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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천문'을 보고 나니, 별 헤는 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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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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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을 보고 나니, 별 헤는 밤이 그립다

기사입력2020.01.20. 오후 1:56


[김유경의 영화만평] 두 남자 이야기, <천문: 하늘에 묻는다>

[오마이뉴스 김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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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그러나 선뜻 일어서지 못한다. 가슴이 먹먹해서다. 결미에서 마주한 세종(한석규 분)과 장영실(최민식 분)의 눈빛 우애 때문이다. 저마다 삶의 무게를 감당할 것임을 나누는 말 아닌 말의 표정이 떠나질 않는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과업을 위해 두 남자가 택한 홀로 행진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나도 외롭다.   
  
<천문>은 사료에 없어 궁금한 바를 상상력으로 메운 '팩션(팩트+픽션) 사극'이다. 영화가 활용한 팩트는 크게 보아 둘이다. 하나는 혁혁한 공을 세워 면천하여 대호군이 된 장영실이 '안여 사건' 이후 역사에서 사라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당시 세종이 직면한 위기, 즉 계급의식과 사대주의에 절은 신하들이 명나라를 앞세워 장영실의 발명과 한글창제에 대해 결사반대를 드러낸 거다.   
  
영화적 상상력은 두 역사적 사실을 감칠맛 나게 버무려 두 남자 이야기로 변주한다. 허진호 감독은 충정을 내세운 사대부들의 민낯을 들러리 삼아 세종이 감당했을 고뇌와 정쟁을 그럴 듯하게 펼쳐 보인다. 대배우 최민식과 한석규의 미세한 안면근육 변화 추이를 밝히는 풀 샷이나 클로즈업 장면들에 관객이 몰입하게 하면서. 조선과 백성을 위해 파격적 통치를 무릅쓴 세종의 리더십이 그리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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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세종과 장영실이 나누는 대사 또한 귀에 박힌다. 예를 들면, "자네가 만들지 않았으면 그게 내 꿈인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와 "그 힘든 길을 혼자 가시려 하시옵니까?"처럼 상대가 뭘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지지하는 공감의 워딩이어서다. 그렇기에 장영실을 볼모로 잡아 세종의 한글창제를 막으려는 영의정(신구 분)의 거래를 보며 현실 사건인양 난 분노한다.
    
걸핏하면 국민을 들먹이며 사실을 왜곡하는 지금 여기의 정치인들이 사사건건 명나라를 앞세우는 정남손(김태우 분) 류의 사대부들과 오버랩 된다. 백성을 글 모르는 무지몽매 상태에 두어 먹물됨을 독차지해 권세를 대물림하려는 사대부들의 뻔뻔한 욕망은, 지난 해 급부상한 토착 왜구들을 연상시킨다. 국어교과서에 등장했던 청백리 최만리의 상소 역시 세종의 위민과는 거리가 멀다.
  
<천문>은 세종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려는 사대부들의 충정이 이기적 항명임을 곳곳에서 암시한다. 그 클라이맥스가 조말생(허준호 분)을 호명해 장영실의 퇴장에 값을 쳐준 안여 사건 연출이다. 사건의 전후 내막을 알아채고서도 세종을 위해 자신을 사지로 내모는 장영실의 꿋꿋함을 부각시킨 상상력에 난 박수친다. 소신대로 밀고 나가다 날벼락 같은 송사에 얽힌 현실의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천출 과학자 장영실은 세종에게 절실한 "조선의 시간"과 "조선의 절기"를 안긴다. 허진호 감독은 신분 격차를 뛰어넘은 둘의 돈독함을 창호에 별 무리를 새기는 명장면으로 빚어낸다. 그 내밀함은 '안여 사건'을 몸소 국문하던 세종이 장영실과 행하는 눈빛 소통으로 열매 맺는다. 두 남자의 관계에 앵글을 맞춘 <천문>의 상상력이 감동적으로 완성되는 지점이다.  
   
<천문>의 부제, '하늘에 묻는다'는 천체의 운행과 변화에서 삶을 어떻게 꾸릴까를 찾은 천문의기로 구현된다. 쉽게 명나라 것을 답습하지 않고 조선만의 것을 구한 자립정신의 결과다. 영화 문법으로 보면, 시작은 세종의 물음, "저 많은 별들 중에 내 별은 어디에 있는가?"에 깃든 주체적 자기 응시다. 그러니까 별빛이 별의 자성인 거다. 세종별인 북극성 바로 옆별이 장영실별이 되는 거다.     
 
문득 별 헤는 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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걍 브로맨스 영화라고 딱 단정 지어질 영화가아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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