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스타트업’으로 피어오른 수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수지는 데뷔 이래 실패한 적이 없는, 명실상부한 ‘슈퍼스타’다. 그러나 배우로서 그의 자리는 어딘지 위태위태했다. 굵직한 주연으로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종횡무진했고 장르도 캐릭터도 다채롭게 소화해내지만, 매번 ‘아이돌 출신’이란 꼬리표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연기력은 조금씩 성장하더라도 캐릭터보단 수지의 화려한 존재 자체가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사실. 그 탓인지 매번 작품이 방송되기에 앞서, 우려 섞인 반응이 먼저 들려오곤 했다. 그러나 이번 판엔 그 이름값을 제대로 증명해내는 듯하다. tvN ‘스타트업’(극본 박혜련, 연출 오충환)의 서달미로, 그는 배우로서의 존재를 우뚝 세웠다.
달미는 말 그대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밝고 씩씩한 청춘의 표상이다. 안 해본 알바 하나 없을 정도로 튼튼하고 굳세게 인생을 개척한다. 대학 졸업장 하나 없이도 뛰어난 사업 수완을 자랑하며, 영어, 일어, 중국어에도 능통하다. 억척스럽지만 그만큼 사랑스러운 캐릭터. 그가 웃으면 온 세상이 웃는 듯 활력이 넘친다. 그 밝은 표정들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늘도 자리한다. 부모님의 이혼과 자신을 두고 언니만 홀랑 재벌가로 데려간 엄마, 그리고 그들을 데려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아버지의 죽음까지. 그 아픈 사연들을 깨부수고 나오는 발랄하면서도 주체적인 달미의 매력을, 수지는 최대치로 표현해내고 있다. 제 옷을 입은 듯 서달미 그 자체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나 좋다는 남자는 많았”지만, 오랜 기간 남도산을 기다렸기에 ‘모태솔로’라고 밝힌 극중에서의 충격적인 고백(?)도 설득이 될 정도다. 온갖 궃은 일들을 딛고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수지표 달미는 ‘스타트업’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청춘들의 희망으로 자리한다.
물론 밝고 씩씩한 모습이야 수지가 이전부터 줄곧 보여왔던 매력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애틋함’과 ‘웃픔’과 같은 정서를 표현하는 능력이 한스푼 추가됐다. 정규직을 담보로 2년 내내 부려먹는 회사에 당당히 사표를 내지만, 옥상에 올라가 허망함과 서러움을 한껏 표현하는 장면은 청춘들의 공감을 제대로 끌어냈다. 남도산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가슴 떨리는 표정과는 상반되는, 떠난 엄마와 언니보다 잘살아낼 거라며 악쓰는 표정은 달미의 고단한 인생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내가 잘살지 않으면 아빠를 선택해서 진 게 된다”며 분통을 토해내는 모습은 단단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의 약한 모습을 대면하자마자 “왜 사람 헷갈리게 잘해주냐”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은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복합적인 감정들을 그대로 내보이는 서달미에게 시청자들은 몰입할 수밖에 없고, 수지는 ‘스타트업’을 앞서 이끄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스타트업’의 박혜련 작가와는 데뷔작인 KBS2 ‘드림하이’와 SBS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 뒤이은 세번째 작업. 그 케미스트리에도 물이 올랐다. 박혜련 작가는 수지의 장점들을 최대로 살린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수지 또한 대본의 매력을 십분 살릴 방법을 찾은 듯하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동갑내기 또래 배우 남주혁(남도산 역)과 맞붙는 신은 설렘을 안기고, 언니인 강한나(원인재 역)와의 날선 ‘티키타카’는 몰입과 긴장감을 더한다. 특히 저를 홀로 키워낸 할머니 김해숙(최원덕 역)과의 ‘생활연기’ 호흡은 일품. 얼굴에 수분팩을 그대로 붙인 채 실을 바늘에 대신 꿰어주거나, 자신이 꿈꾸던 남도산을 만난 이후 그의 앞에서 호들갑을 떠는 모습까지. 연기력으로는 정평 난 김해숙과의 자연스러운 호흡은 이상적인 할머니와 손녀의 모습 그대로, 극에 몰입감을 더한다.
그간 출세작인 ‘건축학개론’에서의 존재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수지는 ‘국민 첫사랑’을 넘어설 캐릭터나 작품들을 만나지 못했다. 본업이었던 미쓰에이의 멤버로는 춤도 노래도 미모도 다 되는, 완벽한 스타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그다. 그러나 스크린 주연작인 ‘도리화가’의 채선을 소화하기엔 역량이 부족했고, 드라마 주연작 KBS2 ‘함부로 애틋하게’에서는 캐릭터와 드라마 자체에 대한 작품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SBS ‘당신이 잠든 사이에’나 SBS ‘배가본드’에서도 나아진 연기력을 선보였지만, 역시나 ‘인생캐’는 만들지 못했다. 배우 출신이 아니기에 발성과 표정의 어색함은 고질적으로 언급되었고, 미모에 연기력이 묻힌다는 소리도 들었던 그다. 그러나 수지는 논란들을 딛고 점차 일어섰다. ‘스타트업’에서의 눈에 띄는 성장은, 그가 얼마나 성실히 노력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절로 응원하게 만드는 청춘의 표상으로, 공감과 희망을 선사하며 그는 ‘스타트업’을 이끌고 있다.
공교롭게도 수지는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이했다. 10주년을 기점으로, 그는 앞으로의 10년 또한 오롯한 배우의 모습으로 날개를 펼칠 듯하다. ‘스타트업’이 청춘들의 성장 이야기로 도전장을 내밀었듯, 수지 또한 명실상부한 배우로서 이번엔 제대로 출사표를 내던졌다. 배우 배수지의 시작은 어쩌면 지금부터다.
이여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