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00년 기획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문체부, 공공언어 바꾸기 나서…
표지판·현수막·공문서에 나오는 어려운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경기 고양시 탄현역 앞에 영문 그대로 표시된 ‘KISS&RIDE’ (왼쪽). 시민단체 한글문화연대가 건의해 ‘환승 정차 구역’(오른쪽)으로 바꿨다. /전국국어문화원연합회
'Kiss & Ride'.
지난해 경기 용인시 동천역의 표지판 사진을 두고 인터넷 게시판이 시끄러웠다. 표지판에는 주차를 뜻하는 'P' 아래에 'Kiss & Ride Max. 7 min'라고 적혀 있었다. 키스 앤드 라이드(Kiss and Ride)는 대중교통으로 갈아탈 사람을 내려주거나, 대중교통에서 내린 사람을 태우러 올 때 잠시 차를 세워둘 수 있는 구역을 뜻한다. 헤어질 때 뽀뽀를 하며 인사하는 영어권 문화에서 비롯된 말. 시민들이 신기해하며 표지판을 찍어 올리자 '이게 무슨 말인가' '외국인 줄 알았다' '키스를 7분간 하라는 뜻인가' 등의 댓글이 달렸다.
동천역뿐만이 아니라 광교중앙역·탄현역·초월역·강매역·여주역 등 철도역과 지하철역 곳곳에서 '키스 앤드 라이드' 표지판이 출몰했다. 심지어 세종대왕릉역 앞에도 키스 앤드 라이드의 줄임말인 'K&R'이 쓰였다. 시민단체 한글문화연대는 팻말 시위와 적극적인 건의를 통해 전국 곳곳의 '키스 앤드 라이드'를 '환승 정차 구역' '잠시 주·정차구역'으로 바꿨다.
표지판이나 현수막, 공문서처럼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쓰는 언어를 공공 언어라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공 언어를 알아듣기 쉽게 바꾸는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중앙부처 보도 자료를 조사한 결과, 'ODA' '태스크포스' '차기(次期)'처럼 어려운 외래어나 한자어 사용이 지적 사항의 95%를 차지했다.
공공기관이 새로 만드는 정책이나 사업에도 알쏭달쏭한 말들이 자주 쓰인다. 기술 창업을 지원하는 기재부 사업은 '팁스(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 빅데이터와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하는 과기정통부 사업은 '데이터 플래그십'이란다.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을 공모하는 국토부의 '스마트 챌린지 사업'은 무려 '시티 챌린지' '타운 챌린지' '솔루션 챌린지'로 나뉜다.
국립국어원은 공공 언어 홈페이지(publang.korean.go.kr)를 통해 다듬고 싶은 말들을 제보받는다. 국립국어원이 4~5개를 추리면 문인·언론인·학자 등이 모인 말다듬기위원회에서 순화어를 결정한다. 지금까지 다듬은 말로는 포장 판매(테이크아웃), 전자 금융 사기(피싱), 명품 조연(신 스틸러) 등이 있다. 지난해부터는 어려운 신어(新語)가 퍼지기 전에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새말모임'도 만들었다. 이번달에는 코드 인사, 테마주, 펫팸족을 대체하기 위한 쉬운 우리말로 편향 인사, 화제주, 반려동물 돌봄족을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