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 변호사(사진)는 의대 2학년 21살의 나이에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의사 전문의 자격과 변호사 자격을 따내는 성과를 이뤄냈다.
https://img.theqoo.net/dlNMI
“하반신 마비 장애 딛고 변호사·의사 문턱 넘었죠”
사고 후 의사 국가고시·로스쿨 시험 동시 준비
“극복이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저는 제가 장애를 극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고가 난 지 15년이 다 돼가지만 가끔 쇼윈도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면 ‘아 내가 다쳤구나’, ‘내가 휠체어를 타고 있구나’라고 새삼 깨닫게 되죠. 계단에 막혀 이동하지 못할 때는 아직까지도 좀 안타깝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요”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평안 사무실에서 만난 박 변호사가 ‘장애를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기자의 우문(愚問)에 던진 답변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잖아요. 다친 것은 다친 거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보자는 것이 제 생각이죠”
“내게 맞은 일을 찾기 위해 의사와 변호사 공부를 하면서 남들에 비해 많은 시간을 소비했죠. 하지만 지나온 긴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시한 인생을 살아갈 순 없잖아요”
중·고등학교 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수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주위의 부러움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그에게 예기치 않은 불행이 찾아 온 건 의대 2학년 때인 2005년 2월이었다.
“대학 때 스키부였어요. 겨울이 되면 전국에서 스키부들이 모여서 합숙훈련을 하곤 했죠. 사고 나던 해도 2월 초에 제 생일이 있어서 저는 먼저 합숙훈련에서 빠져나와 돌아가게 돼 있었어요. 생일 전날 나가려고 하니 한 달 동안 합숙을 하며 정이 들었는지 아쉬운 마음에 친구 2명과 함께 제일 늦게 까지 스키를 탔어요. 매우 추운 날 이었는데 마지막으로 제가 리프트를 타고 올라 갈 때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어요”
“마지막 날이니까 좀 과감하게 타 보자라는 생각에 스키점프를 했다가 공중에서 균형을 잃으면서 허리가 먼저 바닥에 떨어졌죠.
https://img.theqoo.net/elXqp
박 변호사는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의사면허가 있는 변호사라고 소문이 나면서 의료 관련사건만 들어왔고 하루 종일 진료기록만 보는 것이 일상이 돼 버렸다. “진료기록부를 보면 무슨 말인지 알긴 하지만, 머리로만 아는 것과 실제 임상경험을 한 것과는 다르더라고요. 어차피 앞으로 진료기록부를 볼 팔자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임상 경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변호사를 1년 하고 바로 다시 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죠”
그는 지난 2월 전문의(직업환경의학과) 자격을 취득한 후 3월부터 법무법인 평안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변호사 업무를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이런 결과가 발생했다’는 식의 인과관계를 많이 따지게 되죠. 직업환경의학과는 산업재해 관련 일이 대다수에요. ‘이 사람이 이런 병이 생긴 게 업무 때문이다’는 판정도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가 하죠. 나중에 변호사 일과 함께 하면 시너지를 내기에 직업환경의학과가 제일 좋겠다 라는 생각에 선택하게 된 거죠. 지금도 수임사건의 절반 정도는 의료사건이죠”
하반신 불구라는 사고에도 불구하고 방황을 겪을 겨를도 없이 의사와 변호사의 길로 달려올 수 있었던데 대해 그는 자신의 성격을 꼽았다. “제 성격이 긍정적이기 보다는 ‘무덤덤하다’는 쪽에 가까운 것 같아요. 되돌릴 수 없다면 기왕에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해 보자는 주의죠. 먹고 살려면 직업을 찾아야 하기도 했고요”
“언제가 ‘인생은 길다. 조급해 하지 마라’와 ‘인생은 길지 않다. 당당하게 살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두 말이 극명하잖아요. 저는 두 말을 합쳐서 실패를 해도 시시하지 않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며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죠”
[김진강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http://m.skyedaily.com/news_view.html?ID=92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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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신 마비 장애 딛고 변호사·의사 문턱 넘었죠”
사고 후 의사 국가고시·로스쿨 시험 동시 준비
“극복이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저는 제가 장애를 극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고가 난 지 15년이 다 돼가지만 가끔 쇼윈도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면 ‘아 내가 다쳤구나’, ‘내가 휠체어를 타고 있구나’라고 새삼 깨닫게 되죠. 계단에 막혀 이동하지 못할 때는 아직까지도 좀 안타깝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요”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평안 사무실에서 만난 박 변호사가 ‘장애를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기자의 우문(愚問)에 던진 답변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잖아요. 다친 것은 다친 거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보자는 것이 제 생각이죠”
“내게 맞은 일을 찾기 위해 의사와 변호사 공부를 하면서 남들에 비해 많은 시간을 소비했죠. 하지만 지나온 긴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시한 인생을 살아갈 순 없잖아요”
중·고등학교 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수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주위의 부러움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그에게 예기치 않은 불행이 찾아 온 건 의대 2학년 때인 2005년 2월이었다.
“대학 때 스키부였어요. 겨울이 되면 전국에서 스키부들이 모여서 합숙훈련을 하곤 했죠. 사고 나던 해도 2월 초에 제 생일이 있어서 저는 먼저 합숙훈련에서 빠져나와 돌아가게 돼 있었어요. 생일 전날 나가려고 하니 한 달 동안 합숙을 하며 정이 들었는지 아쉬운 마음에 친구 2명과 함께 제일 늦게 까지 스키를 탔어요. 매우 추운 날 이었는데 마지막으로 제가 리프트를 타고 올라 갈 때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어요”
“마지막 날이니까 좀 과감하게 타 보자라는 생각에 스키점프를 했다가 공중에서 균형을 잃으면서 허리가 먼저 바닥에 떨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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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변호사는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의사면허가 있는 변호사라고 소문이 나면서 의료 관련사건만 들어왔고 하루 종일 진료기록만 보는 것이 일상이 돼 버렸다. “진료기록부를 보면 무슨 말인지 알긴 하지만, 머리로만 아는 것과 실제 임상경험을 한 것과는 다르더라고요. 어차피 앞으로 진료기록부를 볼 팔자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임상 경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변호사를 1년 하고 바로 다시 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죠”
그는 지난 2월 전문의(직업환경의학과) 자격을 취득한 후 3월부터 법무법인 평안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변호사 업무를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이런 결과가 발생했다’는 식의 인과관계를 많이 따지게 되죠. 직업환경의학과는 산업재해 관련 일이 대다수에요. ‘이 사람이 이런 병이 생긴 게 업무 때문이다’는 판정도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가 하죠. 나중에 변호사 일과 함께 하면 시너지를 내기에 직업환경의학과가 제일 좋겠다 라는 생각에 선택하게 된 거죠. 지금도 수임사건의 절반 정도는 의료사건이죠”
하반신 불구라는 사고에도 불구하고 방황을 겪을 겨를도 없이 의사와 변호사의 길로 달려올 수 있었던데 대해 그는 자신의 성격을 꼽았다. “제 성격이 긍정적이기 보다는 ‘무덤덤하다’는 쪽에 가까운 것 같아요. 되돌릴 수 없다면 기왕에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해 보자는 주의죠. 먹고 살려면 직업을 찾아야 하기도 했고요”
“언제가 ‘인생은 길다. 조급해 하지 마라’와 ‘인생은 길지 않다. 당당하게 살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두 말이 극명하잖아요. 저는 두 말을 합쳐서 실패를 해도 시시하지 않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며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죠”
[김진강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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