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는 미국 여성작가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펄벅과 관련한 일화들을 소개해보려고 하는데,
이 펄벅은 '동양적인 정서를 가진 서양인'으로 불리우는 분으로,
선교사였던 부모를 따라 태어난지 몇 개월만에 중국으로 떠나게 되어 그곳에서 10년을 살았고,
이후 미국으로 가서 랜돌프 매콘 여자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다시 중국으로 가서 17년을 살았어
* 그녀의 문학작품은 중국적인 영향이 진할 수 밖에 없었는데, 어린시절 그녀는 서양의 책을 보며 작가의 꿈을 키운 것이 아닌 삼국지와 수호지 같은 중국의 고전문학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고 해
그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품 또한 중국을 배경으로 하였던 <대지>라는 장편소설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나중에는 대지주가 되는 왕용의 가족 이야기를 그렸어
그러나 중국에서 마오쩌둥의 공산정권의 들어선 이후 그녀의 작품은 금서가 되었고,
작가 또한 중국으로의 입국이 금지 되었는데
적성국가의 작가였던 펄벅의 있는 그대로 묘사했던 중국 하층민의 삶을 중국 공산정권이 제국주의자의 시각에서 중국을 왜곡했다고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왜곡' 하였기에 벌어진 일 이었지...
공산정권이 수립된 이후 다시는 중국땅을 밟을 수 없었던 반면,
펄벅이 한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로 기록한 것은 다음과 같았어
차장 밖으로 젊은 농부가 볏단을 실은 소달구지를 몰고 가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농부의 어깨에도 적지 않은 볏단이 얹혀 있었기에 한국인 통역 겸 수행원에게 그 까닭을 물었어
그리고 그 대답은 다음과 같았지
" 저런 광경은 우리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소가 너무 힘들까봐 거들어주는 것이죠"
' 저 모습 하나만으로도 나는 한국에서 보고 싶은 것을 충분히 다 보았다' 라고 기록하였어
* 펄벅은 이렇게 한국인들의 작은 마음 씀씀이에 크게 감동을 받고는 하였는데, 비슷한 맥락에서 까치들이 먹을 감을 놓고 따는(흔히 까치밥으로 불리던) 한국인들의 모습 또한 인상깊게 기록해 놓았어
한국인 혼혈아를 소재로 <새해>라는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고
6.25 전쟁 후 한국의 수난사를 그린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에서는 그 서문에
'한국은 고상한 시민들이 살고있는 보석과 같은 나라다' 라고 쓰기도 하였어
이러한 작품에서의 묘사 뿐만 아니라 펄벅은 행동으로도 친한적인 행보를 보였는데,
그는 일제강점기때부터 조선의 독립을 지지하여
미국 망명시절 이승만이 쓴 <일본내막기>의 서평과 추천서를 남겼으며,
유일한 박사 등 다른 독립운동가들과도 가까웠고,
이 유일한 박사의 주선으로 전쟁 혼혈고아 2000명을 위한 소사희망원을 세우고,
1964년 한국펄벅재단 이라는 사회복지재단을 세우기도 하였어
* 이 펄벅의 첫째딸은 자폐증을 앓고 있었는데 펄벅은 이 때문에 더욱 전쟁고아와 같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돕는데 열심일 수 밖에 없었다고 술회하기도 하였어
* 펄벅은 이 자폐아 딸을 소재로 <자라지 않는 아이>라는 작품을 남기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