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하바라 한복판에 위치한 아이돌 카페, ‘디어스테이지(DEARSTAGE)’로부터 또 다른 인디즈 아이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이름은 덴파구미.inc(でんぱ組.inc, 당시 DEMPAぐみ로 표기. 이하 덴파구미). 디어스테이지에서 접객원으로 일하던 후루카와 미링(古川未鈴)의 ‘역시 아이돌이 하고 싶다’는 대책 없는 한마디에 응해 결성된 이 2인조 그룹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좀 이상했다. 언뜻 보면 단순한 일회성 기획의 전파계 아이돌 같았지만, 디어스테이지의 괴상한 인테리어 탓인지, 아니면 느닷없이 홍보물에 ‘코무기’**가 등장한 탓인지, 좀 다른 곳에서 이상했다.
**애니메이션 〈너스 위치 코무기쨩 매지카르테〉 (2002)의 주인공
시간이 지나, 2012~2013년 언저리. 제타의 혼을 이어받은 모모크로가 메이저에 진출해 급작스럽게 인기를 얻어 한참 맹위를 떨친 뒤 그 열기가 조금 뜸해졌을 무렵. 이제는 무려 6명이 된 덴파구미는 오타쿠들의 본진 아키하바라로부터 조용한 폭발을 일으키며 그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름에 충실하게 전파계 음악(전파송)을 주력으로 내세워, “W.W.D(World Wide Dempa)“ 앨범을 기획해 두 번에 걸쳐 발매. 타이틀곡엔 이 분야의 스타, 통칭 ‘햐다인(ヒャダイン)’으로 익히 알려진 작곡가 마에야마다 켄이치(前山田健一)의 이름을 걸어두고, 그 리믹스 라인업엔 PandaBY나 fu_mou 등, 애니메이션 클럽 이벤트에서 주력으로 활동하는 동인 음악가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그 가사는 멤버들의 소외나 좌절 같은 제법 묵직하고 어두운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한편, 한 그룹의 일원으로서의 느낌 등 ‘우리’의 이야기를 읊조리며 신세대 오타쿠들의 공감대를 직접 자극했다.
리더인 리사(相沢梨紗)는 성우 덕력을 바탕으로 ‘2.5차원 전설’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미링은 KONAMI의 게임 〈Beatmania IIDX〉에 객원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네무(夢眠ねむ)는 오타쿠 클럽 ‘MOGRA’에서 ‘DJ 네무큥(DJ Nemukyun)’이란 이름의 애니송 DJ가 되어 나타났다. 당시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모가미 모가(最上もが)는 평범하게 잡지나 그라비아 활동이 주인가 하고 보면, 온라인 게임 폐인 히키코모리였던 과거를 트윗으로 읊곤 했다. 이렇게 멤버들의 개별 활동도 그 형식 자체는 기존의 다른 아이돌들과 비슷한 각개전투성 운영이겠으나, 그 내용 면면은 보다 ‘깊숙했다’.
여기까지 오고 나니, 이들이 풍기던 이상함과 위화감은 어느새 쾌감이 되어 있었다. ‘아이돌이 되고 싶어!’라는 한 마디로 그 길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이들은 그 말에 화답해 아이돌이 되었다기보다는, 아이돌의 모습과 입을 빌려 오타쿠 센스를 마구 어필하고 있는 고퀄리티 아이돌 코스튬 플레이어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가짜가 최선을 다해 진짜를 모방하고, 이윽고 진짜의 위치를 뛰어넘기 시작하는, 이상하고 익숙한 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