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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한국의 문화를 탐내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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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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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리퍼블릭=최정철의 잡학락락(樂樂)] 독일인들은 인조 머리카락을 만들고 스위스인들은 그 머리카락에 구멍을 뚫는다고 한다. 그만큼 스위스인들의 손재주가 남다르다는 얘기다. 현재 로마 교황청의 근위대는 백 명 정도로 구성된 스위스 용병들이다. 교황청 입구나 교황의 주변에 울긋불긋 중세 때의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들이 그들이다. 스위스는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산업 구조 없는 빈한한 나라였다. 그래서 사내로 태어나면 이웃 나라 왕실이나 로마 교황청의 근위병을 직업으로 삼아 살았다. 그런 스위스 용병들은 용맹스럽고 충성심 강하기로 유명했다.

1789년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혁명의 전파를 두려워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연합군을 꾸려 프랑스 국민군과 전쟁을 벌였다. 당시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프랑스 왕비가 된 앙투와네트가 오스트리아군에 정보를 빼준다고 의심한 왕정 폐지론자들이 시민군을 만들어 왕과 왕비가 거처하고 있던 튈르리궁을 습격했다. 직속 근위대마저 도주한 상황에서 루이 16세는 스위스 근위병들에게 해산을 명했다. 하지만 786명의 스위스 근위병들은 끝까지 남아 왕의 도주 길을 지킨 채 시민군에 맞섰고 마침내 전원 전사하고 만다. 그들이 끝까지 항전한 이유가 있다. 스위스 용병의 용맹함과 충성심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자신들은 비록 죽어가더라도 후손들은 선대의 용맹함과 충성심을 인정받아 용병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고자 함이었다.

그런 애잔한 역사를 갖는 스위스이지만 오늘날에는 경제 부국이 되어 있음이니 그 출발점은 그들의 정밀한 기계산업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과 아들들이 타국에서 황망하게 죽어감에 비장한 결심을 한 스위스인들은 19세기가 되면서부터 자력갱생을 외치며 직물 기계를 시작으로 기계산업에 매진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스위스 기계산업은 마침내 20세기에 들어와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되니 그 주인공이 바로 시계다. 전 세계를 호령하는 스위스 시계산업 발전에는 재미있는 배경이 있다. 스위스인들은 시계산업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누구든 뜨개질을 하도록 했다 한다. 즉 세밀한 손재주부터 연마한 것이고 그것이 정밀한 시계 제작 기술로 이어진 것이다.

며칠 전 미국 뉴저지주 테너플라이(Tenafly) 시(市)의 마크 지너(Mark Zinna) 시장이 해외 지자체로는 최초로 10월 21일을 한복의 날(Korean Hanbok Day)로 공식 선포했다. 선포문을 읽을 때 그는 아예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한복도 한복이지만 갓을 쓰고 있음에 눈길이 간다. 2019년 ‘킹덤’이라는 6부작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를 달구었을 때 가장 인기를 끌었던 소재가 바로 갓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10여 년 전 뉴욕 패션계에 등장하며 깜짝 주목을 받은 이래 또다시 세계적 패션아이템으로 각광 받으며 이런저런 패션쇼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K-드라마가 만들어지는 족족 전 세계인들로부터 환호를 받으면서 그 안에 담긴 한복, 김치, 삼계탕 등등까지 덩달아 동티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모습에 중국인들이 장이라도 뒤집혀 졌는지 갑자기 엉뚱한 원조 타령을 하고 있다. 한복은 한푸(漢服)에서 흘러나간 중국 왕실의 시녀 복장이요 김치는 저네들 파오차이(包菜)의 아류요 삼계탕도 먼 옛날 강남땅에서 해 먹었다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 여기에 갓에 대한 저네들의 주장에는 이 무슨 새 뒤집어 나는 소리인가 싶다. 중국인들이 옛날 챙 달린 모자를 썼으니 갓은 그것에서 생겨난 유사품이라는 것이다. 과연 저네들의 챙 달린 입모(笠帽)와 한국인의 갓이 같은 뿌리에서 생겨난 것일까?

스위스 시계가 스위스인 고유의 손재주로 만들어진다면 한국의 갓 역시 한국인만의 손재주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물건이다. 갓을 만드는 데에는 아주 특별한 기술이 요구된다고 한다. 바로 사람의 다섯 가지 감각이다. 갓을 만드는 재료는 말의 갈기털이나 꼬리털을 이르는 말총이다. 그래서인지 갓은 고려 때부터 말을 방목한 이래 말의 본향이 된 제주도에서 특산물로 만들어졌다. 이 말총을 가지고 다섯 가지 감각을 총동원해서 갓 만들기를 다음과 같이 한다.

첫째 시각이다. 갓 장인은 말에서 얻은 말총 털들을 엄청난 시력으로 하나하나 감별해 내는데 밤에 촛불 켜고 말총 털을 한 가닥씩 들어 촛불에 비춰본다. 그 가느다란 털 가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진한 검은색의 털들만 골라내고 갈색 털들은 버린다. 두 번째로 청각이 나선다. 선별해낸 털들을 오동나무로 만든 공명판에 걸고는 악기의 현을 튕기듯 하는 식으로 팅팅 튕긴다. 극히 미세하게 들리는 소리를 감별해서 맑게 울리는 털들만 골라낸다.

이제 촉감 차례다. 쉰 가닥 정도의 털을 한 묶음으로 잡아 한쪽 끝을 싹둑 자르고는 그 절단된 부분을 손가락으로 쓸어본다. 그것으로 굵고 튼튼한 털들이 솎아진다. 다음은 후각이다. 이제 그 털들을 하나하나 조금씩 태워 냄새를 맡는다. 냄새로 몇 년 생 말에서 나온 털인가를 구분해서는 늙고 어린 말에서 나온 털은 골라내어 버린다. 정 냄새로는 미심쩍다 싶으면 이제 미각이 팔 걷어붙이고 나선다. 맛보는 것으로 몇 년 생인가를 결정짓는 것이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고도의 정밀 방식으로 말총을 고르고 골라서는 한국인만의 비현실적인 손재주까지 가미해서 만드는 것이 갓이니, 귀신이 쫓아와 절을 올릴 이런 물건이 세상천지에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인체 생리학적으로 볼 때 동북아시아 벼농사 지대 사람들은 장장근(長掌筋. 손 근육)이 대단히 예민하게 발달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의 장장근은 아무렴 다른 민족보다 월등히 발달했을 것이요, 그러기에 이 세상 물건 같지 않은 갓도 쉽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반면 벼보다는 콩이나 밀을 더 심어 먹으면서 우리네보다 장장근 감각이 덜 발전했을 중원 민족이 오감 동원에 꼼꼼한 손재주까지 요구되는 말총 갓을 어찌 만들 수 있으랴?

게다가 중국의 입모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나 한국의 갓에서는 어떤 심오한 철학을 발견할 수 있음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중국의 입모는 꽉 막힌 천이나 가죽으로 만들어진다. 그에 반해 한국의 갓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비가 와도 방수되지 않고 바람도 쉽게 통과된다. 따가운 햇볕을 가릴 수도 없다. 허술하다면 허술하다 할 그런 형태의 갓을 쓴 것에는 한국인만의 고유한 정신문화가 담겨있다. 비가 오면 그 비 맞고 햇볕 내리쪼이면 그대로 쪼인다. 바람 들락날락해도 내버려 둔다. 곧 자연과 하나가 되는 모습이다.

일본인은 자연을 축소형으로 만들어 집안으로 끌어들여 즐기고 중국인은 광활한 대지에 자연을 통째로 만들어 대륙적 배포를 자랑하지만, 한국인은 그저 자연을 찾아가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즐긴다. 그런 식으로 한국인은 모자를 써도 자연과의 접화(接化)를 생각한 것이다. 부풀리고 과장하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심성에서는 백날 천날 들여다봐도 이런 정신문화가 나올 리 일절 없다.

문화는 한 집단이 오랫동안 전승하며 일상으로 향유 할 때 그 집단의 소유물이 된다. 과거에 우리에게 있었으나 지금에 이르러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 것이 아니다. 원래는 우리에게 있었으니 지금도 우리 것이라는 개념 없는 우격다짐 식 쇼비니즘(Chauvinism)은 미개함을 이르는 말이 된다. 이런 말조차도 알아듣지 못한다면 진정 어쩔 수 없는 미개한 종자들이다.

http://www.mrepublic.co.kr/news/articleView.html?idxno=71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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