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면 날마다 오는게 아닌 규빅은앙.. ^^
오늘도 덕분에 살아갈 힘을 얻어따..
알다시피 은괴는 앙리의 기억을 아주 많이 가진, 앙리와 아주 많이 닮은 존재이기에 슬프지.
매 공연마다 바뀌는 은괴의 연기를 보면서
'앙리의 기억이 많이 느껴질수록 복수를 하는 당위성이 반비례하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해야 완벽한 지점을 찾을 수 있을까? 관객인데도 같이 고민하며 보곤 했는데
뭐랄까. 오늘 공연에서 어느 것도 정답은 없구나.
이게 뮤지컬의 맛이구나. 하고 새삼 느꼈던 하루였어 ㅋㅋㅋ
개인적으로 오늘은 2막이 정말 좋았어서, 거기서부터 써볼게.
오늘의 은괴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괴물처럼 시작했어.
그곳에는, 사람이 없어? 그곳에는, 싸움도 없어?
괴물이 조근 조근 물어보듯이 노래하는 은괴의 디테일.
오늘은 갓 태어난 괴물이구나 느꼈던 건,
누구도 상처주지 않아. 그곳에는 평화가 있어..
할때도 그 아이같은 목소리를 그대로 가져가서..
까뜨린느의 발길질에 몸을 크게 휘청이며 놀라던 은괴.
줄곧 까트린느를 향하던 손이 그러고나니 멈추더라. 상처받은 것처럼.
그래봤자 까트린느가 사라질때 다시 뻗을 거면서...
연기 속을 걸어들어갔다 돌아오는 디테일을 하는 날이면 오늘은 분노에 꽉 차있구나, 느끼지.
그렇게 씩씩거리며 걸어갔는데 나오는 순간 닥쳐오는 두통에 그대로 무너졌어.
빅터, 빅터.. 조금씩 떠오르는 기억.
앙리의 기억이 돌아왔다는게 확실한 건
울먹이며 빅터를 부르고
또 다시 한번 친구를 찾듯이 부른 순간.
굳이 자신의 얼기설기 이어진 몸을 확인하지 않아도, 앙리는 자신이 괴물의 몸으로 이곳에 존재하고
괴물인 어떤 존재와 하나가 되었다는 것,
그렇기에 너무나 선명하게 자신을 기억하지만, 자신은 그 존재일 수 없다는 것.
그 복합적인 것을 이미 깨달은 것 같았어.
그래서 꾹 눈을 감고서.. 어떤 기억을 확인하듯이.. 한참을
그리고 차라리 평온에 가까워진 얼굴로
포근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를 부르는데
아, 만족스럽더라..
슬픔도 분노도 딱 반씩 섞인 은괴가 등장할때마다
그의 심판이 이해되면서도
동시에 앙리가 속에 있는 것만같은 서글픔.
은괴만의 노선이 가진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오늘 아주 훌륭하다는 기분이 드는거지.
반면 오늘따라 제법 교만했던(ㅋㅋㅋ)규빅.
규빅은 2막이 뒤로 갈수록 점점 퀭해지는 얼굴을 보는 맛이 있는데...
오늘은, 그냥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후회를 부르는 순간조차 그렇게까지 무너지지 않아보였어.
(진정하지 못해서 얼마나 더, 하고 숨을 고른 다음 다시 얼마나 더, 부르는 날이 있는데 오늘은 아니었지)
북극에서 은괴를 마주하는 순간에도. 앞머리는 덥수룩해가지고 완전 어린애같은데,
슬픔에 완전히 절여지기전에 분노가 있어보이더라.
하지만 너무나 한주먹거리인 그는 칼이 찔린 채 떼굴떼굴 굴러...
죽기 살기로 한손에 나이프를 쥔 채 은괴 앞에 서는데, 은괴는 내려다보며 총구를 향하고 있지.
규빅의 손에서 나이프가 망연자실하게 떨어지고.
정적 속 눈 앞의 총구를 쳐다보는 규빅이 부들부들 떨 듯 두려워보이더라.
그런데 스스로의 처지를 불쌍해하기보다는, 오히려 너무나 강대한 적을 눈 앞에 두고 텅빈-순수한 눈으로 돌아간 것 같은
약간 규빅만의 어린 표정이 있는데. 그게 너무 좋더라고.
그 작디 작은 창조주를 보고 은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그 순간 이미 복수가 성공했다고 느꼈을거야
이 존재는 괴물을 쏘고 나서 엄청나게 후회할테니까..
머뭇거리며 총을 받은 규빅, 탕 하고 냉정하게 울려퍼지는 소리,
규빅은 도리어 자기가 총을 맞은 것처럼. 영혼이 빠진 얼굴로 무너지는 은괴를 쳐다봐.
으으으.. 괴물의 신음을 내며 무너지는 은괴. 고통 받는 괴물의 마지막 아우성을 표현하는 것처럼..
'그 한쪽 다리로는 북극을 빠져나갈 수 없어.'
반면 이어지는 목소리는 너무나 담담해. 이 광경을 이미 알고 있던 사람처럼..
정해진 운명을 빅터 앞에 펼치기 위해 내려온 심판자처럼..
빅터, 그렇기에 처음 한번 부를때 규빅은 미동하지 않아.
빅터, 하지만 다시 한번 부르자 덜덜 떨며 눈 앞에 자신을 부르는 존재에게 다가가지.
오늘따라 은괴가 무대 왼쪽으로 쓰러져서 규빅은 한참을 기어가네.
어쩌면 저 존재에 닿기 전에 이미 저 존재가 스러질까봐 두려울만큼...
그 존재에 확신이 없기에 천천히 거리를 좁혀가.
하지만 은괴가 마지막 그 말을 던지고 말았어.
'빅터, 내 친구...'
담담한 목소리도, 슬픔과 고통만이 섞인 목소리도 아니라
내 친구. 그 세 어절에 힘이 실린, 앙리의 살풋한 웃음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괴물과 앙리는 엄청난 복수를 하고 말았어..
규빅은 자신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는 그 존재를 가까이서 한참 보다가
'이해하겠어?
이게 내 복수야...'
자신의 뺨 옆에 머문 두 손을 따라 자신도 손을 뻗는데,
규빅의 손이 은괴에 뺨에 딱 닿을 것 같았던 그 순간
생명이 꺼졌어.
쓰러진 머리가 규빅의 손을 스쳤지.
아무 말 없이. 닿지 못한 손바닥을 확인하는 것처럼.
눈 앞의 죽음을 멍하니 보다가,
잠시 후에야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몸을 빼는 규빅.
마른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봐.
아, 여기가 어디지.
그리고 은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처럼, 메아리 소리로 자신이 혼자 남았다는 걸 깨닫지.
아아아아!
앙리!
비명을 지르듯 친구의 이름을 부른 순간, 규빅은 완전히 산산조각 부서졌어.
허겁지겁 내려오다 미끄러져 바닥에 쿵 하고 부딪히고.
철석같이 앙리라고 생각하는 존재를 잡고서, 앙리 여기 왜 있어?
내가 살려줄게, 내가 살릴거야 내가 살릴 수 있어..
억지로 기어 올라가다 넘어져 은괴와 규빅의 몸이 부딪히네.
오늘 은괴는 정말 제대로 된 복수를 했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너무 잘 했어...
무너지는 규빅을 보며 같이 마음이 무너진 순간,
이 극이 완벽한 결말에 다달았구나 느꼈거든.
그렇게 규빅과 보는 관객들 모두를 샤오롱바오로 만들고.. 그는 갓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