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g.theqoo.net/LEKZN
https://img.theqoo.net/eMpUx
박영인 (1908~2007, 친일파)
1908년1월 8일 경남 울산 태생으로 부산중학교 때 영국인 선교사로부터 무용의 기본을 배운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수재들만 다닌다는 마츠에(松江)고등학교에 진학해 무용을 독학하다가 동경대학에 입학해 그 후 일본인 석정막 연구소에 입문하였고 미국인 루돌프 에폴 에게 발레의 기초를 배웠다고 전해진다.
일본에서의 활동 당시에도 제자들 사이에서 그가 한국인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리 좋은 꼬리표가 아니었기에 그 사실은 무용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박영인이 기존에 무용사적으로 보여준 모습의 이면에는 해방 직후 고향에 잠시 들렀어도 과거의 자신이 친일파로서 행한 행위들로 인해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당시의 분위기를 잠시 피하기 위해 일본에 출국한 것이 고국과의 마지막 인사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한국에 수입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친일파 찾기가 시작되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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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인 (1908~2007, 친일파)
1908년1월 8일 경남 울산 태생으로 부산중학교 때 영국인 선교사로부터 무용의 기본을 배운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수재들만 다닌다는 마츠에(松江)고등학교에 진학해 무용을 독학하다가 동경대학에 입학해 그 후 일본인 석정막 연구소에 입문하였고 미국인 루돌프 에폴 에게 발레의 기초를 배웠다고 전해진다.
일본에서의 활동 당시에도 제자들 사이에서 그가 한국인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리 좋은 꼬리표가 아니었기에 그 사실은 무용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박영인이 기존에 무용사적으로 보여준 모습의 이면에는 해방 직후 고향에 잠시 들렀어도 과거의 자신이 친일파로서 행한 행위들로 인해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당시의 분위기를 잠시 피하기 위해 일본에 출국한 것이 고국과의 마지막 인사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한국에 수입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친일파 찾기가 시작되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