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잠실에서 회복 훈련을 시작한 곽빈은 취재진과 만나 “팬들에 대한 약속을 못 지킨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했다.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곽빈은 잠실 홈 팬들에게 인사하며 “작년 가을야구 제가 못했는데, 올해는 꼭 설욕하겠다”고 다짐했다.
곽빈은 1차전 1회를 돌아보며 “30개 정도를 던졌는데 체감상 5초 만에 지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빠른 카운트에서 연속 안타를 계속 맞다 보니 숨돌릴 여유도 찾기가 힘들었다. 4연속 안타를 맞는 동안 멜 로하스 주니어에게 맞은 첫 안타를 제외하고 모두 변화구를 던졌다가 맞았다. 최고 시속 156㎞까지 나올 정도로 직구가 좋았는데, 그 직구를 살리지 못한 게 결과적으로 아쉬웠다.
곽빈은 “공은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KT 타자들이 잘 준비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백호까지 방망이를 짧게 잡고 치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공략을 잘 못 한 것 같다. 변화구를 던져야 할 타자에게 직구를 던졌고, 직구를 던져야 할 타자에게는 변화구를 던졌다. (김)기연이 형이 원하는 대로 잘 던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쨌든 지난 일이다. 곽빈은 “다친 곳 없이 정규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많이 힘들었지만, 그 또한 경험이라 생각하려 한다”고 말했다.
정규시즌 곽빈은 선발 줄부상 속에 로테이션을 지키며 시즌 내내 1선발 역할을 했다. 30경기에 나가 167.2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4.24를 기록했고, 15승(9패)으로 삼성 원태인과 공동 다승왕에 올랐다. 곽빈은 “외국인 투수가 없으니까, 나까지 빠지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있었던 건 맞다. 그래도 아프지 않고 시즌을 잘 치른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많지 않은 나이에 에이스 역할을 떠안았지만, 곽빈은 “그냥 하자고 생각했다. 열심히 준비했고, 욕심도 많은 성격이라 더 나은 모습을 계속 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내년 시즌 곽빈은 더 꾸준한 투구를 하는 게 목표다. 올 시즌 기복이 없지 않았다. 5월에는 월간MVP를 받을 정도로 빼어난 피칭을 했지만, 부진한 달도 있었다. 때로 5회를 못 버티고 이르게 마운드에서 내려가기도 했다. 곽빈은 “안 좋으면 계속 안 좋고, 좋으면 계속 좋거나 해야 하는데 올 시즌은 유독 왔다갔다한 것 같다”고 했다.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30번 던져서 20번 잘 던지고 10번 정도 못 던졌다고 생각하려 한다”는 것이다. 못 던진 10번을 내년엔 얼마나 줄이느냐가 과제다.
생애 첫 다승왕 타이틀을 따낸 것도 성과다. 하지만 곽빈은 ‘다승왕을 따냈다’는 말에도 웃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솔직히 잘 와닿지는 않는다. (원)태인이가 워낙에 잘했다. 떳떳한 느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내년 혹은 그 이후라도 언젠가 더 흠잡을 것 없는 시즌을 치르고, 더 큰 상을 당당하게 받겠다는 속내다.
시즌을 마치고 회복 훈련을 시작할 때까지 곽빈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푹 쉬었다고 했다.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평소 가기 어려웠던 교회도 다녔다. 물론 그러면서도 유산소 운동 등 기본적인 관리는 놓지 않았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내년을 준비한다. 체력을 다지고, 멘털 강화에도 힘쓸 계획이다. 곽빈은 “이영수 코치님이 평소 많이 알려주신다. 사생활부터 멘털이 잡혀있어야 한다고 하시더라. 평소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 실전에서도 크게 안 흔들린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런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곽빈은 평소 “3년은 꾸준히 잘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닐까. 곽빈은 고개를 저으며 “계속 에이스라고 하지만, 나는 에이스가 아니라 ‘에이스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아직은 내 입으로 에이스라고 말을 못하겠다”고 했다. 이제 25세지만 팀 투수진이 전반적으로 어려지면서, 큰 책임을 짊어진 면도 있다. 곽빈은 “저는 아직도 배우는 단계라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그런 자리가 빨리 온 것도 같다”고 말했다.
곽빈은 스스로 한 단계씩 허들을 올리고 있다. ‘3년은 꾸준히 잘하는 투수’에서 이제는 ‘진짜 에이스’가 되려고 한다. KIA 양현종, SSG 김광현처럼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들의 이름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곽빈은 “(양)현종 선배님 보면서 정말 많은 걸 느꼈다. 현종 선배처럼 해야 정말 대투수고, (김)광현이 형처럼 해야 그런 대투수가 되는 건데 정말 쉽지가 않더라”고 했다.
곽빈은 여전히 젊다. 아직도 프로 생활이 한참 남았다. 곽빈은 “쉽지 않을 거라고 당연히 생각은 했다. 차근차근 올라가려고 한다. ‘작년보다 더 잘했네’라는 말을 듣고 싶다. 더 나아진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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