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지피티 번역
― ‘익명의 연인들’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되었죠. 한국의 반응은 어땠나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이후 두 번째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는데, 한국 관객들의 열기가 정말 뜨거웠습니다. 처음 방문했을 때도 큰 극장에서 지진처럼 울리는 박수가 터졌는데, 이번에도 그때와 같은 에너지를 느꼈어요.
― 원작은 프랑스 영화 ‘익명 연애 상담소(Romantics Anonymous)’인데, 드라마로 만들게 된 계기는요?
한국의 YONG FILM에서 기획한 프로젝트였습니다. 프로듀서 임승연, 기획자 박소연 두 분이 어느 정도 시놉시스를 완성한 후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됐다”며 저에게 연출을 제안했죠. 원작의 ‘쇼콜라티에’ 설정만 유지하고, 인물과 전개는 완전히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미 완성도가 높았기에 그 기반 위에서 캐릭터를 다시 세우는 느낌이었어요.
― 최근 한일 커플을 다룬 작품들에서는 남성이 한국인, 여성이 일본인인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반대네요.
이 작품은 원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일본어 드라마로 기획돼서 오구리 슌 씨가 먼저 캐스팅되었습니다. 이후 ‘하나’ 역을 논의하던 중, 마침 한국의 임승연 프로듀서가 일본을 방문했고, 한효주 씨와도 오래된 인연이 있어서 오구리 슌 씨와 함께 화상 통화를 하게 되었어요.
그냥 인사 겸한 대화였는데, 통화가 끝나자마자 모두 “이건 하나 그 자체다”라는 반응이었죠. “혹시나 해서 부탁드려보자” 했는데, 결국 출연이 확정됐습니다. 일본과 한국 커플이라는 설정은 전략이 아니라, 정말 ‘운명처럼 만나버린’ 결과였어요.
― 한효주 씨의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 로맨틱 코미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어요.
정말 훌륭했어요. 그녀는 다양한 캐릭터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입니다. ‘뷰티 인사이드’, ‘무빙’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연기를 보고 “아, 한효주였구나” 하고 나중에 깨달을 정도로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합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어요.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지금 단계에서 요청사항이 있나요?”라고 물었어요. 작품 속에 “만드는 사람의 행복이 먹는 사람의 행복을 만든다”는 대사가 있어서 “항상 행복한 기운으로 있어주세요”라고 부탁드렸죠. 그 후로 현장에서도 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줬습니다.
스태프들과도 아주 가까웠어요. 보통 배우가 좋은 연기를 보여준 뒤 스태프가 뭔가 아쉬운 점이 있어도 “한 번 더 해주세요”라고 말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한효주 씨는 “좋아질 수 있다면 뭐든 시도해보자”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현장 분위기가 늘 따뜻했습니다.
―― 일본어 연기도 정말 훌륭했습니다.
상당히 오랫동안 일본어를 연습해온 것 같았어요.
―― 처음부터 그렇게 완성되어 있었나요?
아뇨, 처음엔 통역을 두고 촬영 현장에서 의사소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일본에 머무르면서 계속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제 통역은 필요 없겠다”는 단계에 도달했죠. 오히려 어떤 때는 한효주 씨가 통역을 맡아주는 게 더 정확하겠다고 느낄 정도였어요. 반응 속도나 리액션을 보면, 정말 네이티브 같았어요. 일상 대화 중에 농담도 툭툭 던질 정도로 자연스러웠죠.
물론 연기에서 사용하는 일본어 톤이나 억양은 지도받았지만, 흡수 속도가 굉장히 빨랐습니다. 새로운 단어를 들으면 바로 “그건 무슨 뜻이에요?”라고 물어볼 만큼 호기심도 왕성했어요.
이질감을 그냥 두지 않는, 한효주의 집요함
―― 가까이서 본 감독님이 느낀 한효주 배우의 매력은 어떤가요?
마지막까지 아이디어를 내는 점이에요. “지시받았으니까 이렇게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내가 납득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배우입니다. 아주 끈기 있어요. 무언가 어색하다고 느끼면 “음…” 하며 그냥 넘기지 않아요. 완전히 납득이 될 때까지 생각합니다.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항상 혼자 초콜릿을 만들던 하나의 작업실에 은퇴한 쇼콜라티에가 찾아와 함께 만드는 장면이 있었어요. 대본에는 단지 “당신도 도와요”라고 말한 뒤 함께 만들기 시작한다고만 되어 있었죠. 그런데 한효주 씨가 “그 대사만으로는 바로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말했어요. 저도 “그럼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울까…” 하고 고민했는데, 한효주 씨가 은퇴한 쇼콜라티에 역의 배우에게 “지금 손에 든 오렌지를 저한테 던져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제안한 거예요.
그 배우가 “당신도 도와요”라며 오렌지를 던지고, 하나가 그것을 받아 “괜찮을까요?”라고 대답하며 함께 만들기 시작하는 장면이 완성됐죠. 그 짧은 동작이 정말 자연스럽고 따뜻한 순간이 되었어요. 이런 식으로 행동의 동기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배우는 정말 드물다고 생각했습니다. 논리적으로도 감각적으로도 완전히 이해하고 표현할 줄 아는, 매우 귀한 배우예요.
―― 실제 한효주 씨는 극 중 ‘하나’와 비슷한 면이 있나요?
촬영 기간 동안만큼은 특히, ‘하나’라는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던 것 같아요.
오구리 슌은 “무언가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연기 철학을 체현하는 배우다.
―― 오구리 슌 씨의 매력은 어떤 점인가요? 한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일본 드라마를 취재하다 보면, ‘꽃보다 남자’로 오구리 씨의 팬이 되었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렇습니다. ‘꽃보다 남자’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고,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는 ‘크로즈 ZERO’의 인상이 강해서, 그 작품 속 배역 이름인 ‘겐지’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있더군요. 아시아 전역에서 정말 인기가 많아요.
오구리 씨와 함께 작업하는 건 이번이 세 번째인데, 매번 그의 연기에 완전히 납득하게 됩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하는 배우예요. 대본을 여러 번 읽고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뒤, 대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상태로 현장에 옵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유연하게 연기할 수 있는 거죠. 상대 배우의 연기를 보고 “네가 이렇게 온다면, 나는 이렇게 받아줄게”라는 식의 반응형 연기를 펼칩니다.
이번에는 배우들이 연기에 어떻게 임하는지 궁금해서 “어떤 책을 읽나요?” “어떤 연기 메서드를 참고하나요?”라고 물어봤어요. 한효주 씨는 배우 마이클 케인의 저서를, 오구리 씨는 샌포드 마이즈너의 『온 액팅(On Acting)』을 읽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책에는 “무언가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연기 철학이 담겨 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납득이 갔어요.
오구리 씨는 이미 대사와 감정이 몸에 배인 상태로 현장에 와서, 그 자리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상황에 반응하며 연기를 만들어갑니다. 그래서 굉장히 유연하고, “그렇다면 이 장면은 이렇게 해보자”라는 아이디어도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집에서 이렇게 연습해 왔으니까 맞춰 달라”는 타입이 전혀 아니라,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지는 ‘세션’을 즐기는 배우예요.
―― 정말 “세션” 같네요. 그런 호흡이 잘 맞으니까 여러 번 함께 작업하신 것 같아요.
맞아요. 연기와 현실의 주고받음이 경계 없이 이어지는 느낌이 있고, 그래서 정말 흥미롭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후편은 10월 25일 공개 예정)
https://news.yahoo.co.jp/expert/articles/7f8bba464a004e29a712786f92990e3539b2bdb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