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장부승 기자]
덧붙이는 글 | 장부승 교수는 15년간의 한국 외교관 생활 후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이후 미국 스탠포드대 아태연구소, 세계 최대 국방 연구소인 미국 랜드연구소 연구원 생활을 거쳐 현재 일본 오사카 소재 관서외국어대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한겨레> 정남구 기자: 과거 집착보다 변화에 대한 적응 고민해야
현재의 한일갈등을 역사적·구조적·국제관계적 측면에서 바라보면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사실 예전에도 있었다.
6년 전 도쿄특파원이었던 <한겨레> 정남구 기자는 그런 고민을 칼럼으로 보여줬었다.
2013년 9월 27일 치 그의 칼럼 <보통국가 일본과는 어떻게 마주할까?>를 읽어보면 그런 고민이 절절히 담겨 있다.
최근 연일 게재된 <경향신문> 고참 기자 3인방(이대근-서의동-유신모)의 고민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그들은 반성을 안 했어, 역사가 청산이 안 됐어, 청산되지 못한 역사 문제 빨리 마무리지어야지'라고 우리 입장에서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변하고 역사는 굴러가고, 일본도 이에 맞춰 변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면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정남구 기자는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남구 기자가 6년 전 예견했던 문제의 한 자락이 이미 현실 속에 짙게 깔려 들어오는 것을 우리는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아무도 오늘의 이런 문제를 예견하지 못했다고 짜증만 낼 일이 아니다. 예견은 있었다. 우리가 보지 않은 것이다.
진보진영도 '토착왜구'라고 할 것인가
보수언론이 뭐라고 하기만 하면 구체적인 내용은 보지도 않고 '왜구'니 '친일파'니 비판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물론 반대로 보수언론이 말하는 것이 모두 진리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든 진보든 어떤 유형의 발화자의 입에서 나오는 주장은 무조건 진리이거나 혹은 거짓일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진영의 사람들은 특정 유형의 주장을 전개한다고 미리 전제해 두고 그런 유형의 주장과 유사한 주장이 나오면 무조건 반대부터 하는 것은 올바른 소통의 자세가 아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북한이 과거에 했던 주장과 유사한 주장을 하기만 하면 무조건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고 비난해야 하는가?
앞선 기사 그리고 바로 위에서 들었던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기사들을 보면 냉철한 인식하에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기도 하고 한일관계 관련 전향적 자세를 촉구하기도 한다.
그러면 이들 진보진영의 고참 기자들도 단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거나 조금이라도 일본 측을 두둔하는 듯한 자세를 보였다고 '토착왜구' 운운하며 몰아부칠 일인가?
대한민국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정치 지도자의 한 사람이자 한국 진보진영의 거두였던 고 김대중 대통령은 1960년대 당시 야당과 민간의 분위기에 거슬러가며 박정희의 한일회담에 찬성했었다는 점 또한 잊어선 안 된다.
우리의 이익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데도 한쪽에서는 '왜구'니 뭐니 하면서 진영논리로 편가르기에 나선다.
조롱과 함께 말이다. 불매운동을 하자는 사람도 있다.
그 심정이야 이해한다.
그러나 일본의 주요 수출품은 부품·소재다. 완제품을 뜯어내서 일제 부품 소재만 걷어낼 수 있을까?
일제 부품·소재가 잔뜩 들어간 제품을 쓰고 있으면서 말로는 "일제 불매"를 외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감성을 강조해 불매운동에 나서면 상대국 국민들은 그저 쳐다보기만 할까?
우리의 대일 수출품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농수산물과 완제품이다. 일본 측이 우리에 대해 불매운동을 펼치면 먹잇감이 되기 딱 좋다.
식별하기 좋고, 다른 나라 물건으로 대체하기도 쉽다.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됐듯이 이번 아베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일본 여론은 찬성이 다수다.
일본 언론의 경우에도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 자체는 비판한다. 하지만 사태의 1차적 책임은 한국에 있다는 의견이 다수다.
눈을 부릅뜨고 소나무, 잣나무를 골라내야
불매운동이 올바른 해법이라면 나라도 총대를 메고 나서고 싶다. '토착왜구' 등 증오의 감정을 유도하는 혐오표현을 쓰면서 정치적 싸움박질에 골몰하는 것은 올바른 해법이 될 수 없다.
우리를 위기에서 건져주는 것은 '말장난'이나 '감성자극'이 아니다.
위기일수록 우리에겐 진정한 용기와 냉철한 계산이 필요하다.
광대뼈 끝에 총알이 스치고 귀가 찢어질 듯한 포성이 길 건너편에서 들리기 시작해야 비로소 누가 진정으로 용기있는 지휘관, 냉철하게 현실을 분석하고 상황에 맞춰 적절한 방향을 알려줄 지휘관인지 안다.
송백후조(松柏後凋)라고 했다. 거대한 전환의 물결이 몰려오는 이때에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가려내야 한다.
쭉정이와 덤불들은 어차피 역사의 불쏘시개와 땔감으로 사라져 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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