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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수피아여중·고 총동창회는 지난 14일 광주 남구 양림동 수피아여중·고에서 홈커밍데이 행사를 열고 김덕화 할머니(99·사진)에게 명예졸업장과 기념패를 수여했다고 15일 밝혔다.
김 할머니는 일제가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하던 시절 수피아 여학교에 다녔다. 김 할머니는 일본 왕을 우상화하기 위한 일종의 국민의식인 신사참배를 거부했고 학교 역시 자진 폐교하는 바람에 졸업을 할 수 없었다.
1945년 일본 왕의 항복 선언으로 조국은 광복이 됐지만, 직장생활과 결혼 등으로 복학을 하지 못한 김 할머니는 이후 수피아 여학교와 더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피아노 치는 99세 할머니’로 소개되면서 수피아여고 동창회와 연이 닿았다. 학교와 동창회 측은 김 할머니의 사연을 전해 듣고 명예 졸업장을 준비해 할머니를 초청했다.
명예 졸업장에는 85년 전 졸업장을 복원한 특별한 선물도 함께 들어있었다.
김 할머니는 “항상 그리웠던 수피아, 못 잊은 수피아. 사랑하는 후배들 만날 수 있어 너무 기쁘다”며 “저는 졸업장을 받을 수도 없는 사람인데 이렇게 졸업장까지 전해주셔서 꿈만 같다”고 말했다.
http://naver.me/FCLtB2j4
https://img.theqoo.net/hKSBF
최근 한 TV프로그램에 ‘피아노 치는 99세 할머니’로 소개되면서 김 할머니의 사연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흔의 나이에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워 출중한 연주 실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가르치는 교사가 꿈이었다는 할머니의 기구한 삶도 주목받았다. 40대 이른 나이에 남편을 잃고 7남매를 힘겹게 길러내며 살아온 것이다. 더불어 할머니가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던 배경도 눈길을 끌었다.
폐교된 뒤 다른 지역에서 삶을 이어온 김 할머니는 학교를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100세가 가까워진 지금까지 학교가 생각날 때면 교가를 부르거나 피아노로 연주할 정도였다.
교가를 아직 기억하냐는 질문에 즉석에서 교가 1절을 또렷한 목소리로 불러내기도 했다.
함께 눈물을 흘리던 김 할머니의 자녀는 "항상 수피아여고 말씀하시면서 우시고 그랬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한을 풀어드린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광주 수피아여중·고 총동창회는 지난 14일 광주 남구 양림동 수피아여중·고에서 홈커밍데이 행사를 열고 김덕화 할머니(99·사진)에게 명예졸업장과 기념패를 수여했다고 15일 밝혔다.
김 할머니는 일제가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하던 시절 수피아 여학교에 다녔다. 김 할머니는 일본 왕을 우상화하기 위한 일종의 국민의식인 신사참배를 거부했고 학교 역시 자진 폐교하는 바람에 졸업을 할 수 없었다.
1945년 일본 왕의 항복 선언으로 조국은 광복이 됐지만, 직장생활과 결혼 등으로 복학을 하지 못한 김 할머니는 이후 수피아 여학교와 더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피아노 치는 99세 할머니’로 소개되면서 수피아여고 동창회와 연이 닿았다. 학교와 동창회 측은 김 할머니의 사연을 전해 듣고 명예 졸업장을 준비해 할머니를 초청했다.
명예 졸업장에는 85년 전 졸업장을 복원한 특별한 선물도 함께 들어있었다.
김 할머니는 “항상 그리웠던 수피아, 못 잊은 수피아. 사랑하는 후배들 만날 수 있어 너무 기쁘다”며 “저는 졸업장을 받을 수도 없는 사람인데 이렇게 졸업장까지 전해주셔서 꿈만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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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TV프로그램에 ‘피아노 치는 99세 할머니’로 소개되면서 김 할머니의 사연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흔의 나이에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워 출중한 연주 실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가르치는 교사가 꿈이었다는 할머니의 기구한 삶도 주목받았다. 40대 이른 나이에 남편을 잃고 7남매를 힘겹게 길러내며 살아온 것이다. 더불어 할머니가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던 배경도 눈길을 끌었다.
폐교된 뒤 다른 지역에서 삶을 이어온 김 할머니는 학교를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100세가 가까워진 지금까지 학교가 생각날 때면 교가를 부르거나 피아노로 연주할 정도였다.
교가를 아직 기억하냐는 질문에 즉석에서 교가 1절을 또렷한 목소리로 불러내기도 했다.
함께 눈물을 흘리던 김 할머니의 자녀는 "항상 수피아여고 말씀하시면서 우시고 그랬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한을 풀어드린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