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대 최고 포수의 길을 걷고 있는 두산 베어스 양의지(37)는 신인 투수 김택연(19)의 공을 처음 받은 날 깜짝 놀랐다. 양의지는 두산을 비롯해 NC 다이노스, 국가대표팀에서 리그 최고 투수들의 공을 거의 다 경험한 베테랑인데도 김택연의 공은 어딘가 달랐다. 19살 나이에 이 정도 완성도를 갖춘 투수는 처음이라 신선한 충격이었다.
현재 두산 국내 에이스로 성장한 곽빈(25)과 NC 좌완 에이스 구창모(27, 현 상무)를 예로 들었다. 18일 대전에서 한화 이글스와 시범경기를 마치고 취재진과 만난 양의지는 "미완성된 친구들을 보면 (구)창모나 (곽)빈이 같은 친구들과 처음 같이 했을 때는 '아 얘는 조금 더 하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김택연은 다르다. 약간 완성된 투수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마운드에서 모습이 어린 선수답지 않게 되게 여유 있고, 자기 공을 던질 줄 아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이어 "창모도 우리나라 최고고, 빈이도 최고인데 처음에는 좀 다 다듬어야 할 게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김택연)는 딱 들어오자마자 공을 (코너에) 빵빵빵 꽂더라. 그 점이 매우 놀라웠다"고 덧붙이며 직접 김택연의 공을 받은 생생한 경험담을 들려줬다.
김택연은 인천고를 졸업하고 2024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 직전에는 실력보다는 청소년대표팀에서 5연투를 하는 바람에 '혹사 논란'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지난 1월 중순부터 구단의 허락 아래 공을 던지기 시작한 뒤로는 순수하게 실력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스프링캠프부터 시속 150㎞를 웃도는 직구를 거침없이 던지면서 빼어난 제구력까지 자랑해 신인왕 유력 후보로 급부상했다.
김택연을 향한 관심은 한국에서 그치지 않았다. 먼저 한국보다 한 수 위로 평가받는 일본프로야구(NPB) 팀들을 놀라게 했다. 김택연은 지난달 27일 일본 미야자키 산마린구장에서 열린 세이부 라이온스와 경기에 등판해 1이닝 1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4-4로 맞선 9회 등판해 1사 1, 3루 끝내기 위기에 몰린 이후 삼진 2개를 잡으면서 경기를 매듭 지은 게 인상적이었다.
도요다 기요시 세이부 투수코치는 고토 고지 두산 작전코치에게 따로 연락해 "마지막으로 나온 투수(김태연)가 좋더라.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치고 들어오는 힘이 좋았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택연은 지난 3일 일본 후쿠오카 페이페이돔에서 열린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연습 경기에 1-3으로 뒤진 4회말 2사 1, 2루 위기에 구원 등판해 1⅓이닝 동안 4타자를 상대하면서 15구, 무피안타 1탈삼진 무4사구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소프트뱅크 4번타자 야마카와 호타카와 승부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 야마카와는 NPB에서 3차례나 홈런왕을 차지한 강타자로 10시즌 통산 218홈런을 자랑한다.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약한 선수로 일본의 2023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전승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김택연은 야마카와를 공 단 2개로 포수 파울플라이로 잡으면서 깔끔하게 위기를 넘겼다. 야마카와는 경기 뒤 일본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김택연이)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인가?"라고 매우 놀라워했다. 프로 무대에 데뷔도 하지 않은 신인 투수 공의 수준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가장 강한 무기는 직구다. 직구 외에 변화구는 아직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어 불펜으로 시작하지만, 직구만큼은 리그 최정상급 투수들과 견주어도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의지는 "19살 같지 않고 그냥 자기 공을 (오)승환이 형처럼 들이받는다. 그냥 막 들어가니까 최근 본 신인 중에 최고의 투수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며 한국 최고 마무리투수 오승환(삼성 라이온즈)의 돌직구와 비교하기도 했다.
김택연은 이제 일본을 넘어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와 감독까지 놀라게 했다. 김택연은 18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LA 다저스와 시범경기 2-4로 뒤진 6회말 구원 등판해 ⅔이닝 2탈삼진 무실점 완벽투를 펼쳤다. 직구 최고 구속은 93.7마일(약 150.7㎞)로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었는데, 직구 최고 회전수가 2483 RPM에 이르렀다. 이날 시속 100.1마일(약 161㎞)을 찍은 다저스 선발투수 바비 밀러의 직구 최고 회전수가 2471 RPM이었다.
김택연은 먼저 테오스카 에르난데스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에르난데스는 메이저리그 통산 159홈런을 자랑하는 베테랑이다. 김택연은 볼카운트 1-2에서 5구째 시속 93.7마일짜리 직구를 몸쪽 높이 던져 침착하게 헛스윙을 유도했다.
다음 타자는 제임스 아웃맨. 첫 풀타임 시즌이었던 지난해 23홈런 70타점을 생산하며 '제2의 코디 벨린저(시카고 컵스)'라는 별명을 얻은 선수다. 김택연은 아웃맨에게 처음 공 3개를 모두 볼로 던지면서 흔들리나 싶었는데, 4구째 직구를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로 꽂아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5구째 시속 93마일 빠른 공에 아웃맨은 헛방망이를 돌렸고, 6구째 다시 한가운데로 꽂은 시속 92.5마일 직구에 아웃맨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경기 뒤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6회에 등판한 투수가 기억에 남는다. 아웃맨이 말하기를 '그의 공이 엄청났고 91마일이었지만 마치 95~96마일(153~154km)처럼 보였다'고 하더라. 정말 뛰어난 어깨를 가진 선수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대표 소식통인 'MLB네트워크'의 존 모로시는 자신의 SNS에 '우완 김택연이란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18살인 김택연은 그가 상대한 다저스 타자 2명, 에르난데스와 아웃맨을 모두 삼진으로 잡았다. 김택연은 헛스윙을 유도하는 직구를 선보였고, 앞으로 다가올 WBC 대회에서 선발 등판한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특별히 언급했다.
김택연은 팀 코리아에 합류하기 앞서 "내가 프로에 와서 처음 시작하는데 남들은 할 수 없는 가장 큰 경험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계 최고의 타자들이랑 승부하는 것이고, 또 다른 구단 형들을 보면서 배울 점도 많기 때문이다. 또 다저스나 샌디에이고에 좋은 투수들이 많아서 내가 경기에 안 나가고 보기만 해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는데 그 이상의 결과를 냈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김택연이 두산으로 돌아와 프로 무대를 차근차근 경험하면서 세계 무대에도 도전할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하길 기대했다. 김택연을 마무리투수 후보로 고려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일단은 경험이 더 풍부한 정철원에게 마무리투수를 맡기면서 김택연은 일단 부담감 없이 프로 생활을 시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물론 김택연이 서서히 경험을 쌓고,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뒷문을 지킬 수도 있다. 김택연은 시범경기 3경기에 등판해 2세이브, 3이닝, 무피안타, 1볼넷, 4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기대감을 한껏 높여놨다.
이 감독은 김택연이 양의지와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또 한 단계 성장하길 기대하고 있다. 이 감독은 "도움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할 것 같다. 김택연이 신인으로 들어와서 양의지와 호흡을 맞춘다는 것은 정말 프로야구 인생에서 가장 최대의 행운일 것이다. 그 정도로 이 베테랑 포수가 신인 투수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에 정말 럭키한 것"이라며 실력에 운까지 더해 더 승승장구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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