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형은 도시철도 3호선 종합운동장역과 거제역에서 근무를 했다. 그러다 올해 4~5월, 롯데가 한창 잘나가면서 팬들이 몰렸던 시기에는 사직역으로 파견 근무를 나가기도 했다. 사직역은 사직구장을 가기 위한 가장 가까운 역으로 경기 시간 즈음에는 롯데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많은 팬들 가운데 박진형은 유니폼이 아닌 사회복무요원 제복을 입고 질서관리를 하고 있었다. 이때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박진형은 “올해 4~5월 롯데가 잘할 때 팬들이 많이 오시지 않았나. 그래서 사직역으로 지원을 갔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도 쓰고 있었는데도 알아보시는 팬들이 있었다”라면서 “그러다 ‘박진형’ 제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가는 팬들도 계셨다. 그걸 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난 왜 이러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박진형은 “나도 다시 열심히 해서 저 자리로 복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또한 신인 때부터 함께했던 구승민과 김원중이 이제는 롯데의 역사가 된 것을 지켜보면서 승부욕을 불태웠다. 박진형은 “(구)승민이 형, (김)원중이 형 모두 어릴 때 함께 운동을 했는데 승민이 형은 100홀드, 원중이 형은 100세이브를 기록했다”라면서 “엄청 멋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나도 롯데의 기록을 쓰는 선수가 되고 싶더라. 형들을 넘어서고 싶다는 승부욕이 불타 올랐다”라고 말했다.
야구를 너무 하고 싶었지만 지켜만 봐야 했던 시기. 스스로도 “야구를 못 했던 1년 9개월 동안 멘탈적으로 많이 힘들었다”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주위에서 많이 잡아줬다. 근무를 했던 지하철 역장님들도 너무 잘 챙겨주셨고 제 PT를 책임져주신 트레이너님도 운동을 잘 시켜주셨다. 또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으니까 주위에서도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많이 북돋워줬다. 너무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다”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박진형은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캐치볼을 하고 출근을 했고 퇴근한 뒤에도 PT를 받기 위해 트레이닝 센터로 향했다. “출근하기 전에 사직구장에 들러서 러닝을 하면서 몸을 풀었다. 그 다음 구단으로 출근하는 후배가 도와줘서 함께 캐치볼을 하고 샤워를 한 뒤 출근했다. 그 다음 PT 트레이너님이 운동을 많이 시켜주셨다. 자정이 넘어서 끝날 때도 있었다. 하루가 길었다”라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봤다.
1년 9개월 동안 이를 악물고 운동했고 소집해제 이후 곧장 팀의 마무리캠프에 합류했다. 운동을 하면서 자신감과 자존감도 많이 회복했다. 그는 “올해 초에 롯데가 잘해서 좋은 것도 있었는데, ‘이제 내 자리는 없구나’라는 느낌도 많이 들었다. 자신감 하나는 있었고 다시 돌아가도 무조건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정신을 바짝 안 차리면 아무 것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면서 “상동에서 이렇게 좋은 밥을 먹고 운동을 하는 게 참 소중한 것 같다”라고 웃었다.
발목 부상도 이제 거의 회복된 상태. 그는 “어깨와 팔꿈치가 아프다고 많이 아시는 것 같은데, 그건 전혀 문제가 없다. 사회복무요원 입소 직전에는 발목이 문제였다. 발목으로 몸을 지탱할 수 없으니까 스피드도 안 나왔다. 매년 주사를 맞고 던졌는데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라면서도 “그래도 지금은 전혀 문제 없다”라고 강조했다.
박진형이 없는 사이에 팀은 많이 젊어졌다. 어느덧 내년이면 서른이다. 이제는 중고참으로서 팀을 이끌어야 하고 자신도 잘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스스로도 굳게 다짐하고 있다. 그는 “모르는 선수들이 너무 많아졌다. 지금 마무리캠프에서 운동하는 선수들 중에는 제가 롯데에서 가장 오래 있던 선수라고 하더라”라고 멋쩍게 웃었다.
이어 그는 “좋은 선수들이 많은 것은 알고 있다. 그래도 자신 있다.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몸을 잘 만들어서 내가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라면서 “건강하게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잘하는 모습을 못보여드리면 소용 없다. 이제 유망주의 나이도 아니니까 흔들리지 않고 많은 선수들을 이끌어가는 선수가 되고 싶다”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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