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망겜' 일랜시아 못 떠나는 게이머들의 사연은[오지현의 하드캐리]
1,445 9
2020.12.05 11:23
1,445 9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예고편 갈무리
[서울경제] “일랜시아 왜 하세요?



‘망겜(망한 게임)’을 소재로 삼은 한 다큐멘터리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화제입니다. 보통 망겜이 아닙니다. 넥슨이 무려 지난 1999년 내놓은 온라인 RPG(역할수행) 게임, ‘일랜시아’ 이야기입니다. 출시 21년차, 운영진마저 버린 옛 게임을 아직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랜시아가 처음부터 망겜이었던 건 아닙니다. 당시 일랜시아는 ‘바람의 나라’, ‘어둠의 전설’으로 메가히트를 쳤던 넥슨이 야심차게 내놓은 세 번째 출시 게임이었습니다. RPG 게임 메인인 사냥 외에도 요리, 낚시, 채집 등을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를 갖춰 센세이셔널하다는 평을 받았죠.

자유도도 최신 게임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높습니다. 단순히 직업군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무기 어빌리티와 아이템을 더해 어떤 직업이든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전사 계열 직업을 하다가 낚시를 하고 싶으면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미용사는 다른 유저의 헤어스타일을 바꿔줄 수 있고, 다양한 레시피로 요리도 할 수 있죠. 높은 자유도로 주목을 받은 ‘검은사막’이 20년 전 도트 그래픽 버전으로 나왔다면 일랜시아와 같았을 겁니다.


이런 일랜시아가 망겜의 길을 걸은 것은 결국 운영의 실패입니다. RPG 게임은 현실 세상을 옮겨놓은 것과 같아서 장기적으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사회, 정치, 무엇보다 경제 시스템의 정착이 중요합니다. 물가가 너무 낮거나 높아도, 유·무료 아이템의 ‘밸런스 붕괴’가 일어나도 게임 내 경제는 망가져 버리죠. 게임 내에서 매크로와 불법 아이템 복사 프로그램이 판을 치고, 운영진이 이를 제대로 통제하는 데 실패하면서 일랜시아 속 사회는 급격하게 쇠락했습니다.

넥슨도 다른 게임에 공력을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영화가 나오기 전 마지막 업데이트가 2014년이니 벌써 6년이 훌쩍 넘었네요. 지금의 일랜시아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입니다. 많은 유저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남은 유저들은 매크로와 아이템 복사, 각종 해킹 프로그램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면서 맵을 누비고 있습니다.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예고편 갈무리


영화는 이들에게 ‘왜 아직까지 일랜시아를 하는지’ 묻는 데서 출발합니다. “요즘 나오는 게임에 비해 눈이 덜 아프다” “노트북에서 돌아가는 게임이 일랜시아 밖에 없다”는 웃지 못할 답변들이 돌아옵니다. 사실 스스로도 왜 일랜시아를 떠나지 못하는지 뾰족한 이유가 없는 셈입니다. “강점이 없다” “쓰레기 같은 게임이다” 같은 적나라한 평가도 있었습니다. 유저들은 대체 왜, 욕을 하면서도 망겜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요.

자신 역시 16년차 일랜시아 ‘고인물’인 박윤진 감독(닉네임 ‘내언니전지현’)은 직접 길드원들을 만나 일랜시아에 얽힌 추억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전국 팔도 곳곳에 살고 있는 박 감독의 길드원들은 나이, 성별, 직업은 모두 다르지만 게임으로 쉽게 친구가 됐습니다. 현실이 풀리지 않을 때, 남들 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일 때, 일과 인생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러올 때··· 그들은 ‘마음대로 되는 게 없을 때’ 일랜시아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매크로만 돌리면 되는 일랜시아가 인생보다 더 공평하게 느껴졌던 겁니다.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예고편 갈무리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이 사람들은 왜 망겜을 할까”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 게임을 할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일랜시아를 개발했던 넥슨 개발자 ‘아레수’는 일랜시아를 만들었을 당시 게임을 통해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보다는,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이것저것 실현해볼 수 있는 공간을 꿈꿨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어둠의 전설’에서 새벽마다 등을 맞대고 사냥하던 게임 친구와의 의리를 지키고 싶어 터져버린 모뎀을 사러 용산상가로 달려갔던 추억을 꺼내놨습니다.

박윤진(오른쪽) 감독과 김소미 씨네21 기자가 지난 4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 ‘KU씨네마테크’에서 영화 상영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고 있다. /오지현기자


‘향수’와 ‘사람’. 길드원 ‘매송이’는 결국 두 단어 안에 답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게임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공유하는 추억이 게이머들의 발을 일랜시아 속에 잡아둔 겁니다. 마치 ‘오락실 게임’으로 불린 액션 게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당시를 살아간 세대 공동의 기억과 집단적 경험으로 승화된 것처럼 말이죠.

“대체 그 게임을 왜 아직까지 하냐”고 쉽게 비웃지 맙시다. 게임은 때로 사람들에게 현실 속 인생이 줄 수 없는 것들을 주기도 하니까요. 다시 살아갈 힘을 주기도, 많은 차이점을 뛰어넘은 친구를 주기도, 숨 돌릴 틈을 주기도 하죠. 언젠가는 다른 모든 게임처럼, 아련한 추억 속 망겜이 되더라도 말입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
목록 스크랩 (0)
댓글 9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구달 X 더쿠💛] 순수비타민 함유량 27% 구달 청귤 비타C 27 잡티케어 앰플 체험 이벤트 255 00:06 8,182
공지 공지접기 기능 개선안내 [📢4월 1일 부로 공지 접힘 기능의 공지 읽음 여부 저장방식이 변경되어서 새로 읽어줘야 접힙니다.📢] 23.11.01 3,587,136
공지 비밀번호 초기화 관련 안내 23.06.25 4,341,907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0.04.29 20,742,122
공지 성별관련 공지 (언급금지단어 필수!! 확인) 16.05.21 21,858,237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45 21.08.23 3,575,309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18 20.09.29 2,428,303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358 20.05.17 3,140,748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54 20.04.30 3,707,231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스퀘어 저격판 사용 무통보 차단 주의) 1236 18.08.31 8,089,129
모든 공지 확인하기()
2406869 이슈 “오디션 나온 대표님 손녀, 투표 인증해야 퇴근”...갑질 폭로 또 나왔다 2 12:56 371
2406868 이슈 장문의 인스스 올린 (여자)아이들 슈화 6 12:54 1,419
2406867 이슈 트리플에스 Girls Never Die 3일차 초동.jpg 3 12:53 257
2406866 유머 연예인들이 본인들의 밈짤을 봤을때 나뉜다는 3가지 타입 1 12:53 347
2406865 이슈 3년만에 올라온 스춤 아오먼 니키 14시간만에 100만뷰 찍음 12:53 60
2406864 유머 주인 톤으로 이야기 하니까 말 듣는 비투비 창섭 반려견 4 12:50 478
2406863 이슈 이정도면 누가 골대의 저주라도 내린거 아니냐는 파리생제르맹 챔스4강 경기 5 12:48 298
2406862 유머 한전 감전남 찾으러 간 펭수 52 12:47 1,925
2406861 이슈 다이어트만 관련되면 멍청해지는거 왜그런거야 32 12:45 2,197
2406860 기사/뉴스 조건만남 미끼로 모텔 유인…흉기 강도 10대 징역형 4 12:43 213
2406859 유머 아이돌이 공연 때 현타 오는 순간 8 12:42 2,239
2406858 유머 서울 빵 패스티벌에서 3만원이상 구매하신 고객들에게 추첨으로 성심당 과일시루 드려요!!! 5 12:39 2,702
2406857 이슈 미국 복면가왕시즌11 유력우승자 금붕어=아마도 바네사 허진스? 21 12:38 1,813
2406856 이슈 지코가 비투비에게 주기로 했지만 블락비가 부르게 된 곡 5 12:37 1,375
2406855 유머 고양이의 밤의 모험 1 12:37 354
2406854 이슈 수지, 단정한 재킷 패션이 '1억'…청초한 재킷+데님 패션 '눈길' 9 12:35 1,823
2406853 유머 한국 노동권이 중국 수준이라고 평가 받는 이유 47 12:28 2,972
2406852 유머 티켓팅하다 킹 받는 상황.x 9 12:27 2,019
2406851 이슈 둘째 딸이 친자 불일치로 나왔던 보배드림 아재 근황 181 12:25 21,853
2406850 이슈 베네피트 𝙂𝙪𝙚𝙨𝙨 𝙒𝙝𝙤? 새로운 앰버서더는 누구일까요? 🌹 46 12:25 3,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