월드컵 3차 예선 쿠웨이트전에서 골을 넣은 배준호(2003년생) 같은 선수가 그냥 툭 튀어나온 게 아니라는 말이다.
혹자는 말했다. “야구는 로컬(지역) 스포츠”라고. 국제 대회 성적과 무관하게 팀 성적이 더 중시되는 리그라고. 하지만 진짜 그럴까. “타자의 발전 속도를 투수가 못 따라간다”거나 “아마추어 때 훈련량이 너무 적어 프로 적응이 힘들다”는 얘기는 이제 그만 듣고 싶다. 육성이란 선수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면서 리그, 구단, 선수가 다 함께 성장해 가는 것이다. 누구나 초보 시절은 있고, 기다림의 시간은 필요하다. 이를 제도적으로 받쳐주는 것이 필요할 따름이다. 성적지상주의에 가려 잊고 있는 게 무엇인지 되새김질해봐야 한다. 한국 야구가 ‘아시아 넘버 쓰리(3)’라는 현실이 조금은 창피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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