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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희랍극과 아킬레스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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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1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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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뮤지컬보다 연극을 많이 보는 편이고 희랍극을 아주 좋아하는데 아킬레스 뮤지컬은 제목과 극중인물들 이름부터가 일리아스에서 따왔으니 희랍극이 안떠오를수가 없잖아? 아킬레스 역할 배우의 팬인 지인덕분에 추천받아서 함께 자첫한 뒤로 오늘까지 자넷하고 느꼈던 것들을 쓰는 감상글이야. 뮤지컬을 단시간내에 이렇게 몰아 본 적 처음인데 전체적으로 매우 호글이지만 약간의 불호도 있어. (스포O)

개인적으로 희랍극이 아직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데에는 현대인들도 충분히 이해할수 있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아킬레스가 그 원리를 아주 잘 따라간 극이라고 생각해.

뮤지컬 줄거리는 주인공이 반나치 운동을 하다 미국으로 망명해서 락스타가 된 뒤, 전후 독일로 돌아와 전범재판에 증인으로 서게 되면서 그간의 소회를 전한다는 간단명료한 이야기이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 아킬레스라는 한 인간의 삶을 어린시절부터 보여주는 독백과도 같은 극인데 그 속에 일리아스 속 인물들을 투영시키고 있지.

자첫때부터 재미있었어. 대사속 문장들도 그렇고 실질적인 허수아비의 등장처럼 은유가 매우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직설적인 은유라서 신선했는데 가끔은 오히려 너무 명확하게 상황을 드러내놓는 직접적인 표현들이 많아서 은유라고 칭할 필요도 없다고 느꼈어. (예: 흙묻은 사탕이 드러내는 아킬레스의 고통+욕망이 공존하는 모순, 그림속 모자쓴 사람이 가르키는 아킬레스에 대한 차별 등등)

대놓고 아킬레스라고 명명한 뮤지컬이지만 일리아스 속 아킬레스 헥토르 파트로클로스의 관계보다 어린시절 아킬레스와 펠레우스 테티스 케이론의 관계성에 더 흥미로움을 느꼈는데 짧아서 아쉬움이 조금 있긴 하지만 이부분에서 독백하는 아킬레스가 굉장히 존재감이 있어서 눈길을 끌더라. 이 장면에서 희랍극이 짙게 느껴졌고 이후에는 예상보다 가벼운 분위기도 많았어.

특히 초반을 지나면 독백과 음악학교, 클럽장면 등등은 무대위 배우가 아니라 그저 아킬레스라는 화자가 거리낌없이 관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태가 강해서 나는 지금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이다, 라는 느낌 보다는 실제 콘서트나 증언하는 현장을 다큐멘터리처럼 내가 지켜보고 있다, 는 현실감이 많이 느껴지는 극이야. 희랍극의 형태를 좆으면서도 이런 현실감이라니, 이 부분이 제일 신선했어. 아킬레스 배우도 중간중간 무대 위의 배우가 아니라 그냥 생활인처럼 물도 편하게 마시고 뒤로 돌아서 땀도 닦고 하던데 이런 부분이 재밌더라. 스탠팅코미디를 몇번 본 적 있는데 그 현장감이 좀 닮아있어.(아킬레스가 코미디라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

또 재미있고 신선했던 점은 나치시대를 일리아스와 섞으며 시대상을 투영하는 방식으로 개인의 삶에 중점을 맞춘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거대한 "저항"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야. 일리아스의 아킬레스가 운명에 저항하려 발버둥 친 것을 독일에 사는 유대계 아킬레스에게 녹여내려는 의도가 너무 단순해서 그렇지 아주 적절하게 사용했다는 느낌도 받았는데, 결국 아킬레스는 나치에 저항한 영웅이지만 일리아스의 아킬레스가 그랬듯이 마찬가지로 절대선 같은 존재가 아닐뿐더러 아킬레스라는 이름을 떼어놓고 본다면 인간이 행동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 빚은 최대의 저항을 보여준다고 느꼈어.

무엇보다 아킬레스가 전체적인 흐름을 끌고 가야하고 배우의 존재감이 큰 역할을 하는 극인데 오늘 본 배우 위주로 쓰자면 고훈정 배우는 이 극에 아주 잘 맞는 배우같아. 앞서 말한 희랍극의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냈던 아킬레스야. 지인과 자첫한 이후에 한번 더 보고 싶어서 예매한게 고훈정 회차였었는데 그때도 아주 좋았지만 오늘 두번째 보면서 오직 고훈정만 보러 관극할 용의가 생길정도로 좋아졌어. 오늘 커튼콜에서 본인이 음이탈이 난 것을 재치있게 고백하던데 사실 본공연 볼때 나는 그냥 갈라진 목소린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이너스 요인은 아니었어. 고훈정 말하는 스타일이 되게 재밌더라. 커튼콜때 배우들 말하는건 이제까지 다 재밌었어.

어쨌든 고훈정, 위엄있는 존재와 짓눌리는 한낱 인간의 상반된 모습을 오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아킬레스이고 매력있어. 음영짙은 배우의 외모 덕분인것도 있는것 같고, 무대위에 섰을때 아킬레스로서의 존재감이 아주 강렬해. 노래실력이 굉장하고 목소리의 울림이 크고 단단해서 연극 하는 것도 보고싶었어. 앞으로 아킬레스를 또 보게 된다면 고훈정의 아킬레스를 볼거야.

그리고 연기와 노래가 분리 되지 않게 이어가는걸 아주 잘하는 배우라고 느꼈는데 (노래를 대사로 읊듯이 시작하던 부분이 있었는데 이건 아킬레스들 중에서는 고훈정만 했던 것 같아.) 원래 이런면에서 특출난건진 모르겠지만 내가 뮤지컬을 자주 안보는 이유중에는 연극이 너무 좋기때문에 연극 보는게 바빠서인 이유가 가장 크지만 노래와 대사가 이어지거나 노래와 연기가 이어질때 부자연스러운 뮤지컬 특유의 느낌이 관극 흐름을 끊고 어색하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이유도 약간은 있는데 고훈정은 그런 느낌이 많이 없어서 좋았어.

헥토르테티스 홍미금 배우도 아주 마음에 들었어. 목소리부터 내 취향이고 아주 매력적이야. 1인 다역을 하는데도 바빠보이는 느낌도 없어서 좋았고 케이론과 헥토르가 다른것이 표정만으로 느껴진것도 좋았어. 연기력이 특출나게 뛰어나다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캐릭터에 아주 잘 맞는 느낌이라고 하는게 더 맞는 표현일 것 같아.

역시 연극을 해도 좋을 것 같았는데, 그냥 든 생각이지만 클로저에 나온다면 잘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내 취향으로는 정말 별로였던 연극이지만 홍미금이 앨리스같은 캐릭터를 한다면 아주 매력적일 것 같아.) 별개로 지난번에 본 김이후 배우는 홍미금 배우와 다른 느낌이었지만 김이후도 아주 좋았었고 헥토르 역할도 캐스팅을 아주 잘 한 것 같아.

마지막으로 정선기 배우는, 예전에 댄싱나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현대무용에 빠져서 중요한 공부 해야 할 시기에 댄싱나인 공연이며 현대무용 공연 미치도록 보러 다닌적이 있었는데 허수아비는 댄싱나인 생각날 정도로 좋았어 목소리도 좋긴 한데 창법 자체는 내 취향은 아니더라. 노래와 연기보다 무용이 더 각인되는 부분이 꽤 있어. 서동진 배우로 볼때도 창법이 내 취향은 아니라고 느꼈는데 이들이 못한다는 소리는 아니고 그저 내 취향이 아니라는 소리야. 아킬레스에서 아킬레스 독백만 추리고 살린 뒤에 다른 부분들은 무용 장면으로만 꾸민 무용극으로 극을 올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용은 아주 좋았어.

게다가 오늘이 그동안 아킬레스 관극중에 배우들의 합이 가장 좋은 날이야. 배우들 각자 연기력이 뛰어나도 합이 맞지 않으면 보는 사람이 지치기 마련인데 오늘은 무엇하나 어색함 없이 좋은 공연 한편 보고 났을때의 뿌듯함이 있어. (아킬레스가 아버지를 외면하는 부분에서 아버지 되는 부분도 오늘 처음으로 울컥 했어)

글을 맺으며, 관극전에 드아센2관이 불편하다는 소리를 접하고 봤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괜찮았거든. 결코 훌륭한 극장이라고 말할순 없지만, 아마 내가 연극 보러 다니면서 극장이 아닌곳에서도 이뤄지는 소규묘 연극 또한 많이 봤던 경험때문에 단련이 되어서 그런것 같아. 덕분에 불편함 없이 아주 잘 봤으니 나로서는 다행이야. 그리고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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