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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12월, AKB48에 3기생으로 가입, 14년차인 카시와기 유키상. 어릴 적부터 아이돌을 동경하고 배워온 것들을 실천하고 있는 카시와기상은, 그룹 최연장인 28세가 되어서도 최전선에서 계속 빛나고 있으며, 작년 11월 방송된 닛폰테레비계 『베스트 히트 가요제 2019』에서는 「30세까지 AKB48을 졸업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선언. 지금 더욱 아이돌 가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48그룹에서는 전인미답인 “30세 현역”을 목표로 하는 유키링이 지금까지 동경하고, 사랑하고, 존경하고 영향을 받아온 『아이돌 카미5』를 잔뜩 이야기합니다.
촬영:田中達晃/Pash 취재・글:篠本634(short cut)
기사제작:オリコンNewS
모닝구무스메。덕분에 학교에서 인기인이
―― 카시와기상이라고하면 「어릴 적부터 아이돌을 좋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만、언제부터 아이돌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차에 모닝구무스메。상의 곡을 틀어놓으셨지만, 대히트했던 『LOVE 머신 』보다 전이었기 때문에 어린 저에게는 『서머 나이트 타운』 이라던가 『안아줘 HOLD ON ME! 』와 같은「조금 어른스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란 인상이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고향 가고시마에 모닝구무스메。상이 콘서트로 오셨어요. 어머니께 「모닝구무스메。의 콘서트에 가자」고 권유 받아, 앨범을 듣고 공부해서 갔습니다.
실제로 콘서트에 가서 충격을 받았어요. 어릴 적부터 노래와 댄스를 무척 좋아해서 스테이지를 동경했었는데요, 실제로 스테이지를 봤던 것은 처음이었어요. 팬분들의 열기와 반짝반짝하는 조명 속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당시 7살로, 짧지만 그때까지의 인생에서 경험해본 적 없는 분위기에 「내가 좋아하는 건 이거다!」라고 생각했어요.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 그때부터 모닝구무스메。상의 팬이 된 거군요。
푹 빠졌습니다. 학교에서도 「모닝구무스메。는 대단해!」 라고 모두에게 선언했어요. 처음엔 다들 알아주지 않았는데요, 이후에 『LOVE 머신』『더・피스!』가 연이어 히트해서 인기가 많아져서. 그렇게 되니까 「어? 이게 유키가 말했던 거야?」 하고 학교에서 다들 이야기를 꺼내서, 저, 일약 인기인이 되었어요. 모닝구무스메。 의 덕분에!
모닝구무스메。『LOVE 러브머신』 zetima、1999년
―― 새로운 걸 먼저 찾아내서 널리 알리는, 선교사 같은?
그렇네요. 그야말로 모닝구무스메。의 선교사가 되어서. 「모닝구무스메。라고 하면 유키쨩」 이라고 불리게 되었네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 가고시마에서는 『ASAYAN』(테레비도쿄에서 1995년 10월 1일~2002년 3월 24일까지 방송되었던 오디션 방송. 모닝구무스메。도 이 방송에서 탄생)을 방송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가고시마에서는 정보가 적었어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유키쨩, 이건 뭐야?」 하고 모닝구무스메 。에 대해서 질문을 받거나, 엄청 인기인이었어요. 아마 그 무렵이 인생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지 않으려나요. 제 인생의 절정기입니다(웃음).
―― 지나친 말씀이세요!(웃음)。자신이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언제쯤인가요?
중학교에 들어가서예요. 학교 친구가 오디션 이야기를 시작해서요. 오디션 정보가 실린 잡지가 유행해서, 거기서 「오디션을 치면 아이돌이나 연예인이 될 수 있구나!」하고 처음 알게 되었어요. 게다가, 하로ー!프로젝트에 저와 같은 학년인 야지마 마이미쨩(℃-ute),츠구나가 모모코쨩(Berryz工房)을 비롯해 동년대의 분들이 데뷔한 것에 갑자기 현실감을 느끼게 되어서, 「나도 들어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모닝구무스메 。의 8기 오디션과 AKB48의 3기생 오디션을 받게 되었습니다. AKB48에 합격한 것은 중3 12월이었네요.
AKB48 오디션을 본 것은, 「전용극장 스테이지에 매일 선다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역시 스테이지를 좋아했어요. 그냥 3년 정도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고교 3년 간, 매일 스테이지에 선다면 행복하겠지」라고 생각해서 부모님과 상경했습니다만, 어느새 13년이 지났습니다(웃음).
영향을 받은 아이돌 “카미5”
―― 그럼、여기서부터는 카시와기상이 「인생에 영향을 미친 아이돌 BEST5」을 알려주세요.
모닝구무스메。
우선은 역시 아이돌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모닝구무스메。상이네요. 정말 좋아하는 이시카와 리카상도 계셨었고. 모든 것을 좋아해서, 당시의 모닝구무스메。상의 곡, 의상, 버라이어티 방송을 포함한 전부를 체크했어요.
아이돌 활동을 하면 망설일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버라이어티 방송에서 몸을 던지거나, 콩트에서 이상한 메이크를 한다던지 할 때 「노래와 춤이 하고 싶어서 아이돌이 되었는데……」 하고.
모닝구무스메。『더☆피~스!』zetima、2001年
그래도 그럴 때 생각해요.「내가 무척 좋아했던 모닝구무스메。상도 엄청 콩트 했었지」「이상한 가발을 쓰고서…… 아저씨 역할, 아줌마 역할, 콧물 흘리는 남자 아이 역할부터 뭐든지 했어. 그래도 나는 그 모습을 보고서 (모닝구무스메를) 좀더 좋아하게 되었지」 하고. 그때까지 아이돌이 몸을 던지는 것을 팬 분들은 싫어하지 않을까 했었어요. 하지만, 제가 정말 좋아했던 모닝구무스메。상이 어떤 걸 해도 저는 더욱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뭐든지 힘내자!」 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도, 제 안의 축으로서 「모닝구무스메。상이었다면、어땠을까?」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 과연 그렇군요. 모닝구무스메。의 가장 좋아하는 곡은?
너무 많아서 어려운데요、역시 정말 좋아하는 이시카와 리카상의 센터곡 『더☆피ー스!』 네요. 골드색 반짝이는 의상이라서 어린 마음에 「스타야!」라고 생각했었습니다.
―― 그러면、두번째 그룹을 소개해주세요。
마츠우라 아야
같은 하로프로젝트입니다만、마츠우라 아야상이네요. 1970년~80년대에는 솔로 아이돌이 많이 계셨습니다만、2000년대는 솔로 분이 그다지 없었잖아요. 그 중에서 노래가 발군으로 뛰어나고, 퍼포먼스도 대단했어요.
콘서트의 MC도 「아침에 일어나서 이를 닦고~」 라면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말할 뿐이지만 무척 귀여워요. 게다가 미운 구석이 없어요. 그리고, 팬 분들에게 「나를 응원해주는 것도 기쁘지만 모두의 행복도 제대로 발견해줘」 라고 예전부터 말씀하셔서. 인간으로서 심지가 있고, “더・아이돌”이네요. 동경하고 있어요. 정말로 여러모로 참고하고 있습니다.
―― 근대 아이돌의 역사라고 하면、벌써 역사 상의 인물이네요(웃음).
정말로 그렇네요!게다가 귀여운 곡도 발라드도 최고잖아요. 저는 핑크색 의상을 입지 않게 된 후의 마츠우라상도 좋아해서. 계속 앉아서 일절 춤추지 않고 노래만을 라이브로 하셨어요. 의상도 검정 드레스. 저도 솔로 콘서트를 할 기회가 있는데요,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팬 분들이 바라는 것을 생각하면, 제가 노래만을 하는 스테이지는 불안해져서 춤을 추게 되네요. 당시 마츠우라상은 20대 전반이셨는데, 저도 언젠가 그런 라이브도 해보고 싶어요. 28세인 지금도 아주 무리지만요(웃음).
―― 마츠우라 아야상에게서 영향을 받았던 곡은?
마츠우라 아야 『복숭아빛 짝사랑』 zetima、2002년
아까 「핑크 드레스를 입지 않게 된 아야야가 좋다」고는 말했지만서도, 한 곡을 꼽는다면 역시 『복숭아빛 짝사랑』이네요(웃음). 역시 아이돌로서 돌파해나간 방식이 대단해요. 거기까지는 불가능해요. 「아이돌은 좋아하지 않아」「귀여운 척 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했던 사람도 그 아야야를 보고 「귀엽지 않아」라고는 절대로 말하지 못할 거예요. 압도적인 파워가 있어요.
뮤직비디오도 무척 좋아하는데 2003년,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콘서트에서 실제로 아야야를 보았어요. 그 때의 팬 분들의 함성을 부추기는 자신만만한 모습이 대단했어요. 그 때의 『복숭아빛 짝사랑』 을 무척 좋아해서 인상에 남아있습니다.
―― 이어서 세번째는?
모모이로클로버Z상입니다.
모모이로클로버Z
모모이로클로버Z(2018년 촬영)(C)ORICON NewS inc.
―― 의외였습니다!
모모쿠로쨩은, 일관되게 밝고 에너지 넘치는 아이돌을 항상 표현하고 있어요. 저는 절대로 저렇게는 될 수 없으니까, 정말로 존경합니다. 아이돌이라 하더라도 여자니까, 분명 어딘가 힘들 거예요. 그래도, 멤버가 전원 모였을 때는 한없이 밝게, 전력으로 해내요. 같은 아이돌로서, 저렇게 되고 싶었어요.
모모쿠로짱의 라이브를 꽤 보러 가는데요, 절대로 힘을 빼지 않아요. 「조금 여기는 쉬자」던가 「전력으로 하는 것보다 귀엽게 보이고 싶어」라던가, 저라면 그렇게 생각해버려요. 분명 다른 아이돌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그녀들은, 항상 이미지를 무너뜨리지 않고 기운차게 전력을 다해요.
그런 면이 멋지니까 콘서트를 보러 가면 「따라 가고 싶어!」라고 모두 생각하는 거예요. 남녀 모두 「멋있다」고 생각하게 할 수 있는 건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 모모쿠로에게 배운 것도 많은가요?
많아요. 여러 방송에 출연할 때도, AKB48의 후배에게 「모모쿠로쨩을 상상하고 해보자」라고 어드바이스를 하기도 해요. 「기쁠 때는 기쁘다고, 속상할 땐 속상하다고. 감정을 드러내자」고요.
어린 멤버는 긴장해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부끄럽고 서투르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서 「삐딱한 태도로 임하는 것이 멋있단 생각은 버리고, 감정을 드러내자」고 말하고 있어요.
히나단 뒤쪽에 앉아 있어도, 많은 인원으로 노래를 불러도, 감정을 표현하며 생긋생긋 웃자고요. 「여기에 있는 것이 즐겁고 기쁘다」는 마음을 표현한다. 그런 점은 모모쿠로쨩에게 배웠습니다. 이상적인 아이돌상이에요.
좋아하는 곡은 초기 노래지만, 『Chai Maxx』입니다.
―― 네 번째로 가볼까요
마츠모토 이요
마츠모토 이요상입니다. 앞의 3팀과는 조금 방향성이 다르지만요(웃음). 최근, 「20년 후에 마츠모토 이요상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이돌 시대의 이요상도 무척 귀여우시지만, 최근 버라이어티 방송에서 함께 출연하면, 「천성이 아이돌이시구나」라고 느껴요.
연하인 제가 말하는 것도 실례이지만, 발언과 분위기가 무척 귀여우셔요. 예를 들면, 검지를 세우는 새침한 몸짓이 무척 자연스러우셔서, 「이런 게 아이돌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연하인 사람이 진심으로 「사랑스럽다」고 생각할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최근 생각했습니다.
―― 남편분인 히로미상도 TV에서 「집에서도 계속 이토짱이야」 라고 말씀하셨죠.
그렇더라고요. 계속 아이돌이세요. 2년 전쯤에 음악방송에 함께 출연하게 되어서, 그 때 전직 모닝구무스메。인 다카하시 아이상과 함께, 『센티멘탈・져니』의 코러스를 담당했어요. 그때도 정말 상냥하게 가르쳐주셨어요.
한 마디, 한 마디, 행동도 언동도 무척 사랑스러우셔서 「이렇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츠모토 이요상의 한 곡을 꼽자면 『센티멘탈・져니』입니다. 장래에는, 마츠모토 이요상처럼 되고 싶습니다!
www.youtube.com/watch?v=meOLytp4Ba4
―― 그러면 마지막 5번째 부탁드립니다.
마츠다 세이코
너무나 위대한 아이돌, 마츠다 세이코상. 부모님이 좋아하셨어서 곡도 전부 듣고 있습니다. 결혼하셔서도, 출산을 하셔도, 빛이 바래지 않는 아이돌. 마츠다 세이코상은 마츠다 세이코상이지요.
『NHK 홍백가합전』에서 뵈었을 때도 정말 오오라가 엄청 나셨어요. 노래도 퍼포먼스도 대단하고, 「세이코쨩 커트」 같은 모두가 머리모양을 따라하는 붐이나 시대를 만들어오셔서…… 게다가 홀로(솔로로)!
――「내숭 떠는 여자」의 대명사로、비판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고수하셨잖아요. 그렇기야말로 대단해요. 끝까지 고수한 후에 아이돌도 「멋있다」고 들을 수 있을 때가 오지 않을까 하고 세이코상을 보면 생각하게 돼요. 관철한 뒤의 멋있음, 강함. 그 점이 뭉클해지네요.
―― 마츠다 세이코상의 한 곡을 꼽는다면, 어떤 건가요?
마츠다 세이코 『천사의 윙크』 소니、1985년
『천사의 윙크』(1985년)이네요. 어떤 방송에서 부를 기회가 있어서, 이것저것 연구했어요. 세이코상에게 근접하는 것은 무리여도, 여러가지를 보고 흡수해서 노래하자고 생각해서요.
「천사의 윙크니까, 어떻게 윙크를 하는 게 좋을까?」라고 생각해서 주목해서 봤는데요, 본인의 윙크가 무척 자연스러워요. 저는 꽤 「윙크 하고있어요ー! 빵! 결정타였습니다ー!」라는 느낌으로 과장되게 해요(웃음). 그런데 세이코상은,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살짝만 생긋 웃으세요. 그게 무척 귀여워서, 「빼앗겨버려」「당해버렸다~」가 되어버리네요(웃음).
이상적 아이돌의 조건은 「에너지」
―― 영향을 받은 5개 그룹을 꼽아주셨는데요, 여기서 카시와기상에게 있어서 「이상적 아이돌의 조건」을 여쭙고 싶습니다.
이상적인 아이돌이라면, 역시 「보고 있으면 기운이 나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력이나 속상함을 보이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응원해주는 스타일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저는 어느 쪽이냐고 하면, 항상 밝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유키링은 엄청 기운 넘치니까 나도 힘내자」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보여주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도 있네요. 다들 어린 나이에 아이돌이 되잖아요. 처음에는 그 젊음과 있는 그대로의 귀여움으로 승부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길게 이어가기에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보여주는 방법이라던가, 표정이라던가, 댄스를 보여주어야만 해요.
그런 것 중에서 「나는 이걸로 가장 빛날 수 있다」는 스타일 같은 것을 많이 발견한 사람이 남게 된다고 느낍니다. 여러가지에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결국 강하네요. 그런 부분을 가지는 것이 조건일지도 모릅니다.
―― 그룹 안에서 존경하는 분, 자신의 아이돌상에 영향을 준 분이 있나요?
이른바 「카미7」라고 불렸던 분들(OG인 마에다 아츠코、오오시마 유코、시노다 마리코、다카하시 미나미、코지마 하루나、이타노 토모미、와타나베 마유)는、각각 몇 개나 존경할 부분이 있습니다.
카미7(왼쪽에서부터)코지마 하루나, 와타나베 마유, 이타노 토모미, 마에다 아츠코, 다카하시 미나미, 시노다 마리코(2011년 촬영)(C)ORICON NewS inc.
그중에서도 저는, 다카미나상(AKB48그룹 전 총감독, 다카하시 미나미)의 매우 열심인 부분이、진지함이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언제라도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고, 인사도 해주셔서. 그렇기야말로 모두가 좋은 영향을 받아서, 정말 열심히 하자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다카미나상의 힘은 크네요.
그리고, 아이돌로서, 동기인 마유유(와타나베 마유)도 존경하고 있어요. 「아이돌은 이런 거야!」라는 룰을 자기 자신에게 많이 부과하고 그것들을 졸업할 때까지 전부 해냈기 때문에 정말정말 존경해요. 마유가 왕도 아이돌의 최고점에 다다르려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마유는 될 수 없겠다」는 것을 빨리 느꼈기 때문에야말로 다른 접근법을 생각했달까요. 저도 왕도 아이돌이 되고 싶었지만, 옆에 아득히 위의 존재가 있으니까 나는 버라이어티에서 힘내자, 어떻게든 놀림을 받자던가(웃음), 다른 길을 목표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 지금, 카시와기상이 AKB48 그룹의 최연장자입니다만, 아이돌 업계에서도 최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지금 아이돌 업계는 어떠한가요?
지금 아이돌은 여러 방향으로 특화된 아이돌이 많이 나와서, 다종다양화되고 있죠. 좋은 경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AKB48과 같은 아키모도(야스시)상의 프로듀스라 해도, 케야키자가46 같은 멋진 그룹은 절대로 겹치지 않으니까 오히려 끝까지 고수해줬으면 해요. 여러 아이돌이 나오고 있는 지금이, 꽤나 이상적이네요.
―― 덧붙여서 「30세까지 아이돌 선언」을 하셨는데, 30세 이후에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전혀 정해두지 않았어요(웃음). 「30세까지 AKB48은 졸업하지 않습니다」라고 선언했지만, 30세가 되면 그만둔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예전보다 댄스 안무라던가를 외우는 것이 느려진 것을 느껴요. 집에서 자율연습 시간이 늘었습니다. 예전엔 레슨장에서 외웠는데, 지금은 다 외우지 못해서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스마트폰을 놔두고, 동영상을 보면서 연습하고 있습니다.
―― 무척 사랑스러운 에피소드네요(웃음).
그래도 역시 스테이지에 서는 것이 즐거운 건 전혀 변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늘었어요. 이만큼 오래 하면서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고, 지금도 콘서트에서 어린 멤버들과 같이 서도,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아!」라고 아직 생각하고 있어요. 3열에 가도, 「1열에 있는 어린 멤버보다 더 잘 출거야!」같은.
그런 마음이 없어진다면 어쩌면 아이돌이란 형태가 아닌 방향을 고려하는 게 좋겠지만, 지금도 저는 10대인 아이를 보며 열의를 불태우고 있네요. 부끄러우니까 절대로 말하지는 않지만요(웃음).
―― 무척 멋있어요! 그리고 신곡 『실연, 고마워』가 3월 18일에 발매되었습니다. 여기서도 활활 타오르는 카시와기상을 볼 수 있다고요.
감사합니다(웃음). 16기생인 야마우치 미즈키쨩이 첫 센터인데요, 1기생인 미이쨩(미네기시 미나미)의 마지막 참가 싱글이기도 해서, (AKB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멤버들이 부르고 있습니다.
AKB48 『실연、고마워(초회한정반C)』 킹레코드, 2020년
미이짱이 선배인데요, 친구란 감각이 강해서, 졸업은 순수하게 무척 쓸쓸한 감정이네요. AKB48에게 있어 1기생이 없어지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지고, 저도 가장 고참이 됩니다. 미이짱이 가르쳐 준 것이 잔뜩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능한 한 다른 후배에게 전하는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www.youtube.com/watch?v=uo9b-lYK97c
그룹을 졸업한 멤버가 AKB48에 있던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그룹으로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요. 우선은 30세까지 AKB48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가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카시와기 유키에게 있어 「아이돌」이란?
아이돌이란……「인생을 건 도전」 입니다.
얼마 전까지, 「아이돌이란, 나날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조금 바뀌었습니다. 「30세까지 AKB48에 있겠습니다」라고 선언했지만, 이른바 30세는 보통 일반 여성이라고 하면 결혼을 생각하는 연령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연령이 가까워오기 때문이야말로 생각해요. 「언젠가 인생을 되돌아 봤을 때 『아, 나는 계속 아이돌이었구나』라고 생각하고 싶다」고요.
그런 때 새삼스레 「나는 중학생부터 인생을 걸고 아이돌이란 것에 계속 도전하고 있네」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인생을 걸고 도전하겠습니다! 뭐, 즐기면서지만요(웃음).
스페셜 영상
프로필
柏木由紀(카시와기・유키)
1991년 7월 15일 출생, 가고시마현 출신. 2006년 12월, 『제3기 AKB48 추가 멤버 오디션』에 합격하여, 이듬해 07년 7월, AKB48의 4th 싱글 『BINGO!』에 첫 선발 진입. 2011년 『제3회 AKB48 선발총선거』에서는 제1・2회 상위 7인 「카미7」의 일각을 파고 들어 3위가 되는 등 인기. 13년 2월에는 솔로 데뷔, 18년에는 NHK대하드라마 『세고돈』에 출연. 2월부터는 YouTube에서 백스테이지 동영상을 수시로 올리는 등 폭 넓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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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체는 몇 달 되었지만 다같이 봤으면 좋겠어서 번역해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