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을러서 전형적으로 일 좋아하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타입은 아닌데 일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인 걸 사회생활 1n년만에 받아들이기로 했어.
집이 진짜 가난해서 대학 못 가고 수능 끝나자마자 공장에서 일했는데 처음에는 진짜 매일 울었어. 나는 왜 대학도 못 가나 싶고, 내 친구들은 다 대학 가는데 왜 나는 공장을 가야되나 싶기도 하더라고. 심지어 이 돈을 벌어서 내가 대학을 가거나 이러면 모르겠는데 그 당시에 최저가 3천원대였는데 맨날 야근 특근 밥먹듯이 해서 200만원 정도 받았거든? 근데 내가 한달에 쓰는 건 10만원 미만이고 전부 가족 생활비랑 병원비로 들어가니까 사람이 진짜 미치겠더라고. 이렇게 살아서 좋은 날이 올까? 생각도 들고 이렇게 살 거라면 그냥 삶을 빨리 끝내는 게 낫겠다는 좋지 못한 생각도 했었어. 통근버스에서 소리 죽여서 우는데 아침부터 재수털리게 한다고 지게차 운전하는 아저씨한테 뺨 맞은 적도 있었네.. 근데 이렇게 사니까 내가 너무 힘들어서 생각을 좀 고쳐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말단 생산직 알바면서도 공정 같은 거 쉬는 시간에도 전체적으로 관찰하고 불량률 줄일 방법 없을까 더 쉽게 일할 수 없을까 궁리해서 실제로 불량률 20% 넘게 나오던 공정 1% 미만으로 줄인 적도 있었어. 이왕 일하는 거 다들 좀 편하면 좋을 것 같아서 주먹구구로 일하던 곳 공정리스트 만들어서 배포해서 고졸 생산직 알바로 들어갔다가 1년 만에 생산관리책임자도 됐었어. 규모 생산직 규모가 100명 안 되는 작은 기업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긴 하지만 현장에서 다들 내가 관리책임자 한다고 하니까 좋아했던 기억도 나. 실제로 내가 책임자로 있었던 5년 동안 작업률은 2배 이상 올랐는데 불량률이 뚝 떨어져서 꽤 큰 기업이랑 거래하던 곳들도 우리로 거래처 바꾸기도 했고 보너스도 많이 받았었어. 그러면서도 대학 가고 싶어서 주경야독하면서 수능 준비해서 거기서 딱 6년 일하고 대학 입학해서 서른에 졸업했어.
대학 때는 원하는 직무가 있어서 전공도 그 쪽이고 대외활동, 공모전 다 그 분야로 준비했고 취업도 성공했어. 워라밸 없는 곳이라서 사무실 한켠에서 겨우 4시간 쪽잠 자면서도 즐거웠어. 내가 뭔가를 했을 때 결과가 나오는 게 너무 좋더라고. 오지랖 넓은 성격이라서 내 일만 보는 게 아니라 나랑 연관된 일도 같이 보고, 생산관리 할 때는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서 일해버릇 해서 같이 일하는 분들이 하는 업무 얘기도 귀담아 들으려고 했어. 업무와 관련되서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단순 반복되면서 시간만 잡아먹는 부분을 조심스럽게 건의해서 개선하는 것도 많이 했고. 진짜 좋아하는 일이었는데 1년 좀 더 일하고 코로나가 터지면서 산업 자체가 내려 앉아서 다른 분야로 길을 틀어야 했지만 매일매일 출근만 기다려졌어.
코로나 때문에 직무를 정반대로 전환했을 때도 처음에는 아 개노잼.. 이랬는데 그 안에서도 시스템을 만들거나 개선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더라고? 특히나 코로나 때라 다들 대응을 어려워하던 시기라서 내가 전공이 컴퓨터 쪽은 아닌데 혼자 유튜브랑 책 보면서 건강관리 시스템 만들어서 회사 내에 확진자가 나왔을 때 우리 회의 예약 시스템 같은 거랑 연동해서 동선 파악하고 접촉자들 분류할 수도 있게 했었어. 이건 진짜 밤 새가면서 만들었는데도 꽤 재밌었다.. 하면서 계속 추가하고 개선할 게 생겨서 나중에 접종 시작할 때는 접종자들 관리하고 이런 것도 시스템에 추가했었는데 다들 너무 편해졌다고 좋아하셔서 뿌듯했던 기억이 나. 특히 ai가 나오고 나서부터는 업무를 좀 더 자동화할 수 있는 게 많아져서 내 업무 말고도 다른 사람들 것도 자동화 툴 개발해 주기도 했었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그랬던 것 같은 게, 내 퍼포먼스가 안 나오는 곳은 돌려돌려 직괴를 하는 분위기가 있거나, 고인물 하나가 다 휘어잡고 있거나, 아니면 소위 월루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곳들이었어. 그런 곳은 사실 3개월 정도면 파악이 되니까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이직해서 괜찮은 곳 찾아가느라 나도 이력서에 안 적는 3개월 미만 조각경력이 한바가지야ㅋㅋ 대신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대가리 박고 일하는 편이라서 대리급일 때 갑자기 팀장님이 사고당하셔서 길게 병가 냈을 때 걍 대리 급여 받으면서 3개월동안 팀장 대행도 했었어. 나는 그냥 인정만 해 주면 되는 타입인 것 같기도..
그렇다고 좋은 사람들만 만났던 건 아닌 게,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지만 진짜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사람도 있었어. 처음 말했던 공장에서도 텃세 엄청 부리면서 신입들 들어오면 다 쫓아내는 40대 현장직이 있었는데 찐으로 그 사람한테 맞아서 손가락이 부러졌었어. 그 때는 너무 어려서 이걸 문제삼지는 못했는데 오히려 내가 고개 들고 다니고 다른 사람들한테 인정받으니까 제 풀에 못 이겨서 때려치고 나가더라고. 그렇지 않아서 내가 이직을 선택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일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아.
최근에 가족 간병 문제로 지역을 아예 이동하게 되면서 이직을 했고 출근한 지 한달 조금 넘어가는데 지금 일도 굉장히 재밌어. 이제까지 해 오던 일이랑은 또 전혀 다른 분야로 들어왔는데, 새로운 걸 배우는 것도 재밌고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는 것도 재밌어. 일단 지금까지 내가 파악한 내 업무를 노션에 체크리스트랑 설명서 같은 걸 바로바로 볼 수 있게 구현했는데 이게 또 꽤 재밌더라고? 그래서 사실 명절 때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아 출근하고싶다 이러기도.. 물론 여기도 좋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서 진짜 스트레스 심하게 받는 날도 있는데 그럼에도 일이 재미있으니 버티는 것 같아. 사실 지금도 집 와서 씻고 밥 먹자마자 노트북 켜서 내일 출근해서 해야하는 것들 리스트업하고 우리 팀이 헤드 업무를 하는 곳이라서 워낙 일이 많으니 다들 데드라인 스케줄을 놓치는 경우가 있어서 그거 관리하는 스케줄러 만들다가 문득 생각나서 더쿠에서 글 쓰는 중이야.
사실 나도 어릴 때는 왜 우리집은 이렇게 찢어지게 가난해서 내가 대학도 제때 못 가게 하지?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 때의 경험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던 것 같아. 스무살의 나는 매일 비관적인 생각만 했거든? 그 당시에 내 별명이 버스울보였다는 거 나중에 알았잖아ㅎ 그런데 그 안에서도 진짜 없지만 어떻게든 끌어내서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내고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찾아내니까 사람이 달라지더라고. 더쿠에도 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그런 사람도 있고, 너무너무 싫어서 견딜 수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사람들이 하루하루 무사히 살아내고 있으니 행복했으면 좋겠어. 조금 시간이 걸릴지라도, 조금 더디더라도 반드시 행복했으면 해! 다들 편안한 저녁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