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초딩 생기부 보면 어지간히 사회성 없고 감정 없는 애였는지 종합평가든 과목별 평가든 죄다 그런 내용이야. 근데 3학년 때 종합평가 읽다가 그 선생님 수업시간에 정신병자년아 내 교실에서 나가 소리 들었던게 갑자기 떠올라버림.. 내가 말썽 많이 피우던건 아니고 오히려 존재감 제로에 동창들도 동창인지 모르는 조용한 애였어. 특이사항은 감정이 거의 없어서 그 나이 애들이면 열이면 열 울어버릴 상황에서도 한번도 운 적 없고 오히려 그렇게 우는 애들 보면서 대체 왜 울지..? 라고 생각했던 거? 원래 이런 건 아니고 그전엔 감정표현이 과하게 풍부했는데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아빠 사기당하면서 집에 차압딱지 붙고 용역깡패들이 내 눈앞에서 돈 안 준다고 아빠 패고 집 부수고 그때 큰 충격 받아서 그랬던 거 같대. 워낙 어릴 때라 이건 엄마 피셜이고 그래서 아래 얘기도 드문드문 내 기억과 엄마 얘기가 합쳐진 내용이야.
한 예로.. 집 망하고 난 직후인 아홉살 되던 해 설날에 할머니가 경북 살아서 엄마랑 동생이랑 인천에서 버스 갈아타고 거기까지 갔는데 터미널에서 엄마를 잃어버렸거든? 아마 명절이라서 짐 많아서 엄마가 동생 손만 잡고 정신없이 갔던 거 같은데 그 때도 전혀 안 울고 할머니네 주소는 알았으니까 엄마가 비상금이라고 손지갑에 오천원 넣어줬던 걸로 사람들한테 물어물어서 할머니집 찾아갔었어. 그때는 90년대라 초등학교만 가면 혼자 다녔고 내가 전혀 울지도 않으니 그 동네 어른들도 동네 애라 생각한듯.. 그렇게 시내버스 한번 갈아타고 할머니네 도착하니까 이미 엄마는 나 찾는다고 차로 30분 거리를 뛰어나갔대고 경찰들 집에 와있었어. 할머니가 나 껴안고 우는데 솔직히 그 때도 왜 우는지 몰라서 멀뚱거리고 있으니까 어른들이 애가 너무 놀래서 그렇다고 청심환 먹이고 눕혀놨던 것도 기억나.
4학년 때는 하교길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서 팔도 부러지고 얼굴도 크게 다쳐서 응급수술 했는데도 안 울고 얼굴 다쳐서 말을 못하니까 안 다친 손으로 내 이름이랑 생년월일, 엄마아빠 이름이랑 전화번호 주소 다 적어서 병원에서 집으로 연락해서 엄마아빠 진짜 울면서 맨발로 뛰어왔어. 이 때도 안 울어서 아마 인턴이나 레지던트였던 언니가 내 옆에 계속 있어줬는데 너 안 아파? 안 무서워? 너 왜 안 울어? 이렇게 물어봤었어. 근데 정말 솔직하게 왜 무섭고 왜 우는지를 더 이해 못했던듯..
수업때 저 얘기 들은 것도 저런 무감정한? 걸 그 선생님은 아예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 같아. 책에 손을 베여서 피가 나는데 짝이 그걸 보고 선생님 얘 피나요! 양호실 가야돼요! 했는데 내가 안 아파~ 하고 그냥 휴지로 닦고 말았거든. 그것만 보면 저 소리가 급발진처럼 보이겠지만 다른 이야기도 여럿 있는 거 보면 뭔가 내 행동이 저 선생님에게는 불쾌한 골짜기 같은 거 아니었을까 싶어. 생기부에도 유독 그런 식으로 써 있는 거 보면? 근데 그 때도 나가라길래 나가서 운동장 돌아다녔던 거 같아. 그 말에 전혀 충격을 받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고 그저 선생님이 왜 얼굴 빨개지면서 소리지르지 목 아프게? 했던듯. 이거 집에다 얘기한 것도 내가 혼나서가 아니라 엄마가 오늘 학교에서 어땠어? 라고 물어서 진짜 드라이하게 선생님이 나보고 정신병자년아 나가라고 소리질러서 운동장에서 놀다가 집에 왔어~ 이랬던 거였어.
그때만 해도 학교 찾아갈 때도 아니고 엄마아빠도 그 정도로 극성은 아니라 그 말 듣고 차분하게 물어봤어. 어떤 상황에 어떤 행동을 했는데 선생님이 그러셨냐고. 다 대답했더니 그때까지는 우리집이 아주 가난할 때라 병원은 못 갔었고 엄마가 매일 특이한 교육 같은 걸 했어. 아마 감정에 관한 교육이었던 거 같은데 우는 아기 사진 보여주고 어떤 거 같냐 물어봐서 내가 대답하면 이거는 애기가 엄마를 잃어버려서 우는 거니까 슬픈 거야. 주변에 이런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슬퍼해 줘야 해. 이런 거 가르쳐줬어. 그러다 보니 감정을 배워서 표현이 가능해졌고 중고등학교 때까지 점차 나아지더라. 저런 소리도 안 듣고 생기부도 그런 얘기 안 나오고..
그러다 고1때 학교에서 어떤 계기로 우울증이 세게 와서 병원 간 김에 이것저것 검사도 했는데 거기서 사회성이나 공감 같은 게 7살 수준이라고 나왔어. 지능은 높은데 사람들이랑 어울려 살아가는 능력이 엄청나게 떨어진다고. 근데 나중에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6개월마다인가 재검을 했는데 그때마다 한두살씩 늘어나고 있어서 괜찮다고 뭔가 어릴 때 문제로 이게 0세로 돌아갔다가 올라오는 중인 거 같다고. 그래서 30중반 된 지금은 너무 감정표현이 풍부하고 공감을 잘 해서 문제라고 엄마가 그럴 정도인데 저 때는 진짜 큰 충격으로 감정표현을 하지 않았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주변에 얘기하면 진짜 이상한 소리 들을 거 같아서 갑자기 생각나서 속 답답해 진 김에 더쿠에 털어놓고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