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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증인이 된다는 것은 법정에 혼자 서서 총알을 맞는 것과도 같다, 누구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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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2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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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경 (범죄피해 트라우마 통합지원기관 임상심리전문가) 분이 쓰신 글을 읽다가 좋은 내용인 것 같아서 소개함. 


부분 인용이니까, 관심 있으면 링크로 가서 전문 보는 것도 즣을듯. 


피해자로 형사 사법 절차를 겪어본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고, 아직 피해자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읽어보면 좋은 글임. 



"범죄 피해자, 법 앞에서

피해자 회복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정의를 실현해야 할 수사와 재판과정이 피해자에게 더 고통스런 시간을 강요한다고 말합니다. 현재 형사사법시스템의 문제점을 살펴봅니다."


http://www.min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86


"피해자가 경험하는 수사와 재판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범죄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살아가고, 피해자가 범죄 후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회복되는지도 잘 알지 못합니다. 이 생소한 과정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드는 것이 좋을 듯한데요, 별로 즐겁지는 않은 상상이겠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느 날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글을 읽으면서 가능한 한 이것이 자신이 겪은 일이라고 적극적으로 상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어느 주말 저녁 친구들과 집 근처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다 옆 자리에 있던 건장한 40대 남자 손님과 사소한 일로 시비가 붙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의 태도에 짜증이 난 당신이 큰 소리로 따지자 격분한 상대방은 갑자기 당신에게 달려들어 당신의 얼굴과 복부를 주먹으로 여러 번 때렸습니다. 당신은 너무도 갑작스러운 주먹질에 놀라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했으며, 깜짝 놀란 친구들과 주변 손님들은 일단 싸움을 말린 뒤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코피를 흘리고, 얼굴에 피멍이 든 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있던 당신은 다행히 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게 됐는데, 의사로부터 2-3일 정도의 입원 및 지속적 통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설명을 듣게 됩니다. 신체적인 부상에 더해, 트라우마로 인한 심리적 증상도 시작됩니다. 사건 이후 당신은 하루에 3-4시간 밖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간신히 잠이 들어도 악몽을 꾸어 소스라치게 놀라 깨며, 낮 동안에는 까닭 모를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가해자와 인상이 조금만 비슷한 사람을 보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계속되는 불안감 때문에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주의력과 집중력이 일시적으로 저하되어 들은 말을 금방 잊어버릴 때도 있지요. 그렇게 정신없는 상태에서 병원치료를 받고 있으려니, 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피해 진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 년에 이르는 일련의 형사소송절차는 많은 경우 이런 방식으로 시작되고는 합니다. 이 상황에서 많은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자신의 범죄에 알맞은 벌(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만큼)을 받기를, 또 피해자에게 알맞은 피해보상을 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당연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후의 법적 절차가 원만히 진행되어야 하는데요. 그런데 범죄피해자 앞에 있는 법이라는 문의 문지기는 정말이지 만만치 않습니다. 그 문을 지나가려는 사람이 피해 당사자라 하더라도요.


우선, 그 문 앞에 선 피해자의 상태는 근대국가에서 가정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시민의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는 데 첫 번째 곤란이 있습니다. 범죄로 인한 트라우마는 자율신경계를 과활성화시켜 주변 자극에 예민해지게 하고, 감정조절을 어렵게 하니까요. 게다가 어느 날 갑자기 생소한 법의 체계에 떠밀리다시피 들어가게 된 피해자들은 많은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몰라 혼란을 겪으며, 갑자기 달라진 자신의 처지와 현 상황에 대한 혼란과 막막함 때문에, 혹은 트라우마 증상 때문에 경찰이나 검찰 앞에서 평소에는 하지 않던 여러 가지 행동들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상태에서 하게 된 여러 행동은 사건을 담당한 공무원이나 법조인들의 방어적인 태도를 이끌어낼 수 있고, 담당자들은 피해자가 ‘이런 상태’ 에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원래 이런 사람’ 이라고 이해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 결과, 피해자들은 담당자들로부터 최대한의 도움을 받기 어렵지요. 피해자의 이러한 불안정한 상태는 수사-재판과정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엄밀히 말해 이것은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피해자들이 일반적으로 겪을 수 있는 이러한 심리적 동요가 수사 및 재판 절차에서 잘 고려되지 않는 점은 문제라 하겠습니다.


자, 다시 앞서 이야기했던 사건으로 돌아가 봅시다. 당신은 간신히 자신을 추슬러 비교적 차분한 상태로 경찰조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사건을 담당한 형사는 세심한 편이어서, 사건 진행 세부 사항을 잘 안내해 줍니다. 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당신은 범인이 불구속상태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심지어 범인은 집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인데도요. 혹시라도 범인이 해코지를 하거나 다시 접근해오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난 당신은 경찰에게 가해자가 잡히지 않아 불안하다고 호소합니다. 그러자 경찰은 당신에게 원할 경우 신변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하며, 위급상황에서 경찰에 긴급신고를 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를 제공해 줍니다. 조금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가해자가 달려드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는 경찰이 오기 전에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은 사건이 마무리 될 때까지 잠시 부모님 집에 가 있기로 하고, 어서 사건이 진행되기를 기다립니다. 한 달 가량이 지나자 사건은 검찰로 송치되었으며, 이후 재판이 시작됩니다. 자, 재판에서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피해자 없는 형사재판


많은 경우 형사소송절차에서의 피해자가 겪는 괴로움은, 형사소송절차 내에서의 피해자의 위치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범죄자에 대한 재판은 피해자vs. 가해자의 형식이 아니라 국가vs. 가해자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데요, 이에 따라 피해자는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피해를 겪었다고 해도 사건의 주체가 아니라 증인의 위치에 서게 되고, 여러 가지 모순적인 요구와 욕구들 사이에서 복잡한 의사결정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자신이 피해자인 사건에서 주체가 아니라 증인이 된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핵심적인 문제를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말하는 것’ 의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주체는 말하고 싶을 때 말하고 말하기 싫을 때 침묵할 수 있으나, 증인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말할 기회를 찾기 어려우며, 말하기를 원치 않을 때에도 말해야 하는 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증인은 자신이 원할 때가 아니라 재판부가 원할 때 말해야 하고, 발언을 원치 않아도 재판부가 명령하면 말해야 하지요.


이러한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피해자로서 자신의 경험이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게 되며, 작게는 재판부, 크게는 사회 전체에 대한 원망과 불신을 키우게 되기 쉽습니다. 다행히 2007년 개정된 형사소송법에서는 피해자가 말하고자 할 때는 말할 수 있도록 “피해의 정도 및 결과, 피고인(가해자)의 처벌에 대한 의견, 그 밖에 당해 사건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명시했지만 실제 형사소송 실무의 세계에는 피해자에게 이러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사람도, 이를 적극 활용하는 사람도 매우 적습니다. 


드물게, 피해자가 말하기를 원할 때와 재판부가 듣기를 원할 때가 교묘하게 맞아 떨어져 일이 잘 흘러가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요. 그런데 그 때는 발언의 내용이 문제가 됩니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증언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가해자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한 발언에 국한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재판 과정 중 감정에 치우친 말을 하면 발언을 제지당하거나 심할 경우 법정 밖으로 퇴출되는 경우가 있는데(법의 입장에서 볼 때 증인의 사적 감정은 가해자의 유무죄나 잘못의 정도를 결정하는 데 불필요한 발언이니까요), 이것이 아무리 정당한 절차라 해도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상처로 남기 쉽지요.


고통스런 증인심문


무엇보다, 피해자는 증언을 하게 되면 가해자 변호인의 증인신문 과정을 필히 거치게 됩니다. 재판부의 ‘중립적’ 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것은 매우 자연스럽고도 필수적인 절차입니다. 증인(=피해자)이 유죄를 밝히기 위한 발언을 했으니 당연히 재판을 받는 사람에게도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증언한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비록 사건을 담당한 판사가 가해자(혹은 변호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러한 심문 내용을 듣는 것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종종 변호사들은 심문과정에서 피해 사실 자체를 의심하거나, 피해자의 평소 성격 및 대인관계, 행동 등을 거론하며 피해자가 사건발생에 일부 책임이 있음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사실이든 아니든 이러한 비난을 받게 된 피해자들은 억울함과 분함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지요. 증인심문을 받아야 했던 저의 내담자 중 한 분은, 증인지원관으로부터 “증인이 된다는 것은 법정에 혼자 서서 총알을 맞는 것과도 같다, 누구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고 합니다. 그 표현이 그 순간 자신의 심정을 잘 설명하는 말이었다고요. 이러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증인지원제도가 존재하며, 법정에서 가해자와 마주치지 않을 수 있도록 비대면신청을 한다거나, 가족 등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 증언할 수 있도록 신뢰관계동석 신청 등을 할 수 있습니다만, 이러한 요청을 승인하는 것도 판사의 재량이라 요청이 거절될 수 있으며, 언제나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범정에서 말하는 것과 관련된 이런 다양한 위험 때문에, 많은 피해자들은 직접 증언을 하기보다는 탄원서를 제출하는 것과 같이 간접적인 방식으로만 자신의 심정을 전달하거나, 어려움이 커 탄원서 작성조차  어려울 경우에는 자신의 사건에 아무런 개입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처럼 피해자가 법정을 향해, 국가를 향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데에는 여러 겹의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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