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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월급만 믿다간 벼락거지" 8시50분이면 화장실 가는 주식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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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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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 회사원, 씁쓸한 주식광풍

매일 아침 8시 50분 무렵이면 서울 용산구 소재 IT 기업 직원들이 하나둘 화장실로 간다. 9시 정각에는 7층 80좌석 가운데 10여석이 비어있다. 오전 9시는 국내 주식시장이 열리는 시각이다. 이 회사 직원 이모씨는 “집단 배탈이 아니라, 주식에 투자하는 직원들이 전날 밤 뉴스를 반영해 최대한 빠르게 주식을 사고팔려고, 상사 눈을 피해 스마트폰을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로 몰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 소식이 전해진 이달 10일 아침에는 20여 명이 한꺼번에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개인투자자를 의미하는 동학개미/뉴시스

개인투자자를 의미하는 동학개미/뉴시스

보다못한 이 회사 과장이 한번은 “업무 시간에 주식을 하면 어떡하느냐”고 질책했다고 한다. 직원은 처음엔 “화장실에 가는 것뿐”이라고 했지만, 추궁이 이어지자 “인사 고과 B등급 주셔도 됩니다”라고 답했다. 과장은 “정규직은 쉽게 잘릴 일 없으니, 대충 일하고 월급만 챙겨가겠다는 소리였다”며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그냥 보냈다”고 했다.

‘코스피 랠리’가 직장 내 풍경을 바꾸고 있다. 직장인들이 너도나도 스마트폰으로 주식을 하고, 모이면 주식 얘기다. 고액 연봉 대기업 직원이라고 다르지 않고, 회사 눈치도 보지 않는다. 그 이유를 직장인들에게 물어봤다. 한 대기업 4년 차 직원이 “‘벼락거지’라는 말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아파트 값과 주가 급등으로 ‘벼락부자’가 속출하면서, 무리해서 집이나 주식을 사지 않고 직장에만 충실했던 사람은 하루아침에 상대적 빈곤 상태가 됐다는 의미였다.

또 다른 대기업 6년 차 직원은 “주식은 2030 직장인에게 구원(救援)”이라고 했다. 그는 “작년까지 ‘우리 세대는 수년을 열심히 공부해 좋은 직장 입사했지만, 그래봤자 월급으론 집 한 채 못 산다’는 생각에 만사가 허망했고, 우울증 기미까지 있었다”며 “그런데 최근 주식시장 활황으로 드디어 우리에게도 아파트 매수 종잣돈을 만들 기회가 온 것”이라고 했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는 “주택 정책 실패와 주식시장 과열이 겹쳐 젊은 층 사이에 자본 소득에 대한 박탈감이 만연하면서, 노동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실물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은 자산 가격 상승은 버블이 언젠간 꺼질 수밖에 없고, 그땐 막대한 사회적 후유증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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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거래가 체결되었습니다.”

지난 13일 오후 업무 시간, 고요하던 경기 일산 신도시의 한 건설사 사무실에 이런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입사 2년 차 사원 현모(28)씨의 휴대전화에서 난 소리였다. 현씨는 “항공 관련주가 ‘떡상’(가격 급상승)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하게 예금 300여만원을 해지하고 주식을 샀는데, 볼륨 끄는 걸 깜빡했다”고 했다. 당연히 팀장 경고가 날아들었다. 하지만 현씨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며 “내게 회사는 주식을 안정적으로 굴릴 수 있도록 매달 350만원 남짓 고정 수익을 주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했다.

현씨 같은 사람이 늘어난 것은 통계로 어느 정도 확인된다. 주식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주식 거래 활동 계좌 수는 3370만개. 올해 들어서만 14%가 늘었다. 특히 회사 PC를 이용하지 않고도 주식을 즉시 사고팔 수 있는 ‘휴대전화 주식 거래 시스템(MTS)’ 이용자는 올해 들어 폭발적으로 늘었다. A증권의 경우 MTS 하루 평균 이용자 수가 재작년 44만6000명, 작년 45만8000명으로 큰 변화가 없다가, 올해에는 80만3000명으로 단번에 거의 배(倍)가 됐다.

근로 의욕 저하로 이어진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황모(28)씨는 “여기저기서 부모 도움 받아 산 아파트로 억대를 벌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는데, 내겐 그럴 돈이 없고, 대출도 막혔다”며 “월급 오르는 속도는 감히 집값 상승률 근처에도 못 가는데, 자연히 직장 일보다는 투자 법에 관심이 간다”고 했다.

대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IT 업계에서 일하는 입사 6년 차, 월 600여 만원을 받는 최모(34) 대리는 올해 들어 미국 주식 시장에 투자하는 이른바 ‘서학 개미’가 됐다. 출근만 하면 잠이 쏟아진다. 미국 주식시장 개장이 우리 시각으로 오후 11시 30분이라 새벽 2~3시쯤 잠드는 게 일상이기 때문이다. 최씨는 “최근엔 회의 일정을 까맣게 잊다가, 회의 하루 전에 급하게 준비하느라 고생했다”고 했다. 한 대기업 계열 건설회사 임원은 “서학 개미보다는 동학 개미(국내 주식 투자자)가 차라리 낫다. 동학 개미는 중간중간 한눈을 팔지만, 서학 개미는 아예 오전에 졸고 있으니까”라고 했다.

태업하는 직원들을 질책하고 독려해야 할 기업의 ‘허리급’들도 무기력증을 호소한다. 대형 회계법인의 시니어 매니저 정모(34)씨는 “입사 직후 선배들에게 ‘열심히 해서 승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믿었다”며 “그런데 나는 일만 열심히 하다가 집 살 시기를 놓쳐 전세살이를 하고, 청약 등 부동산 투자 정보를 공유하며 미리 집을 산 후배들은 나보다 수억원씩 더 벌었다. 고작 연봉 2000만~3000만원 많은 내가, 어떻게 이들에게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고 잔소리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후배들이 문제가 아니고 내 가치관이 완전히 무너진 기분이라 울적하다”고 했다.

https://news.v.daum.net/v/20201128030216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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