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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외모·국적 상관없이 사람을 사람으로 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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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5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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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의 여기
시리아인 유학생 1호 압둘와합

다마스쿠스서 한국 친구들 만나
프랑스 유학 대신 한국행 선택
시리아 난민돕기 활동 앞장

“다 닦인 길보다 새 루트 만들어
한-시리아 가교 역할 하고파”

단지 피부색과 얼굴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미국 땅에서 동양인들이 혐오 범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껏해야 몇백년 먼저 도착해 그것도 남의 땅을 빼앗으며 자리잡은 사람들의 후손이 자신들보다 조금 늦게 온 동양인들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면서 묻지마 살인을 하고, 거리나 지하철에서 무작정 때리고 침을 뱉는다. 동양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유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중국인이 퍼뜨렸으며, 중국인은 황인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한국계가 동양인 혐오 범죄의 피해자가 됐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미국 사회의 수준에 연신 혀를 찬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박대와 난민 배척, 이슬람 사원 건축 반대 등 우리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돌아보면 부끄러움은 이내 나의 것, 우리의 것이 되고 만다.

시리아 출신의 유학생 압둘와합(37)을 만난 것은 그의 친구인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 쓴 책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김혜진 지음)를 읽고서였다. 프랑스 대신에 한국을 택한 시리아인 유학생 1호와의 따뜻한 우정과 연대의 이야기가 마음을 적셨기 때문이다. 처음 그를 만났지만,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훨씬 강한 청년이 주는 건강한 에너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정의롭고 용감한 사람들이 발산하는 향기 또한 강했다. 하지만 그에게 투사했던 우리 안의 편견과 차별을 확인하는 아픈 시간이기도 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했다.

학교를 지을 생각은 어떻게 했어요?

“2019년 초에 식품을 사서 전달하려고 터키를 통해 난민촌에 들어갔는데 난민분들이 음식보다 학교가 더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아, 그래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지, 미래를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학교 만들기에 착수했어요. 그때 필요한 자금 1억원 가운데 7천만원 정도밖에 없었지만, 늦추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해봅시다 하고 계약하고는 한국에 돌아와서 추가 모금에 들어갔어요. 얘기를 들은 ‘러쉬 코리아’가 후원해줘서 완공을 마쳤어요.” 1천명이 공부하고 있는 이 학교는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몇달 휴교했다가 이번달에 다시 운영을 시작했다.

―두번째 학교도 만들려고 한다고요?

“네, 모금활동을 하고 있는데 코로나 상황이 겹쳐서 후원금이 많이 줄었어요. 그래도 식품 전달보다는 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국제단체들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시리아 난민촌에는 지금 초등학교만도 170~180개가 필요하다고 해요. 저희 헬프시리아를 통하지 않더라도 난민 학교를 세워달라고 한국의 단체나 기관 등 여기저기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관심을 갖고 있는 데가 있어요?

“있긴 한데 실제로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도 하고 해야 하는데 시리아가 한국 국민들에게 여행금지 지역이어서 코이카나 한국의 다른 해외사업팀들이 시리아에 들어갈 수가 없거든요.”

와합은 지난해 10월 귀화를 통해 한국인이 됐다. 지난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날에는 투표소를 찾아 처음으로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했다.

―왜 귀화를 선택하셨어요?

“어쩔 수 없었어요. 아사드 정권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시리아 정부가 저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바람에 여권 등 행정서류를 받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2017년 여권이 만료돼 락까에 사는 삼촌 두명이 저 대신 다마스쿠스에 갔다가 붙잡혀 몇달 동안 감옥에 갇히기도 했어요. 새 여권마저 만료돼 제가 시리아에 가야 하는데 거기 가면 곧바로 체포돼 고문받고 죽임을 당할 수 있거든요. 귀화 신청하고 시간이 좀 걸렸지만, 저를 안쓰럽게 봤는지 귀화가 받아들여졌어요.”

―한국에 시리아인 커뮤니티가 있어요?

“현재 1500명 정도가 있는데 커뮤니티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그들 대부분이 시리아 내전 이후에 들어와서 난민 신청을 했는데 5명만 인정이 됐고, 나머지는 인도적인 체류 허가만 받은 상태에 있어요. 정치적인 입장이 서로 달라서 안 만나기도 하지만, 같은 생각의 사람들도 한국 사회의 눈치를 봐서 서로 잘 안 만납니다. 시리아 사람 몇명이 커피숍에서 아랍어로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경계하거나 안 좋게 보거든요.”

―평소 이슬람이나 아랍에 대한 편견을 많이 느끼나요?

“네, 2018년 예멘 난민들이 들어온 이후에는 더 심해졌어요. 그 전에는 ‘난민들 좀 나가라, 난민을 도와주지 마라, 난민 때문에 우리나라가 힘들다’는 식의 난민에 대한 반감이었는데 예멘 난민이 온 이후에는 ‘너 같은 무슬림이 우리나라에 오면 안 된다. 무슬림이 우리나라에 살게 되면 교회들이 다 무슬림 사원으로 바뀐다. 그러면 우리 여성들도 다 히잡 쓰고 다니게 된다’는 식의 이슬람과 아랍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심해졌어요. 그런 것을 부추기는 가짜뉴스가 그때 부쩍 늘어난 탓이 커요.”

와합은 한번은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한테 ‘너 아이에스 대원이 아니냐’는 무례한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그때는 정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간신히 제 마음을 컨트롤하면서 ‘아닙니다. 모든 무슬림들이 아이에스인 것은 아닙니다’라고 대답하고 말았어요.”

한국 온 걸 후회한 적은 없어요?

“초기에는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솔직히. 시리아에서 만났던 한국 친구들 때문에 한국 사람들에 대해 좋은 이미지만 갖고 있다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차별적인 시선이나 발언, 행동을 직접 겪을 때는 충격이 컸어요. 또 문화가 다르고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고생을 많이 했고, 언어도 아주 힘들었고요. 다시 시리아로 돌아가서 프랑스에 갈까도 고민했어요. 근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거예요. 여기서 어렵다고 포기한다면 프랑스 가서도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을 텐데 또 그만둘 것 아니냐, 그거야말로 실패라는 생각 말이죠. 그래서 돌아갈 비행기표부터 취소해서 플랜B를 아예 없애버렸어요.”

―단호한 결단이었네요.

“플랜A만 들고,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여기서 승부를 보자고 마음먹었어요. 다행히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받아줘서 법 공부를 하게 됐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한국 문화를 더 깊이 알게 됐어요. 언어 실력도 조금씩 좋아지면서 제 인생이 많이 달라졌어요. 이제는 한국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유럽보다 여기에서 생활하는 것이 훨씬 나은 것 같아요.”

그가 한국에 온 지 1년 남짓 만에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는 ‘아랍의 봄’이라고 불리는 대대적인 민주화 물결이 일어났다. 2011년 3월15일 시리아에서도 바샤르 아사드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시위(시리아혁명)가 일어났다. 아사드 정권이 쫓겨나는 듯했으나 러시아 등 외세의 개입으로 시리아는 내전 상태에 빠졌다. 이 틈에 테러리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기승을 부려 한때 락까를 수도로 삼기도 했다. 전쟁의 혼란으로 수십만명의 사망자가 생겼으며, 670만명의 실향민과 56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그의 조카 한명도 아이에스에 참수를 당했으며, 락까의 가족들은 아이에스에 집과 땅을 모두 빼앗겼다. 다행히 그의 가족은 2014년 터키로 피신했으며, 남동생 두명은 노르웨이에서 난민으로 인정돼 살고 있다. 와합은 내전 초기에 가족과 고국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못 이뤄 우울증까지 겪기도 했지만, 발만 구르고 있지 않았다. 시리아 상황을 밤새 한국어나 영어로 번역한 뒤 새벽에 기자들과 시민단체 활동가, 단체에 이메일로 뿌렸다. 이런 노력은 2013년 시리아 난민을 돕는 구호단체인 ‘헬프시리아’로 결실을 맺었다.

―공부하느라 바빴을 텐데 어떻게 단체를 만들었어요?

“아사드 독재정권 반대를 위해서 서울의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1인시위도 해봤지만, 그런다고 시리아 상황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난민들한테 도움도 안 돼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한국인 한 친구가 돈을 모아서 보내자고 해서 지인들을 대상으로 모금을 한번 했어요. 그런데 그런 식의 모금은 서로 부담스러워 계속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하면 어떠냐고 친구들한테 제안했죠. 친구들은 대부분 ‘우리는 와합을 잘 아니까 적은 금액이라도 내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단체에 누가 돈을 내겠느냐’면서 차라리 기존의 단체를 통해서 돕자고 했어요. 그러나 국제기구 등을 통하면 돈이 바로 가지도 않고, 실질적인 효과도 거의 없어요. 거창하지 않더라도 그냥 시리아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동아리를 만들자고 친구들을 설득해서 시작했어요.”

원본보기
시리아 난민 지원을 위한 모금활동의 일환으로 2015년 7월 경기도 양평 갈산체육공원에서 열린 ‘평화의 철인3종 대회’에 참석한 압둘와합(맨 왼쪽). 압둘와합 제공


지난해 10월 한국에 귀화


대표(정용상)를 맡은 지도교수와 친구 등 12~13명으로 출범했던 헬프시리아의 회원은 현재 140~150명이다. 처음에는 모금된 돈으로 주로 식료품을 사서 난민들에게 전달했다. 난민촌은 터키와 가까운 시리아 국경지대에 대부분 설치돼 있다. 터키와 요르단 등 인접 국가들이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을 막는 대신에 시리아 내 접경지역에 설정한 피난민을 위한 임시 거주지역이다. 헬프시리아는 2019년 8월 알레포주 소란 지역의 난민촌에 ‘이끄라(읽으라는 뜻의 아랍어) 초등학교’를 만들었다.

사실 한국 오기 전까지는 그냥 안전하게 사는 사람이었는데 한국 유학 아이디어를 떠올린 뒤부터는 제 인생이 다 도전적으로 바뀌었어요.(웃음) 제가 평소 마음에 새겨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요. 갈 길이 없거나 명확하게 어디로 가야 할지를 잘 모를 때에는 본인 뜻대로 만든 길이 제일 좋은 길이다라는 이야기예요. 프랑스 유학은 이미 다 닦인 길로 가는 것이지만, 한국 유학은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이니까 새로운 루트를 하나 만들어서 앞으로 그 길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도 오갈 수 있도록 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런 결심을 친구들과 부모님한테 이야기했더니 다 강하게 반대했어요.(웃음) 교수님들도 엄청나게 반대했고요.”

다마스쿠스 한국 유학생의 대부’


―책 나오고 반응이 어때요?

“주변 사람들이 좋다고 하고, 시리아에 대해서 좀 많이 알게 됐다고 해서 반갑고 행복해요. 인터뷰 요청도 여러 군데서 들어와서 바쁘고요.”

압둘와합은 법학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학생(동국대)답게 사용하는 어휘가 고급스럽고 한국어가 유창했다. 첫 1년 동안 음식이 입에 안 맞아 살이 쏙 빠질 정도로 고생했지만, 지금은 된장찌개 예찬론자일 정도로 한국 음식에도 완벽하게 적응했다.

―2009년에 와서 12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데 생활은 어때요?

“조금 외로운 것과 사회적 시선이 가끔 힘들긴 하지만, 대체로 큰 어려움 없이 살고 있어요. 오래도 살고 한국 문화를 어느 정도 익혔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저를 낯선 사람으로 봐요. 예를 들어서 거리에서 시리아 난민돕기 모금할 때 김혜진 선생님이 ‘도와주세요’라고 하면 도와주든 안 주든 간에 ‘어’ ‘네’ 하고 마는데 저한테는 ‘우리가 왜 도와줘야 해?’ ‘당신 누구냐?’ 등 부정적으로 반응하거나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가 있거든요. 물론 ‘힘내라, 고생이 많다’며 좋은 말을 해주는 분들이 있어서 힘을 얻고 있어요.”

―부정적인 얘기를 들을 때는 어떻게 대응하세요?

“그때그때 다른데 논리적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에게는 저도 논리적으로 대답해요. 그냥 무조건 공격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말아요.”

―논리적 대응이라면요?

“상황 따라 다르긴 하지만, ‘지금은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각 나라가 혼자 살고 있는 시대가 아니고 서로서로 도와줘야 하는 시대다. 모든 나라들이 좋은 시간도 있었고 안 좋은 시간도 있었다. 한국도 옛날에 전쟁과 난민, 기아 문제가 있었을 때 국제사회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니 종교나 민족, 정치적인 것은 생각하지 말고 같은 인간으로서 서로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하죠.”

시리아는 6·25전쟁 때 우리나라에 물자를 지원했었다.

―그러면 납득하는 사람이 있던가요?

“어떤 분들은 알겠다고 하고 가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설득이 안 된대요.”

와합은 유프라테스강가에 위치한 시리아 북부지역의 락까가 고향이다. 조상 대대로 락까 인근 지역을 관장했던 토착 지도자(아미르)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그는 시리아의 유서 깊은 다마스쿠스 법대를 졸업하고, 1년 동안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프랑스 소르본대학교 법대에서 장학금을 받고 유학하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이를 포기하고 2009년 10월 한국으로 왔다. 그의 인생항로가 바뀐 것은 대학 3학년 때 길거리에서 도움을 청하는 한국 유학생들을 만난 게 계기였다. 그는 한국 유학생들을 “시리아의 다른 친구들과 똑같은 친구”로 대했다. 한국 유학생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와합, 도와줘’를 외쳤다. 당시 시리아에서 와합을 만났던 한 유학생은 그를 “한국 유학생의 대부”라고 표현했다.(<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

―한국 학생과 친한 것과 유학은 별개인데 왜 한국을 택했어요?

“하늘에서 날 위해서 그렇게 준비하셨나 봐요.(웃음) 한국 친구들 덕분에 시야가 좀 더 넓어졌고, 한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도 알게 됐는데 약간 깊이 공부해보려고 하니까 시리아에서는 아무런 정보를 찾을 수 없었어요. 한국 친구들이 나한테 보여준 이미지는 정말 성실하고 착하고 따뜻하고 똑똑한, 좋은 것뿐이어서 호기심이 더 생겼어요. 한국 국민들이 다 그렇겠구나고 생각했죠.(웃음) 그렇다면 굳이 프랑스에 가야 하나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시리아에서는 프랑스에 안 갔다 온 사람들도 프랑스어를 잘할 정도로 프랑스는 익숙한데 한국은 아는 사람도 없고 갔다 온 사람도 없으니 내가 한국에 갔다 오면 앞으로 할 일이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굉장히 도전적인 성격인가 봐요.


―그런 편견과 차별을 없애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봐요?

“서로서로 노력해야 하겠지만, 소수자들이 맨날 우리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가 먼저 나서야 한다고 봐요. 가짜뉴스를 막아야 하고,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직 차별금지법이 없다는 것은 사실 부끄러운 일이죠. 언론의 역할도 중요해요. 예를 들어서 아이에스를 보도할 때 그냥 테러집단 아이에스라고 하면 될 걸 꼭 이슬람 아랍 수니파 무장단체라고 하거든요. 언론이 특수집단을 아랍이나 이슬람으로 일반화시키니까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전체를 싸잡아서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 겁니다.”

“선한 행동은 돌고 도는 것 같아요”


―같은 한국인으로서 동료 시민들한테 당부하고픈 말은요?

“사람을 사람으로 봅시다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사람을 사람으로요?

“네, 남자니 여자니 또는 외국인, 내국인으로 나눠서 보지 말고, 또 난민으로 보지 말고 그냥 사람으로 봤으면 좋겠어요. 내 앞에 있는 분이 누가 됐든 사람으로만 봤으면 좋겠어요. 여기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인이든 아니든 같은 인간으로서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면 대화방식이나 서로 대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다마스쿠스에서 와합씨가 한국 유학생들을 똑같은 친구로 대했던 것처럼 말이죠.

“전 그때 한국 친구들을 외국인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심심하거나 놀고 싶거나 하면 연락해서 그냥 같이 밥 먹고 시간을 보냈죠. 그게 친구잖아요. 그런 행동에 대해 언젠가 그들에게 도움 받을 거라는 생각 자체도 없었고요. 그런데 도움이나 애정 등 선한 행위는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는 것 같아요. 제가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도왔는데 저는 또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곳이나 다른 방향에서 도움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방식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어요.”

와합은 올 연말까지는 한국과 아랍 법을 비교 연구하는 박사 논문을 마칠 계획이다. “졸업 뒤 연애하고 결혼해서 남들처럼 사는 평범한 삶”을 그리지만, 시리아 태생의 한국
인에게 주어진 ‘의무’ 앞에서도 당당하다.

“지금 제게 급한 것은 졸업과 취업입니다.(웃음) 물론 시리아 상황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난민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활동도 계속할 겁니다. 그래야 언젠가는 시리아와 한국을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출처
http://naver.me/IG6d8V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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