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상현은 지난 25일 수원 한화전에 선발 등판했다. 데뷔 후 6번째 등판이었고 선발로는 5번째 등판이었다. 아직까지 승리는 없었다. 경기 초반 마운드에 있던 원상현이 손짓을 했다. 포수 장성우가 ‘공 바꿔 달라는 뜻이냐’는 제스처를 했다. 원상현은 고개를 흔들더니 또 손짓을 했다. 장성우가 한 번 더 물었지만 변함없었다. 마운드로 올라오라는 손짓이었다. 장성우(34)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마운드로 올라갔다.
이강철 감독은 이 장면을 두고 “우리 투수 중에 포수 장성우 저런 식으로 부르는 투수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며 웃었다. 나이로는 14살, 입단 연도로는 16년 선배 포수를 그것도 경기 초반 불러서 한 말은 이거였다.
“오늘 직구가 좀 날리는 거 같아요. 체인지업으로 카운트 잡고, 커브로 유인구 쓸 게요.”
장성우는 “알았다”며 엉덩이를 툭 쳐주고 돌아왔다.
원상현은 자기 말을 지켰다. 배운지 얼마 안되는 체인지업을 효과적으로 던졌다. 한화 타선을 상대로 6이닝을 3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데뷔 첫 승리를 따냈다.
한화와 경기 중 투수 옆을 스치는 땅볼 타구가 2루수를 향했고, 무난히 2루 땅볼 처리 되며 이닝이 끝났다. 마운드를 내려 온 원상현이 또 쪼르르 이 감독을 찾았다. 글러브를 내밀더니 “감독님, 보셨어요? 공이 글러브를 맞았어요!”라고 외쳤다.
이 감독은 “그래서 결과가 바뀐 것도 아니고, 그냥 2루 땅볼이 됐다. 그 얘기 왜 나한테 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며 허허 웃었다.
그 거침없는 질문과 요청이 승리를 만들었다. 원상현은 경기 뒤 인터뷰에서 이날 효과적이었던 체인지업에 대해 털어놓았다. 삼성 원태인의 체인지업이 마음에 들었고, 한 번 딱 본 적이 있어서 ‘인스타 DM’을 보냈단다. 체인지업 그립 알려달라는 요구에 원태인이 답했고, 그 조언을 더해 열심히 연습한 끝에 효과적인 체인지업이 완성됐다.
자기 팀 선배도 아니고, 다른 팀 선배한테, 겨우 한 번 봤는데 대뜸 DM을 보내 묻는 것도 놀랍지만 그걸 자기 걸로 소화시킨 것도 대단했다. 이 감독은 “제춘모 코치와 체인지업을 두고 많이 연구한 것 같더라. 체인지업이 탁탁 끊어지듯 잘 떨어졌다”며 “DM 얘기는 나도 못 들었다”며 또 웃었다.
독특한 투구 습관도 있다. 원상현은 투수 앞 땅볼이 나오면 모자부터 벗고 달려든다. 자칫 땅볼처리와 송구 때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모자가 다소 헐겁다’는 설명이지만, 그럼 꽉 끼는 모자를 쓰면 된다. 그런데, 그러면 던질 때 불편하단다. 이 감독은 “모자 벗는 시간에 한 발이라도 더 빨리 뛰면 좋겠구먼”이라면서도 싫지 않은 눈치다. 이 감독은 “원상현 던지는 거 보고 있으면 재밌어서 이닝이 금방 금방 지나간다”며 웃었다. 이닝이 끝나면 또 쪼르르 달려와 무슨 말을 할 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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