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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떡볶이집 사장님에게, "최고 맛있다"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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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8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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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미화원 여사님에 "깨끗해서 좋아요", 버스기사님에 "운전 잘하시네요" …무대 뒤의 삶에 '피드백' 줘보니]

아내와 자주 가는 동네 즉석 떡볶이집. 평소엔 많이 먹었어도, 계산만 하고 나가고는 했다. 그래서 한 번 피드백을 주고 싶었다. 이 집 떡볶이의 가치를 얘기해주고 싶어서./사진=남형도 기자


단골 떡볶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오른손엔 비타민 음료 하나를 쥐고서. 시간은 오전 11시. 점심 장사 시작 전인데도, 달큰한 떡볶이 향이 코를 찔렀다. 익숙하고 좋아하는 냄새였다.


떡볶이 가게 사장님에게 다가갔다. 두근거렸다. 이 분이 누구냐 하면, 나이는 50대쯤 됐을까. 늘 빨간색 위생모를 단정히 쓰고, 카리스마 넘치는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배가 고파 조바심이 나서 냄비뚜껑을 자꾸 열려고 하면 혼이 났다. 어느샌가 다가와 "끓으면 드세요"라고 외치곤 했었다. 투박한 정(情)이었고, 만드는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물씬 느껴졌다.

그리고는 그에게 대뜸 "이거 드세요"하고 비타민 음료를 건넸다. 그러자 그가 날 바라보는 눈빛이 이랬다. '이 이상한 XX는 대체 뭐지?' 그래서 이렇게 설명을 했다.

"제가 아내 덕분에 여길 처음 알았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왔다고 하더라고요. 떡볶이 좋아해서 숱한 데를 다녔는데, 여기가 최고 맛있어요. 적당히 맵고, 해물 때문에 국물은 시원하고요. 맨날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이에요. 그래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 왔어요. 오래 장사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계산하고 나가던 손님이, 처음 건넨 얘기였다. 주방에서 가만히 듣던 사장님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아이고, 너무 고맙다"며 주름이 깊이 패도록 환하게 웃었다. 몇 년을 다녔지만, 그리 밝은 웃음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적당히 얼큰하고 개운한 맛이 일품인 동네 즉석 떡볶이. 소주 한 잔과 함께하면 제격이다. 아, 배고파진다.

'피드백(feedback)'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그가 하는 일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어서.

그건 내게도 큰 힘이었다. 기사를 본 독자들 반응 말이다.

영 기운이 안 나 멍하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상사가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다니는 요가 선생님이 있는데요. 기사 정말 잘 봤다고 전해 달라고 했어요. 마음이 똑같이 느껴졌다고요. 그러니 요가 배우러 오라고요." 생각지 못한 말 한마디에, 허리를 다시 꼿꼿이 세웠다. 그날 하루, 그 기운 덕분에 잘 보냈다.

잘 봤다고, 마음을 울렸다고, 생각하지 못한 걸 생각할 수 있었다고. 오래도록 기사를 써줬으면 싶다고, 그러니 건강 잘 챙기라는 안부도 있었다. 쓰디쓴 비판은 더 생각하게 하는 큰 힘이 됐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화려하기보단 사소하더라도, 대단한 성과를 내진 못했더라도, 그게 꽤 주목받는 일이 아닐지라도. 매일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이들에게, '당신은 꽤 괜찮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막연히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피드백 프로젝트'를 해보기로 맘먹었다. 원칙은 두 가지로 정했다.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지난 16일부터 26일까지 약 2주 동안 진행했다.

동네 편의점 사장님에게, "여기가 있어서 참 편해요"



동네 편의점에서 비타민 음료를 샀다. 조명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피드백을 주고,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어서./사진=남형도 기자 왼손

동네 가까운 이들에게 먼저 말해보기로 했다. 그냥 얘기하면 뻘쭘하니, 비타민 음료를 사서 나눠주며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동네 편의점에 갔다. 사장님이 있었다. 오가며 자주 들르는 곳이지만, 그와는 간단히 인사만 했었다.

비타민 음료 9개를 꺼내,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사장님이 동분서주하기에 "무슨 일 있냐" 물었더니, "CCTV를 보는 모니터가 꺼졌다"고 했다. 다가가 살펴보니 모니터 뒤쪽 연결선이 빠져 있었다. 꽉 꽂으니 화면이 나왔다. 다음에 또 이럴 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도 알려줬다. 사장님은 무척 고마워했다. "역시 젊은 청년이라 이런 걸 잘 안다(이런 칭찬 좋음)"며

때마침 나도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동네 가까운데 편의점이 생겨 참 편해요. 여름엔 지나가다 아이스크림도 사고, 급할 때 건전지도 사고, 동네 고양이들 간식 캔도 사고, 운동 끝나고 야식도 먹고요. 잘 운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은 밝게 웃으며 "감사하다"고 한 뒤 "얼굴을 이제야 처음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이 맞았다. 자주 와도 늘 스쳐 지나가기만 했었으니.

동네 미화원 여사님을 처음 만났다



숨은 공간 같은 이곳에서, 동네 미화원 여사님이 청소 도구를 갖고 올라온단다. 밑에서 걸레를 빨고 계시기에, 위에서 기다렸다./사진=남형도 기자

만나고 싶은 이가 있어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동네를 깨끗하게 청소해주시는, 미화원 여사님이었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돌아오니 만날 기회가 없었다. 매일 오가는 공간에서 그의 존재를 느낄 뿐이었다. 지저분하던 엘리베이터가 깨끗하게 청소돼 있고, 계단에 내려앉아 있던 먼지도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매일 누군가가 정성을 쏟은 덕분이었다.

돌아다니다 그를 만났다. 아파트 1층엔 작은 문이 하나 있었는데, 지하로 연결돼 있었다. 거기서 미화원 여사님이 나왔다. 걸레를 물로 씻을 때 사용하는 공간이란다.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힘들 것 같았다.

여사님에게 비타민 음료를 건네자, 그는 "감사하다"고 웃으며 벌컥벌컥 마셨다. 1층부터 5층까지, 계단을 닦았단다. 미끄럼 방지 부분이 너무 많아 애를 먹었단다. 그래서 목이 많이 탄 모양이었다.

마시면서 잠시 얘길 나눴다. 그는 관리사무소 직원이 "아줌마!"라고 언성을 높였다는 얘기부터 했다. 출근 체크를 할 때, 기계가 잘 안 돼 여러 번 하고 있으니 그리 부르며 핀잔을 줬단다. 자기가 청소한다고 무시하는 것 같았다고, 그날 밤까지 그게 생각나서 잠을 설쳤다고.

그에게도 늘 하고 싶었던 얘길 했다. 오가며 동네가 늘 깨끗해서 참 좋다고. 여사님 없었으면 얼마나 지저분했겠느냐고. 청소가 보통 일이 아니고, 꼼꼼히 잘하는 게 쉽지 않다고. 그래서 늘 감사하다고 말이다.

여사님은 비로소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와 잠시 더 얘길 나눴다. 그는 헤어질 때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을 걸어줘서 참 감사하다"고.


(중략)


그리고, 평범한 광화문 직장인에게



광화문 직장인들, 주목받지 않아도, 세상을 움직이는 주인공들이다./사진=뉴스1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한 중년 직장인을 봤다. 50대 초반쯤 됐을까. 안경을 쓰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그는 의자에 앉아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 비타민 음료를 건넸다. 그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이거 왜 주느냐"고 반문했다. 넉살 좋게 "오늘 하루 고생한 직장인들에게 주는 것"이라 했다. 그랬더니 "그게 뭐냐"면서도 "이런 건 처음 받아본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잠시 얘길 나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란다. 직급은 부장이고, 정신없이 출근과 퇴근을 하고, 돈을 벌고, 애를 키우다 보니 벌써 다닌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고. "저도 10년이 다 돼 가는데, 그 마음 이해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소주 한 잔을 하며 나눌법한 얘기였다.

"뭐하며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그에게, "그냥 그 하루하루를 산 게 대단한 것"이라고 했다. 일이 맘처럼 안 풀리기도 하고, 승진에 가슴 졸이고, 상사 쓴소리에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지 않았냐고. 그걸 그 오랜 시간 견딘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거라고 했다.

구두는 낡았고, 시계 줄은 허름하고, 정장은 커졌으면서 배는 여전히 나왔을지라도, 그 모습이 멋진 거라고. 차마 쑥스러워 그런 얘긴 못했지만, 속으론 그리 응원했다.

(중략)

비싼 조명도, 작은 전구 하나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집안에 놓인 조명 하나가 불이 나갔다. 이사할 때 큰맘 먹고 샀던, 값비싼 조명이었다. 인테리어용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나무 식탁 위에 고이 설치해뒀다.

부리나케 전구를 사와서 조명에 끼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100만원짜리 조명도, 1000원짜리 전구 하나가 없으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 공간을 환히 빛내는 건 전구라고.

혹여나 1000원짜리 전구처럼 느껴져 힘들더라도, 하찮게 여기지 않기를. 나도 중요한 존재니까. 괜찮은 삶이니까.




기사 전체를 퍼오는 건 안 된다고 해서 수정했어!

혹시 나중에 보는 덬들도 시간이 된다면 전문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아 ㅎㅎ

다들 좋은 하루 되길 바랄게! 따뜻한 댓글 고마워!


기사원문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9092609585717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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