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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형사 프로덕션 노트 같이 읽을래 ㅇㅇ?.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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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5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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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116페이지만 작네 큰 거 괌ㅠㅠㅠㅠ 글은 밑에서 읽을 수 있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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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EDITION <형사> 스페셜

이명세+<형사 Duelist>

어느 완벽주의자의 거대한 모험

이명세가 돌아왔다. <형사 Duelist>는 아직 모든 베일을 벗지 않았지만, 스타일리스트로서, 몽상가로서 이명세란 이름이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할 듯하다. 그는 또다시 특유의 상상력을 가동시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낯선 영화에 도전하고 있다. <스크린>은 그의 귀환을 환영하며 이명세와 <형사 Duelist>에 대한 특별한 기사를 준비했다. <형사 Duelist> 프로덕션 노트를 비롯해 안성기가 바라본 '내 친구 이명세'에 관한 단상과 박중훈 이명세의 대담이 준비되어 있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두 거장의 황금 같은 이야기들에 주목하시길.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한 영화를 꿈꾸는 완벽주의자 이명세의 새로운 모험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Making Story

<형사 Duelist> 제작에 관한 모든 것

흥분하라, 새로움이 온다

스태프와 배우들 그리고 이명세 감독에게 <형사 Duelist>는 마치 상상화를 그리는 시간과도 같았다. 지구상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영화를 위해, 그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상상의 발전소를 가동시켰다. 갖가지 고민과 실험으로 점철된 180여일. 끝없는 상상력을 나침반 삼아 새로운 스타일과 미학을 찾아 나선 그들의 여정을 뒤돌아본다. 김도훈 기자


Section 1 production 

상상력이 우릴 죽이는구나


미국에서 돌아온 이명세 감독이 차기작으로 사극 장르를 지목하자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그의 전작들 대부분이 지극히 모던하고 도시적인 분위기여서일까? <첫사랑>의 연출부 시절부터 그를 알고 있던 오은실 프로듀서조차 "홍상수 감독이 SF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생경한 느낌이었다"고 표현할 정도다. 이런 이명세 감독을 두고, 사람들은 "그가 감독 초기부터 사극을 하고 싶어 했었다"고 말했고, "새로운 장르적 실험을 하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러 추측들이 난무한 가운데 이명세 감독은 <형사 Duelist>(이하 <형사>)가 "사극이 아닌 사극"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대를 지우고, 모던한 느낌의 새로운 사극을 만들겠다는 결심이었다. 결국 기존의 사극 장르에 대한 애착이나 장르적 변신에 대한 욕구 때문에 사극을 선택한 것은 아닌 셈이다. 이명세 감독이 이 새로운 형태의 사극을 기획한 것은, 또 다른 미학적 실험을 원했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스타일리스트인 그는 동시대와 동떨어진 과거의 도시와 인물들을 통해 특별한 영상을 창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극이면서도 기존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극'. 낯선 미션 앞에 제작진들의 고뇌는 상당했다. 더구나 이명세 감독은 자신이 의도하는 컨셉의 시안들을 '친절하게' 보여주며 방향을 제시하면서도, 좀처럼 최종 선택을 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쉽게 만족하는 법이 없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정광석 촬영감독이 "내가 죽으면 비석에다 '이명세 때문에 죽었다'고 써 달라"고 했다는 농담이 아주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이명세 감독은 스태프들에게 입버릇처럼 '상상력'을 강조했다. 스태프들의 상상력은 언제나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어야 했다. 이같은 감독의 방식에 잘 적응하는 스태프들도 있었지만, 당혹스러워하는 스태프들도 있었다(그러나 스태프 대부분은 3개월 정도 지나 이명세 감독의 스타일에 적응했다). 가장 힘들어하는 스태프 중 하나는 정광석 촬영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은 황기석 촬영감독이다. 그에게 가장 큰 문제는 매번 뒤바뀌는 콘티였다. 촬영감독에게 콘티는 생명과도 같은 청사진. 정신없는 현장에서 "콘티는 진화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명세 감독이 야속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콘티가 자주 바뀌다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연출부 두 명이 이명세 감독의 지시대로 콘티를 그려왔는데, 그림 속 등장인물의 위치가 세트 구조상 맞지 않았다. 예를 들면 세트에선 문이 오른쪽인데, 콘티 속에선 배우가 왼쪽에서 등장하는 상황이다. 촬영감독이 이를 지적하자 이명세 감독이 하는 말. "콘티 그린 녀석이 왼손잡이라서." 작은 실수와 해프닝이 있었지만, 새로운 것을 모색하며 의견을 교환하길 즐기는 이명세 감독의 열정은 모든 스태프들을 영화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다. 막내 스태프들의 이름까지 다 기억하며, 그들에게 일일이 의견을 구하는 감독을 끝까지 거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열정은 전염된다.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도 점차 이명세 감독의 열정을 닮아갔다. 하지원은 위험한 몇 장면을 제외하고 남자도 하기 어려운 액션 신을 혼자 모두 소화했으며, 가장 늦게 캐스팅되어 트레이닝 기간이 짧았던 강동원 또한 단 한 장면도 대역을 쓰지 않았다. 박중훈이 현장에 들러 "감독님 하라면 무조건 토 달지 말고 해라. 나중엔 다 이해가 된다"는 충고를 던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두 배우는 온 몸을 다해 혹독한 촬영에 올인 했다. 막상 그들에게 힘든 것은 거친 액션 연기나 이명세 감독의 무수한 요구들이 아니라, 한 촬영 현장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양수리 세트장에서 지속된 오랜 촬영은 배우뿐만 아니라 스태프들에게도 견디기 힘든 '유배생활'이었다.


<형사>는 남이섬 로케이션을 제외하곤 촬영의 99퍼센트가 세트에서 이루어진 영화다(사실 남이섬 로케이션도 장승이 세워지는 등 거의 오픈 세트나 다름없었다). 신 중 일부가 민속촌 오픈 세트와 MBC 양주 세트에서 진행되었다. 세트에 대한 이명세 감독의 집착은 대단한 것이어서, 심지어 장터 신과 홍등가 신도 세트에서 찍고 싶어 했고 이를 위해 엄청난 규모의 돔 세트를 구상할 정도였다(예산등과 같은 여러 여건상 포기하고 말았지만). 수많은 세트를 일일이 세워야 했던 미술팀과 그 안에서 밤과 낮의 비주얼을 만들어야 했던 촬영팀, 조명팀의 노고가 유난했음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촬영과 미술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섹션에서 다루기로 한다).


이명세 감독이 인공 세트를 고집했던 이유는 색감과 율동이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새로운 형태의 사극을 구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사극이란 비인기장르에(이명세 감독이 아무리 다른 형태의 사극이라고 주장할지라도) 막대한 제작비를 허락할 투자사가 많지 않은 게 문제였다. 더구나 이처럼 방대한 세트 안에 완벽한 비주얼을 담아내려면 제작기간과 제작비가 눈덩이처럼 커질 건 불 보듯 뻔한 일. 투자사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보다 현실적인 연출 기획이 필요했다. 이명세 감독은 '1회 차에 1분의 OK 필름을 담아낸다'는 목표로 78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그의 깐깐한 연출 스타일상 '1회 차에 1분의 OK 필름'이 가능할지에 대해 주변의 우려가 많았지만, 그는 결국 97회(테스트 형식으로 진행된 프롤로그 촬영 포함)의 촬영으로 100분 분량의 러닝타임을 만들어냈다. 작가로서의 고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비용 고효율'을 염두에 둔 소위 '프로듀서 마인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를 <형사> 이전부터 알아왔던 스태프들은 이명세 감독이 예전에 비해 보다 유연한 사고와 포용력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특히 OK 사인을 내는 속도가 몰라보게 빨라졌다며 놀라는 눈치다. 이를 궁금해 하는 스태프들에게 이명세 감독은 "결정이 예전보다 쉬워졌기 때문"이라고 쉽게 대답할 뿐이다. 하지만 그의 결정이 빨라졌다 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집요하게 수집하고 활용하는 습관마저 변한 건 아니었다. 보다 스피디해진 현장 연출 스타일과는 달리, 상상하고 고심하는 시간은 과거에 비해 늘어났다.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시대를 앞서가는 느낌이 있었다. 트렌드를 좇기보다 언제나 낯설고 새로운 영화를 시도하는 '젊고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다. 이명세 감독의 시들지 않는 상상력은 마치 그의 콘티처럼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 이명세 감독은 스태프들에게 TV드라마 <다모>를 보지 말라고 주문했다. 방학기 원작에서 모티프만 빌리되, 다양한 장르적 특성을 혼합한 색다른 형사 사극을 만들려 했기 때문. 영화의 제목은 <조선의 여형사> <조선의 형사> <형사>를 거쳐 지금의 타이틀 <형사 Duelist>로 최종 낙점되었다.

2 두 주인공 하지원과 강동원에 대한 이명세 감독의 신뢰는 두터웠지만, 늦게 본 자식이 더 귀엽다고 가장 늦게 캐스팅된 강동원에 대한 감독의 애착은 특별했다. 현장에서 '슬'자를 뺀 '픈눈'이라 불렸던 강동원은 슬픈 눈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이명세 감독뿐만 아니라 스태프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3 이명세 감독과 인연이 깊은 두 배우 안성기(왼쪽)과 송영창. 특히 오랫동안 스크린을 떠나있던 송영창을 섭외하기 위해 이명세 감독은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병판 대감으로 등장, 야망과 절망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연기한다. 영화 속에서 그는 유일하게 흰색의 옷을 입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형사>의 미술은 의도적으로 흰색은 배제하고 있다.



Section 2 martial arts 

죽이거나 혹은 사랑하거나


"내가 좋아서 따라오는 거요? 쫓아오는 거요? 뒤를 밟는 거요?" 슬픈 눈이 자신을 뒤쫓는 남순에게 던지는 말이다. 슬픈 눈과 남순의 사랑은 오직 결투를 통해서만 표현될 뿐이다. 운치 있는 풍광이 내다보이는 별당에서 다과를 나누거나 호젓한 물레방앗간에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애틋한 순간은 영화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추적과 대결로 점철된 영화 속에서 그들이 사랑을 할 수 있는 순간은 오직 적으로 만나 결투를 펼칠 때뿐. 결국 그들의 로맨스는 서로의 칼끝이 맹렬히 부딪혀야만 시작될 수 있는 운명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이명세 감독과 연을 맺은 전문식 무술감독은 '감정이 깃든 새로운 액션'이란 감독의 요구 앞에 한참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춤추듯 싸우고, 그 싸움 속에서 사랑의 애절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미션이 아니었을 터. 다행히 그는 액션 스타일에 대해 이명세 감독과 상당부분 교감하고 있는 지점이 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파이터들 간의 '느낌'이 전달되는 액션을 추구하고 있었고, 그런 지론은 이명세 감독이 생각하는 <형사>의 액션 스타일과 맞아 떨어졌다. "칼이 상대편에 다가가는데 실제로는 1초도 걸리지 않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파이터들의 느낌과 감정이 표현돼야 한다. 아무리 무술의 합이 잘 맞더라도, 그러한 감정이 배우들의 눈동자와 표정에서 포착되지 않는다면 <형사>에선 무조건 NG다."


이럴수록 더욱 피곤해지는 건 배우들이었다. 게다가 전문식 무술감독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때부터 "웬만하면 액션 신에 대역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한 상태였다. 대역을 쓰는 방식은 주연 배우들의 안전을 보장할 순 있어도, 원하는 액션 신의 품질을 보장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형사>처럼 감정을 실어나르는 역할을 맡은 액션에서 대역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시스템이었다. "아무리 카메라 앵글을 바꾼다 해도 대역을 썼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또한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 해도 전투가 끝나고 난 후 느껴지는 전율 같은 것을 실감나게 표현할 수는 없다. 싸움의 느낌과 흐름을 일관되게 유지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몇몇 장면만 제외하곤 배우가 직접 액션을 해야 한다."


대역 없이, 롱테이크가 많은 이명세 감독의 액션 신을 소화하기 위해선 배우들의 체력과 어느 정도의 무술실력이 필수적이었다. 크랭크인을 한 달여 앞둔 작년 7월부터 시작된 하루 5~6시간씩의 강도 높은 트레이닝은 그래서 더욱 중요했다. 선무도라는 전통 무술을 중심으로 현대무용과 탱고 레슨까지 병행하는 빠듯한 스케줄이 이어졌다. 부드러운 움직임 속에서 빠르고 강렬한 타격이 가능한 선무도는 배우들에게 기초적인 무술과 호흡을 다지게 했고, 현대무용과 탱고는 영화 속에서 나타날 액션의 동선을 더욱 선명하고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보조적인 역할을 맡았다.


중국과 홍콩 그리고 일본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무협 액션을 만들고자 했던 여러 시도들은, 꽤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은 모양이다. 편집본을 본 전문식 무술감독은 "그들 사이에 사랑이 보인다"고 말한다. <형사>는 화려한 색감을 덧입힌 액션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액션 속엔 드라마에서 감지되는 것 이상의 강한 감정이 녹아들어 있다. 액션은 남순과 슬픈 눈의 사랑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이다. 단순한 볼거리에서 <형사>의 액션은 한 발 더 나아가 이야기를 만들고 의미를 생성하며 새로운 미학이 된다. 우리가 이 영화의 액션을 기능적인 차원을 넘어 새롭게 바라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 이명세 감독은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위해 <와호장룡>에서 선보였던 와이어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한 적이 있다. 그러나 보다 독창적이고 새로운 액션을 추구하자는 무술팀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를 포기했다. 그 결과 <형사>에서 와이어의 사용은 극도로 제한되었고, 대신 현대무용과 선무도가 혼합된 관능적이면서도 화려한 무예와 감정선이 극도로 강조된 액션이 선택되었다.

2 3천 평의 장터 세트에서 벌어진 대규모 배틀 신 중 하나. 미식축구에서 모티프를 얻은 이 신에서 이명세 감독이 무술감독에게 주문한 것은 죽기 살기로 싸우면서도 서로 어우러져 노는 듯한 분위기였다. 치열한 싸움과 군중들의 컬러풀한 의상, 황토가 피어내는 먼지가 어우러져 독특한 느낌의 비주얼이 만들어졌다.



Section 3 cinematography & lighting 

그림자와 함께 노닐다


한때 <형사>는 '조선 누아르'라고 불린 적이 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형사>는 일부 신에서만 누아르 스타일이 사용됐다. 누아르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그림자(혹은 어둠)의 활용.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돌담길 결투는 마치 빛과 그림자의 대결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돌담길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사라졌다 달빛이 비추는 곳으로 나서길 반복한다. 때마침 <형사>의 황기석 촬영감독은 오래전부터 '그림자'를 촬영의 핵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카메라는 빛을 다루는 것이라고 하지만, 난 그림자에 더욱 집중한다. 빛을 다루는 게 결국 그림자를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빛을 먼저 생각하는 촬영기사는 피사체에서 빛이 부족한 부분을 먼저 탐색한다. 따라서 작은 라이트를 많이 켜게 된다. 그러나 그림자를 먼저 생각하는 촬영기사는 어두운 곳을 찾으며 단 한 개의 커다란 라이트를 켤 때가 많다. 어느 것이 옳다곤 할 수 없지만, 좋은 촬영은 좋은 그림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트가 많다는 것은 촬영과 조명에 결코 유리한 조건이 아니었다. 주요 신마다 중요한 스타일로 작용하는 어둠과 그림자는 때때로 세트 조명보다 일광이 효율적일 때가 많다. 햇빛이 가진 규칙적인 광량은 그림자의 길이와 색깔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지만, 세트 조명으로 그런 효과를 내기 위해선 엄청난 작업시간과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모든 신을 세트로 가고 싶어 한 이명세 감독의 발목을 잡은 것이 바로 이러한 조명 설치 작업에 대한 부담이었다. 세트에서 진행되는 낮 신이나 동선이 긴 결투 신에는 엄청난 양의 조명이 동원되었지만, 일부 신에선 조명의 사용이 거의 절제된 적도 있었다. 블랙 세트에서 촬영된 돌담길 결투 신 일부에선 조명이 하나만 사용되었고, 어떤 신에선 촛불 효과가 나는 전구가 들어있는 박스 대여섯 개만을 설치하고 촬영한 적도 있다.


충무로 최고의 실력파 중 하나로 알려진 황기석 촬영감독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는. 황 감독은 과거 미국에서 활동하며 촬영과 조명에 대한 거의 모든 테크닉을 시도한 바 있다) 여러 포맷을 시도했다. 1.85:1의 화면비율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2.35:1을 선택했는데, 이는 세트가 많은 영화의 속성상 천정 높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4K 포맷의 디지털 색보정을 하기로 결정했다. 할리우드에서도 좀처럼 하지 않는 이 포맷을 결정한 건, 밝음에서 어둠으로 넘어가는 그라데이션과 콘트라스트 효과가 탁월한 4K 포맷이, 화려하고 선명한 색감이 포인트인 <형사>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황기석 촬영감독의 테크닉적인 노하우는 이명세 감독의 상상과 추상을 구현하는 최상의 무기였다고 할 수 있다. 비주얼에 대해선 누구보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두 감독이 손을 맞잡은 것만으로도 <형사>의 '때깔'은 이미 보장받은 것과 같다.


돌담길 결투 <형사>에서 가장 화려한 운명적인 결투. 돌담길 결투는 영화 속에서 두 번 이루어지는데, 모두 밤 신이다. <형사> 최후의 결전인 두 번째 돌담길 결투는 돌담길에서만 촬영된 것이 아니라 별도로 마련된 일명 '블랙 세트'에서도 촬영되었다. 양 갈래로 40미터 뻗은 돌담 중 한 쪽의 돌담은 바퀴가 달려 공간의 너비를 자유롭게 조절 가능하게 설계되었고, 돌담을 따라 30~40개의 조명기가 설치되었다. 돌담길 결투는 황기석 촬영감독이 이 신에서만큼은 3D 애니메이션 콘티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명세 감독에게 강력하게 요구했을 정도로, 스태프들이 골머리를 앓았던 신 중 하나다. 또한 하지원이 이 돌담길에서 마축지 역의 심철종을 추격하는 신을 찍다 그와 머리를 부딪쳐 응급실로 향하기도 했던, 파란만장한 사연을 간직한 세트다.



Section 4 art & costume design 

화려하고 모던한 어느 과거


"이 영화는 색감의 영화다." 이명세 감독이 <형사>를 가장 짧게 설명할 때 쓰는 말 중 하나다. 공개된 일부 스틸 컷과 포스터 그리고 예고편에서 선보인 영상만으로도 <형사>의 화려한 색깔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명세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감각을 염두에 둔 사람들은, 몇몇 장면들에서 유명한 화가의 이름을 떠올리기도 했다. 주황색과 노란색으로 이루어진 티저 포스터에선 마크 로스코의 <오렌지와 노랑>이라는 작품을, 어느 방안에 둘러쳐진 벽지나 문을 보곤 피에트 몬드리안의 <콤포지션> 시리즈를 언급할 정도였다. 이명세 감독이 이형주 미술감독을 비롯해 배우나 스태프들에게 앙리 마티스나 앤디 워홀의 작품을 보여주며 스타일과 디자인의 느낌을 대략적으로 설명한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특정한 미술품을 모티프 삼아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이형주 미술감독에 따르면 몬드리안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은 막상 우리나라의 조각보를 인용한 것이다. 조각보의 디자인이 선과 면을 강조한 몬드리안의 작품과 무척 유사하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하지만 이 같은 주변의 오해와 추측들은, <형사>가 그려내려 했던 새로운 시대와 공간을 설명하는 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형사>의 시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선시대가 아닌 가공의 시간에 위치한 '어느 과거'다. 따라서 미술팀들은 우리나라 전통적인 디자인을 참고로 하되, 강박적으로 고증에 매달리지 않았다. 그들이 찾은 건 한국적인 미를 지니고 있으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조각보다 몬드리안이 유사품으로 읽혀지듯, 어느 과거의 스타일 또한 현대에서도 모던하고 세련되게 인식시킬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형사> 미술의 핵심이다.


모던한 비주얼을 위해 색감은 더욱 화려해질 필요가 있었다. 조선시대 색감에 대한 이미지가 대부분 하얗고 칙칙한 계통의 색깔이었다면, 그 시대와 비근한 <형사>의 과거는 오색빛으로 치장되어 있다. 색감은 캐릭터를 설명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남순은 따뜻한 색감의 옷을, 슬픈 눈은 차가운 색감의 옷을 입어 각자의 성격과 대결 구도를 드러냈다. 안포교는 서민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브라운 계통의 옷을 입었다. 울긋불긋한 칼라로 채색된 수많은 의상이 필요했고 2억 원의 예산으로 약 3천벌 이상의 의상을 만들었다. 의상팀은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쉬지 않고 이 의상들의 염색작업에 매달려야 했다.


과거의 도시를 만드는 데 색감과 함께 가장 신경을 써야 했던  부분은 전통 가옥의 형태였다. 아무리 고증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해도, 전통가옥의 구조마저 송두리째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형주 미술감독은 19세기 당시의 사진 자료와 한옥 구조에 대한 책을 참고로 건축물부터 조경에 이르는 방대한 세트작업을 진행했다. "당시 한양의 풍속과 건축들을 살피면서 예상하지 못한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어느 풍속화를 보니 마당에 공작새를 키우고 있고, 어떤 그림에선 페르시안 카펫 같은 것도 보이더라. 또한 마굿간도 구질한 초가집이 아니고 꽤 모던한 형태의 건물이다." 구닥다리 같아 보이던 조선시대의 풍물에서 신기하고 세련된 색감과 조형들을 발견하면서, 세트 작업의 아이디어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장터의 꽃시장이나 홍등가 등의 설정은, 역사 속엔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당시에도 가능했을 법'하다고 생각하는 나름의 기준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약간의 상상을 곁들였지만 사극의 분위기를 깨지 않으면서 영화의 미학상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는 것. 그런 모토와 함께 화려한 색감과 모던한 느낌으로 가공된 새로운 과거 도시가 탄생되었다.


1 조각보 디자인 슬픈 눈 뒤로 보이는 몬드리안을 연상시키는 조각보 디자인의 문. 원래 조각보 디자인은 세트 내부 디자인뿐만 아니라 의상 디자인에도 사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분절되는 느낌의 이 디자인이 의상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 아래, 일부 세트 디자인에서만 활용되었다.

2 계단 세트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이곳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39계단을 연상시키는 인상적인 계단 세트다. 종사관이 슬픈 눈에게 죽임을 당하는 장소이자 슬픈 눈과 남순이 마주치는 장소이기도 하다.

3 꽃과 단풍 미술팀은 2천 송이의 국화를 심기도 하고, 남산에 올라가 무려 1백 포대에 달하는 낙엽을 긁어모으기도 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노란 은행잎을 사용했던 이명세 감독은 <형사>에선 특별히 붉은 단풍잎을 원했고, 수거한 낙엽이 동이 날 즈음에는 낙엽을 따로 수입하기도 했다. 미술팀은 직접 제작한 단풍나무 4그루를 오픈 세트 촬영 시에는 항상 지참하고 다니기도 했다.

4 운당 여관 세트의 대혈투 <형사>의 배틀 중 가장 눈여겨 봐야할 신. 소금 2천여 포, 솜, 부직포, 화학 눈 등이 동원된, 눈 내리는 운당여관 세트에서 벌어지는 병판 세력과 포교들의 일전은 이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화이트와 블랙, 두 가지 색감으로만 처리된 이 신은 매스 게임에서 힌트를 얻었다.


세트 디자인

1 장터 이명세 감독이 가장 먼저 촬영하고 싶었던 신. 그러나 가장 후반부에 촬영되었다. 무려 8억 원의 예산이 투여된 <형사>에서 가장 스케일이 큰 세트로, 도시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컬러풀한 색감과 복잡한 구조를 선택했다.

2 병판집 연회장 내부 슬픈 눈이 아름다운 칼춤을 선보이는 장소다. 황금색으로 뒤덮인 연회장의 특징은 음식이 없다는 것. 제작진은 음식 대신 또 다른 화려한 무언가로 연회를 빛낼 생각을 했고, 슬픈 눈의 칼춤은 그 모든 화려함을 충족시켰다.

3 슬픈 눈의 별당 슬픈 눈이 기거하는 장소. 한옥과 정원, 연못으로 꾸며진 작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달콤한 인생> 제작진에게 기증받은 단풍나무가 이곳에 심어졌다.

4 병판집 연회장 외부 사대부의 권력과 부를 상징하기 위해 여러 개의 굵은 기둥을 세웠다. 대들보가 노출된 전통 가옥은 한번 완성하면 다시 수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 작업해야 했다.


의상 디자인

1 슬픈 눈의 검은 의상 처음 의상팀이 준비한 슬픈 눈의 의상 색감은 다크 블루 계열. 그러나 강동원에게 이 색감의 옷을 입혀보니 너무 나약하고 우울해 보였다. 의상팀은 고심 끝에 슬픈 눈의 의상을 모던하면서도 질감이 살아있는 검은 색으로 바꾸었고, 이는 강동원과 썩 잘 어울렸다.

2 안포교의 모자 전통적인 포교의 모자에서 장식품들을 모두 제거했다. 보다 간결하게 정돈된 포교의 모자는 모던하면서도 강한 이미지를 뿜어낸다. 이국적인 느낌의 카우보이 모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3 남순의 옷고름 전통적인 옷고름은 쉽게 풀어지는 속성상 액션이 많은 <형사>에 적합하지 않았다. <형사>에서 의상 팀은 긴 끈을 이용해 단단하게 옷을 여미는 대신 옷고름은 주로 의상의 디자인 포인트로 이용했다.

4 다양한 끈의 효과 남순의 두 단검을 이어주는 오색 끈. 이러한 형태의 끈들은 <형사>의 의상과 소품들에 다량으로 사용되었다. 액세서리가 생략된 깔끔한 의상을 원하던 이명세 감독은 옷에 매달린 끈들이 오히려 배우들의 액션을 더욱 실감나게 표현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



수줍은 날카로움 / 강동원

 레이몬드 챈들러의 소설 <안녕, 내 사랑아>에 나오는 눈에 대한 묘사를 기억한다. 그것은 우물처럼 깊고 표정 없는 눈에 관한 묘사였다. "몽유병 환자의 눈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이 오래 전 '우물 이야기'를 생각나게 했다. 그건 900년 전 어느 고성에 있는 우물로, 돌을 던져 넣어도 언제까지나 물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곳이었다. 단념하고 돌아가려고 하면 아득히 먼 우물 밑에서 희미한 물소리가 나는 그런 우물. 그의 눈은 그처럼 깊었다. 그리고 그 눈에는 표정도 없고 혼도 없었다."


 <형사>의 슬픈 눈(강동원)은, 바로 그런 눈을 갖고 있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 어떻게 공명하는지 알 수 없는 눈으로 세상을 쏘아보는 남자. 슬픈 눈을 연기하는 강동원은 원래 가지고 있던 눈에 광택을 더해 챈들러가 묘사한 것 같은 '우물처럼 깊은 눈'을 만들어냈다. 적어도 내 느낌은 그랬다.

 요즘 들어 강동원이 부쩍 많이 듣는 질문도 바로 그거다. "본인이 슬픈 눈을 가졌다고 생각하세요?" 그는 피식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눈에는 그 사람의 생각이 다 나타나요. 제가 노는 거 멀리하려고 했던 것도, 그런 사람들 눈이 좋아보이지가 않아서예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눈은 멋진데, 여자나 술에 빠져 있는 사람들 눈은 좋아 보이지가 않더라구요. 그래서 예전부터 눈 관리를 좀 했어요.(웃음)"


 그는 영화 속에서 말을 아끼고, 눈과 손끝의 움직임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것은 밤을 새워 대사를 외우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몸의 언어는, 이제 겨우 3편의 영화와 만난 신참 배우에겐 너무 가혹한 주문이다. "정말~ 힘들었어요." 가차 없는 대답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현대 무용과 선무도를 배운 덕분에 '몸의 언어'를 생각보다 쉽게 체득한 듯하다. 영화를 보면 그의 움직임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대역 없는 액션이라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대역 없이 가고 싶다는 것은 어느 정도 그의 의지였다. "촬영 전에 <킬빌>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대역 쓴 게 눈에 다 보이더라구요. 저는 키도 크고 팔 다리가 길어서 대역을 쓰면 다 티가 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처음엔 제 의지로 그렇게 했는데, 나중엔…좀 힘들었죠.(웃음)"


 이명세 감독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남들이 "꼭 해야 한다"고 해서 얼떨결에 하게 된 영화에서, 그는 의외로 얻은 게 많다. "지금까지 이렇게 저와 생각이 잘 통하는 분은 처음 봤어요." 이런 느낌은, 문화적 베이스가 거의 없었던 24살 청년에게 일종의 폭풍과도 같은 경험이 아니었을까. 그는 하얀 종이 같은 남자이고, 아직 채워야 할 여백이 많이 남아 있다. 나는 3시간 넘게 그와 수다를 떨었지만, 이 청년의 정체를 아직 모르겠다. 이 남자는, 누구였을까?  /황희연 편집장



<형사 Duelist> 리뷰

결국은 사랑영화,여전한 낭만파

 나와 영화적 취향이 사뭇 다른 한 지인은 이명세 영화의 개연성이라는 지점에 대해 트집을 잡곤 한다. 이를테면, <지독한 사랑>에서 여자 영희(강수연)가 남자 영민(김갑수)의 자위행위를 도와주는 장면은 실제의 시간과 비교해서 터무니없이 짧다는 것이다. 실소가 터져나올 법한 이 엉뚱한 반감에는 이명세 영화에 동참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티켓 혹은 코드가 내재해 있다. 즉, 이명세 영화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개연성이나 사실성에 대한 기대를 우선 버려야 한다. 영희가 영민의 사정을 위해 쏟아 붓는 시간은 그저 영희가 영민의 행위를 도왔다라는 의미 정도로 충분히 상쇄된다. 만일 이러한 전제 조건에 공감할 수 없다면 아마도 이명세의 영화는 영화라고 불리기에는 지나치게 우연이 남발하고 한편으로는 너무도 세공이 심한 장식품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평론가이기 이전에 우선 이명세의 스타일이 지닌 코드에 공감하고 기꺼이 동참하는 관객이다. 취향이라 불러도 적합할 나의 단언이 지닐 스펙트럼은 그의 영화적 세계를 코드로 호명하는 데서부터 조금은 편파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세 영화는 한국 영화사에서 다른 어떤 것과도 구분될 만한 고유한 코드가 되었음이 자명하다. 이명세의 일곱 번째 장편 영화 <형사>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명세표 코드를 총망라한 결절점이 된다.


귀신에 홀린 사나이

 영화의 오프닝은 엉뚱하게도 숲 사이를 헤매다 귀신을 만난 사내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어둠 속 달빛도 기괴한 밤, 한 중년의 사나이가 여우같은 여자에게 홀려 폐가에까지 이른다. 화면 전체에 여자의 탐스러운 엉덩이가 클로즈업되는 순간 장면은 호들갑스럽게 이야기를 풀고 있는 남자로 전이된다. 영화의 전체 맥락과 전혀 상관없이 영화의 봉인을 뜯어내는 오프닝이 된 이 장면에는 이명세의 <형사>의 스타일이 지니고 있는 비밀스러운 행간이 숨어 있다. 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 사내가 또 다시 등장해 남순과 '슬픈 눈'의 사랑 이야기를 전설이나 우화처럼 구전으로 전파하고 있는 장면과 연관했을 때 더 의미심장해진다. 남자의 너스레가 쳐놓은 울타리, 이 프레임으로 인해 남순과 슬픈 눈이 겪었던 미묘한 감정의 흐름과 일련의 사건들은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상징이 되어 고착된다. 프레임은 남순과 슬픈 눈이 영화의 흐름 위에서 경험하게 될 '대결'의 의미를 알레고리로 닫아주는 셈이다.


 <형사>는 달빛 아래 귀신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홀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알 수 없는 것에의 홀림 혹은 끌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이명세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폐가에까지 홀린 채 끌려가는 힘, 그 알 수 없고 기괴한 끌림을 바로 '사랑'이라고 호명한다.

 감독 스스로 <형사>를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교하듯, <형사>는 바로 금지된 사랑, 경계선 너머에 존재하는 장애물 가득한 사랑이라는 소재에서 출발한다. 이에 <형사>의 창연한 부제인 '대결자(duelist)'는 사랑이라는 서브 플롯이 행간에서 추구하는 전언으로 밝혀진다. <형사>는 길항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 자, 장애 너머의 공간에 존재하는 두 인물의 사랑을 대결의 구도로 살펴본 사랑 영화인 셈이다.


 이명세가 생각하는 사랑의 핵심어는 바로 '대결'이다. 그래서 영화 내내 슬픈 눈과 남순의 대결은 미묘한 긴장과 달콤한 혼돈을 통해 전개된다. 남순과 슬픈 눈은 자신을 서로에 대한 대결로 이끄는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른 채 그 감정의 흐름 자체에 매료된다. 시장 장면, 쏟아진 위조 주화로 달려드는 군중과 먼지, 빛, 형형색색의 천들이 나부끼는 공간에서 유독 남순과 슬픈 눈의 움직임만이 고요하고 정적인 호흡으로 정지된 듯 전경화된다. 이 소란스러운 장면은 두 인물의 서로에 대한 발견을 매개하고 은유하는 일종의 메타포로 기능한다. 바야흐로 사랑은 혼돈 속 응시로 시작되고 잉태된다는 감독의 낭만적 사유가 여기서 또 한 번 발아한다. 사랑하는 여자와 마주 앉은 자리에서 옷고름을 푸는 것이 아니라 흐트러진 옷고름을 다시 매어주는 것, 이 낭만적이며 순수한 기대가 이명세식 사랑의 문법 안에 녹아 있는 것이다.


카오스 속 색감의 언어

 <형사>를 대립적 위치에 놓인 자들의 사랑 이야기로 볼 때, 그들이 벌이는 대결은 일종의 게임이자 무용적 유희로 구체화된다. 어떤 점에서 이명세의 <형사>를 이야기할 때 남순과 슬픈 눈의 사랑의 과정만을 읽어낸다면 이는 이 영화의 4분의 1쯤을 이해한 것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좀 과감하게 말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형사>는 색감과 율동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그 모호함으로 구성된 이미지의 드라마라고 말하는 편이 옳다. 인물들의 움직임을 몸짓이나 행동, 운동으로 칭하지 않고 '율동'이라 부르는 까닭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무협이라는 장르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와이어를 거의 배제한 논리와도 맞닿는다. 이명세가 율동과 같은 그들의 발걸음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화려한 몸의 움직임이 아니라 섬세하고 미묘하게 흐르는 마음의 '동요'라는 추상적 개념이다. 그들의 움직임은 그저 몸의 사지를 움직여 물리적 거리를 구획하는 운동이 아니라 그 운동에 파토스와 정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리듬에 가깝다.


 남순과 슬픈 눈의 대결, 사랑은 그들의 언어가 아니라 움직임과 호흡, 눈빛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공기의 흐름에 따라 진행된다. 어두움과 빛 가운데에서 서로 존재와 부재 상태를 오가며 칼을 맞대는 골목 장면은 이러한 맥락에서 메타포로서의 시공간의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남순과 슬픈 눈의 움직임은 동선이 아니라 마음의 선이며 대화이자 대면이며 교류이다. 그들은 서로를 탐색하다 맞대고, 맞대었다가 멀찌감치 떨어져 호흡을 가다듬는다. 마치 무용극의 한 토막 같은 이 장면에서 대결은 곧 섹스와 다르지 않다.


 결국, 안 포교가 이끄는 포도청 부대가 회오리 모양으로 병판의 집을 포위하고 그 안까지 잠입해 들어간다. 군무처럼 대립되는 두 무리의 움직임은 직선과 곡선의 흐름, 검은색과 흰색의 콘트라스트를 통해 강렬하게 대비된다. 이때 조용히 내리는 눈은 대사가 거의 없는 인물들의 움직임, 눈빛의 교환, 호흡의 변화를 관장한다. 눈으로 인해 혼돈과 소요, 동요는 차분하고 고요한 파문으로 흐른다. 대결의 의미는 빛, 소리, 움직임의 콘트라스트로 현현한다. 이토록 장렬하고 아름답고 파괴적인 콘트라스트, 그것이 대결로 구체화된 사랑의 결말인 셈이다.


The 'M' Word

 어쨌거나, <형사>는 영화적 프레임과 색감, 소리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으로 이루어진 영화라는 서사적 매체를 일종의 형이상학적 관조의 순간으로 전복하는데 성공한 영화이다. 형형하고 휘황한 원색, 강렬한 빛과 암흑의 공존, 대조 속에서 서사라는 구태의연한 미덕은 축출될 수밖에 없다. 이명세 감독은 세계의 거시적 측면이 아니라 연기, 눈, 비, 수증기의 흐름과 같은 미세하고 작은 것의 움직임을 주목하는 작가이다. 그를 통해 관객은 순도 높게 여과된 색감과 소리, 장면, 움직임을 스크린 위에서 감상할 수 있다. 단연코 이명세는 색감을 드라마로 전환할 수 있는 희유한 장인임에 틀림없다. 색감과 움직임, 미장센을 통한 영화적 메타포의 산출이라는 점에서 이명세는 <형사>를 통해 여전히 자신이 지닌 전위의 코드를 세련화한다. 문제는 이러한 세공을 대중이 얼마나 흡입하고 공감하느냐 이다. 강렬한 소구력을 지닌 주인공, 그리고 그 배우를 탁월하게 영화적으로 녹여낸 감독의 솜씨를 미루어 볼 때 분명 성공적이고 아름다운 세공품이지만 어떤 점에서 대중의 기호나 취향에 비해 너무 고급스러운 지적 유희일 수도 있다.  /강유정(영화평론가)



휴.. 며칠만에 찾은 참카테ㅠㅠ 형사 프로덕션 노트 다시 읽어보고 싶었는데 글 올려놓으면서 나도 차근차근 읽어보려고 ㅇㅇ

딥디 코멘이나 서플에서도 촬영 이야기 들을 수 있는데 작업 과정에서의 분량이 많은 영화라 글로 읽는 것도 자세하고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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