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18, 19년도 쯤부터
아빠 따라 기아 야구 찔끔찔끔 보기 시작했거든
근데 그때 볼때마다 진짜 몸을 던져서
야구를 하는 것 같은 선수가 있는 거야
얼핏 이름 보고선 에이 설마 했는데
다시 보니 진짜 이름이 박찬호야
쟨 웬만큼 야구 잘하지 않는 이상
그 이름의 그림자를 벗어나기 힘들겠다 싶었지
어차피 그땐 가볍게 보던 때라 기아가 지든 이기든
나한텐 별 상관 없었고
못하면 그냥 쯧쯧 하고 말던 시절인데
찬호가 타석에 서면 왠지 궁금했음
물론 결과는 안 좋았던 적이 많았지
근데 그런 애가 어떻게든 출루하면
맨날 유니폼이 다 흙으로 더러워져도 굴하지 않고
뛰고 또 뛰고 도루하고 그러는 거야
난 자기 타격으로 점수를 잘 못 내는 선수가
그렇게 발로 점수를 만드는 과정을 보는 게
참 재밌었던 것 같아
그러다 어느날 찬호가 만루 타석에선가
진짜 아무도 기대 안 하고 있었는데 싹쓸이 적시타를 친 거야
그때 애가 넘 좋아하더라고
물론 누구에게나 기쁜 싹쓸이지만
그냥 찬호가 워낙 투명하잖아
그 기뻐하는 모습에서
쟤가 얼마나 야구를 좋아하는지 알게 됐던 것 같아
결국 구렇게 나도 야구를 좋아하게 됐고
아빠랑 같이 매일 저녁 야구를 챙겨보기 시작했어
타석에 서면 해설들한테도 혼나는 찬호였는데
꾸준히 보다보니 애가 혼도 덜 나고 점차 성장을 하더라고
성장의 속도는 더뎠을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 뛴 모든 경기에서 찬호는 참 간절했던 것 같아
ㅇㅇㅁ 시절부터 내 뇌리에 박혀있던
찬호가 뛰고, 몸 날려 수비하던 모습들이 늘 그걸 말해줬어
난 그런 야구가 참 좋았어
그냥 공놀이인 줄만 알았던 야구가
누군가에겐 인생이고 꿈이란 걸 체감하게 해줬달까
그래서 진짜 뒤늦게 사게 된 첫 유니폼은 찬호로 팠어
오늘은 그 유니폼을 사길 정말 잘 했단 생각이 드는 날이다
기아 야구 좋아하게 해줘서 고맙다 찬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