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기간에도 KIA 팬들에게 야구 외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선수였다. 김도영(21)이 가장 마음에 든다는 별명 'The Young King'을 만든 주인공이기도 했고, KIA 구단과 선수들 관련 SNS를 보다 보면 익숙하게 보이는 것이 그의 계정이었다. 지난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두고는 자신의 SNS를 통해 "행운을 빕니다. 미국에서 지켜보고 있을게요. KS 우승"이라는 문구를 직접 작성해 올리기도 했다.
그와 스프링캠프부터 함께한 박재형(27) 통역은 31일 스타뉴스와 인터뷰에서 "크로우는 굉장히 쾌활한 선수였다. 스프링캠프에 합류했을 때부터 선수단에 먼저 다가가려 했다. 어린 선수부터 베테랑까지 이름을 다 외우고 이야기는 통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유대감을 형성하려 했다. 그 결과 빠르게 팀에 녹아들었다"고 뒷이야기를 풀었다.
박재형 통역에 따르면 올해 외인들은 KIA 어린 선수들을 알뜰살뜰 챙겼는데 대표적인 선수가 크로우와 네일이었다. 크로우의 경우 비록 갑작스러운 부상 탓에 불발됐으나, 어린 선수들과 식사 자리를 추진하려 했었다. 이 부분에 대해 박 통역은 "외국인들의 눈에는 한국 스포츠의 선후배 문화나 위계질서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KIA에서는 그와 관련해 문제가 없었음에도 미국은 프로에 들어오면 다 같은 야구 선수, 동료일 뿐이라 그 부분을 흥미로워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와 관련해 혹시 답답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말하라며 김도영, 윤영철 등 어린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식사 자리도 그런 스킨십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일찍 떠나는 바람에 자리가 성사되진 못했다"고 덧붙였다.
메이저리그에서부터 친화력이 남달랐던 크로우지만, KIA 프런트와 선수들이 있어 새로운 문화와 동료들에게 더욱 빠르게 녹아들 수 있었다. KBO 선배 소크라테스는 나서는 타입이 아님에도 새 외국인 선수들이 오면 광주의 맛집과 명소를 소개하며 빠른 적응을 도왔다. 또한 그동안 쌓인 상대 팀에 대한 정보들로 투수들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KBO 타자들의 스타일을 고려해 많은 조언을 하기도 했다. 어린 선수들은 그에게 스스럼 없이 다가와 많은 것을 물으며 어색함을 풀었다.
5월 부상 당시 심재학 단장을 비롯한 KIA 프런트의 진심 어린 대처는 크로우를 감동시켰다. 박 통역은 "5월에 돌아가 짧은 시간 함께 있었지만, 크로우는 내게 KIA가 가족 같고, 한국인의 정이라는 게 무엇인지 느꼈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일례로 부상 당한 외국인 선수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안 좋게 헤어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심재학 단장님은 부상 당시 크로우에게 최대한 구단에서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정확한 진단이 나오기 전까지 크로우의 거취와 관련해 일절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또 선수 본인에게는 '우리는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 흔들리지 말자'고 했다. 그때 크로우는 굉장히 뭉클함을 느꼈고 KIA 프런트와 선수단이 정이 정말 많고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고 느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크로우는 지난 6월 미국에서 오른쪽 팔꿈치 내측 측부인대 부분 손상 진단과 함께 수술을 받았다. 최소 1년의 재활 기간이 필요해 한국으로의 복귀는 당분간 요원하다. 하지만 그는 언제가 될 지 모를 KBO 리그 복귀를 위해 한국어 공부 삼매경이었다.
박 통역은 "크로우는 미국에서는 KBO 리그가 새벽 시간에 하는데도 항상 KIA 경기를 챙겨보고 끝나면 단체방에 '오늘은 (김)도영이가 잘했다, (최)형우 선수가 잘했다'는 등 리뷰를 했다. 영상통화나 메시지를 자주 주고받는데 한국을 굉장히 그리워하고 있다. 본인도 재활 탓에 KBO에 당장 돌아오기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재활 후 경기도 뛰고 나름대로 준비를 한 뒤에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도 하루에 한두 문장씩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내가 어떤 문장을 알려주거나 크로우가 먼저 녹음해서 보내주면 이 문장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내가 그걸 조금 더 정확한 발음으로 녹음해서 보내주는 식인데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곧잘 한다"고 웃으면서 "한국을 떠난 뒤 한글을 잘 몰랐던 것에 굉장히 후회를 많이 했다고 했다. 몇 개월 동안 한국의 문화와 야구에 대해서는 많이 이해했지만, 한국어를 공부하는 데 조금 더 노력했으면 어땠을까 싶어 아쉬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범호 감독이 취임 일성으로 약속했던 선수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분위기가 외국인 선수들의 빠른 적응을 도운 셈이다. 박 통역은 "올해 외국인 선수들이 무탈하게 뛰고 간 원동력에는 선수단 분위기가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편하게 해준 덕분에 외국인 선수들도 빠르게 원팀(One-Team)이 될 수 있었다"며 "나도 올해가 야구단 통역 일이 처음이라 불안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선수들이 오기 전에 미리 메이저리그 인터뷰나 SNS도 찾아보고 공부를 많이 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은 성격의 선수들이었다. 무엇보다 단순히 통역이 아닌 친구로서 동등한 위치에서 대해주고 최대한 존중해주려는 모습이 정말 고맙고 기억에 남았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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