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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알리(가명), 예멘 전쟁을 피해 8000㎞ 도망쳐왔지만…/ 라만(가명), 예멘인 라만의 직장은 “현다이, 빅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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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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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전쟁을 피해 8000㎞ 도망쳐왔지만…

알리(가명)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2019년 06월 18일 화요일 제613호


사망자 6872명, 부상자 1만768명. 인구의 50%에 해당하는 1500만명이 기아 위기. 2015년 이후 굶주림과 질병으로 사망한 5세 미만 아동 수 8만4700명. 2014년 발발한 내전으로 아라비아반도 최남단에 있는 예멘은 전쟁터가 되었다. 2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수도 사나와 함께 예멘인들의 삶도 무너졌다. 예멘인 300만명이 징집과 공습을 피해 피난길에 올랐다.


그중 561명이 2018년 제주도에 입국했다. 예멘에서 제주공항까지, 1만㎞가 넘는 긴 여정 끝에 한국에 도착했지만 환영받지 못했다. 단 두 명이 난민으로 인정을 받았다. 비로소 눈앞에 나타난 ‘난민’에게 한국은 극도의 경계심을 보였다. 그로부터 1년, 한국 사회는 ‘8000㎞를 날아온 낯선 질문’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을까. <시사IN>은 출도 제한이 풀려 각지로 흩어진 예멘인을 만나 그들의 1년을 돌아봤다.


와츠앱 메신저를 열자 1897개의 알림이 떠 있었다. 알리 씨(37·가명)가 엄지손가락으로 채팅방을 눌렀다. 아랍어로 쓰인 메시지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현지 상황을 공유하는 채팅방에 어제오늘 사망한 이들의 이름이 쭉 나열돼 있었다. 그는 일일이 메시지를 읽는 대신 화면 하단의 화살표를 누르고 채팅방을 나왔다. “거기에 내 친구나 가족이 있을까 봐 잘 열어보지 못해요.” 2016년 사우디아라비아 연합군과 후티 반군의 공격을 받고 조카와 친구가 사망했다. 5월16일에는 수도 사나의 한 건물이 사우디아라비아 연합군의 공격으로 폭파되는 사건이 있었다. 메신저가 평소보다 더 시끄러웠다. 누군가 폭파된 현장에서 찍어 올린 사진 가운데 온몸에 잿더미를 뒤집어쓴 아이 다섯 명이 거리에 쓰러져 있었다. 알리 씨의 엄지손가락이 빨라졌다. “이래서 내가 이 채팅방 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니까요.”

전쟁으로부터 8000㎞를 도망쳐왔지만 전쟁은 그의 손에서 여전히 울렸다. 그의 아내와 두 딸이 아직 예멘에 남아 있어서 채팅방을 완전히 나오지 못한다. “중요한 연락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때마침 ‘카톡’ 알람이 울렸다. “내일은 4시 반입니다.” 알리 씨의 팀장이 출근 시간을 공지하는 메시지였다. 알리 씨는 능숙하게 “예” 하고 답장했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건설 현장에서 안전망을 설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18년 10월18일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뒤 경기도 기흥으로 올라와 찾은 일자리였다. 5월19일에는 서울시 강서구의 오피스텔 건축 현장으로, 5월20일에는 전북 익산의 공장 부지로 일터가 매번 바뀌는 식이다. 한국인 2명, 예멘인 2명이 팀을 이뤄 5m부터 40m짜리까지 미리 설치된 철근 구조물 위에서 초록색 추락방지망을 층별로 고정한다. 새벽 5시부터 시작한 망 설치가 6시간 동안 이어진다. 그러고 나서 점심시간을 포함해 1시간을 쉰다. 라마단 기간에는 따로 점심을 먹지 않고 그늘에서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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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윤무영
알리 씨는 말레이시아를 통해 제주에 왔다. 경기도오산을 거쳐 현재는 경기도 용인에 산다.
예멘에서 용인까지 그가 이동한 거리는 총 1만127㎞이다.


알리 씨는 말레이시아를 거쳐 2018년 5월2일 제주에 도착했다. 출입국·외국인청의 연계로 한 양식장에서 3개월간 일했다. 양식장 옆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가 숙소였다. 그해 8월 태풍 ‘솔릭’이 왔을 때 밤새 숙소가 흔들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던 적도 있다. 그곳에서  하루 12시간 일하고 한 달에 두 번을 쉬었다. 물고기 밥을 주고, 수조에 있는 물고기들을 옮기는 작업을 종일 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졌다. “쉬는 날에도 물고기 밥을 줘야 해서 양식장을 지켰어요.” 그렇게 받은 월급은 160만원이었다. 

그에 비해 현재 직장은 주 6일을 일하고 월급도 80만원이 더 많다. 일이 위험해서다. 얼마 전에는 손이 미끄러져 2m 높이에서 떨어졌다. 허리를 다쳐 한동안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알리 씨는 한국어로 “이제 괜찮다”라며 멋쩍게 웃었다. 이곳에서 일한 지도 벌써 7개월째다. 예멘인들 가운데는 여러 일터를 전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는 비교적 빨리 정착했다. 더 이상의 변화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잘리지만 않는다면’ 일을 계속하고 싶다.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좋아요. 제가 예멘에서 하지 못했던 것이거든요.”

“전쟁이 끝나도 예멘으로 갈 수 없어요”

그는 예멘에서 공학과 법학을 전공한 뒤 공화국 수비대(Republican Guard) 군인으로 일했다. 공화국 수비대는 2012년 물러난 살레 전 대통령이 창설한 군이었다. 2015년 전쟁이 발발하면서 그의 삶에 위기가 닥쳤다. 후티 반군은 예멘군의 본거지를 찾아다니며 공격했고, 예멘군은 공화국 수비대를 전 독재정권의 유산으로 간주해 군으로 복귀하는 이들을 탄압했다. “전쟁에 나가서 죽거나, 예멘군에게 죽거나 둘 중 하나였을 거예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예멘을 떠났다. 전쟁이 끝난다 하더라도 참전하지 않은 군인은 예멘 군형법상 사형에 처하는 등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알리 씨는 인터뷰 내내 이름과 얼굴을 가려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저와 관련 있다는 게 들통 나면 가족들이 위험해질 수 있거든요.”

한국에 온 지 1년. 그동안 한국어 이름도 생겼다. 제주 ‘사마리안들’에서 만난 한국인이 그에게 ‘진호’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주었다. 올해 3월부터는 일요일마다 수원 이주민센터에서 2시간 동안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수업이지만 최근 경기 지역에 살고 있는 예멘인이 늘면서 함께 듣는다. “한국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해주고 싶어요.” 제주와 서울에서 수차례 진행된 난민 반대 집회를 확인하며 그는 당황스러웠다. 전쟁을 피해 도망쳐왔지만 설명할 새도 없이 ‘가짜 난민’이나 ‘범죄자’로 낙인찍혔다. “주변 나라들은 이미 난민 포화상태였어요. 우리에겐 다른 나라를 선택할 권한이 없었어요.”

그가 예멘을 떠날 때쯤 태어난 둘째 딸이 벌써 세 살이 되었다.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했다. 후티 반군에게 신분이 노출되면 가족에게 위협이 될 수 있어서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한다. 최근에 받은 연락에서는 두 딸이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후티 반군이 물과 전기를 끊고 있어요. 후티 반군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황이에요. 내가 버는 돈 대부분을 예멘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요.” 

2주일 전에는 그의 가족이 머무르는 숙소에서 불과 300m 떨어진 곳에서 폭탄 테러가 벌어졌다. 알리 씨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와츠앱 채팅방에 들어갔다. 쏟아지는 메시지와 아수라장이 된 사진들 사이에 아는 얼굴은 없었다.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가족들을 어디로든지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했는데….” 알리 씨는 하루에 다섯 번 아이와 아내가 부디 무사하기를 바라며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8000㎞ 떨어진 이곳에서 그는 가족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4855



예멘인 라만의 직장은 “현다이, 빅 컴퍼니”

라만(가명)

영암·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2019년 06월 18일 화요일 제613호


2층 침대에서는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룸메이트 모하메드 씨(21)가 자고 있던 라만 씨(27·가명)를 흔들어 깨웠다. 시계는 오후 3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전날 ‘수후르(Suhoor)’를 먹었다. 수후르는 라마단 기간에 해가 질 때까지 금식을 한 뒤 여러 사람이 모여 해 뜰 때까지 먹는 식사를 의미한다. 라만 씨를 포함해 6명이 예멘 전통 빵 ‘말라와’와 닭고기를 올린 밥, 튀긴 생선을 직접 만들어 밤새 먹었다. 출근을 하지 않는 일요일이라 가능했다. “일요일 이 시간은 다 자고 있을 시간이에요. 늦게까지 식사를 하느라 아침 7시가 되어서 잠들었어요.” 

“앗살라무 알라이쿰.” 5월26일 전남 영암군 현대삼호 사원아파트 앞에서 라만 씨를 마주친 주민 한 명이 인사를 건넸다. 이곳에서는 한국어를 듣기가 쉽지 않다. 비상대피 안내도와 관리사무소의 안내문도 영어와 베트남어로 번역되어 있다. 4개 동으로 이루어진 1차 아파트는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숙소다.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는 7000여 명, 그중 이주노동자가 1000명에 달한다. 중국동포 200여 명을 포함해 고려인·베트남·우즈베키스탄·네팔 등 출신이다. 라만 씨가 이곳에 살기 시작한 건 올해 3월부터다. 현대삼호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전기 배관 만드는 일을 한다. “아직은 용접을 하는 보스를 옆에서 돕고 있어요.” 사원아파트이지만 회사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오자마자 자전거 한 대를 마련했다. “걸어가면 40분 정도, 도로를 따라 자전거로 달리면 10분 정도 걸려요.” 라만 씨 말을 뒷받침하듯 아파트 단지 앞은 자전거로 빼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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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말레이시아를 거쳐 제주도에 들어온 라만 씨는 현재 전남 영암에 산다.
그가 예멘을 떠나 영암까지 이동한 거리는 총 1만819㎞이다.


최근 들어 불면증이 심해졌다. “잠을 못 자서 일할 때 머리가 아파요.” 불면증의 원인 중 하나는 아내다. 라만 씨는 2017년 아내와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예멘을 떠나야 했다. 후티 반군의 징집을 피해서였다. 그 후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내와 떨어져 지내고 있다. “이렇게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요. 아내가 정말 보고 싶어요.” 예멘과 한국의 시차는 6시간. 밤늦게까지 연락을 주고받을 때가 많다. 채팅방에는 하트 이모티콘이 가득했다. 2018년 5월6일에 제주에 입국한 뒤 5개월은 횟집에서 설거지를 하고, 한 달은 생선 넣는 아이스박스를 만드는 곳에서 일했다. 2018년 10월 난민 심사 결과가 발표되고 착잡했다.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가족을 데려올 수 없기 때문이다. 출도 제한이 풀렸지만 어디에 가서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때 목포로 갔던 다른 친구에게서 소식이 들려왔다. “숙식은 문제없어. 다른 예멘인도 많아.” 라만 씨는 서둘러 짐을 싸 목포로 향했다.

인력 수급 어려웠던 조선소 협력업체에 취업 

라만 씨를 비롯해 현재 예멘인 100여 명이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선박 페인트칠, 도료 배합, 용접, 선체 녹 벗기기 등을 하고 있다. 이곳에 예멘인이 늘어나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부터다. 예멘인들이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시점이다. 당시 현대삼호중공업 협력회사협의회에 소속된 협력회사 대표 7명이 예멘인들을 채용하기 위해 제주에 내려와 취업설명회를 열었다. 인력 수급이 숙제였던 조선소 협력업체들에게 이들은 일종의 자구책이었다. 조선소의 외국인 인력 중 인도적 체류 허가 신분은 현재 예멘인뿐이다.

라만 씨는 시간당 8350원을 받고 하루 9시간씩 주 6일을 일한다. 잔업이 많은 달은 240만원, 보통 200만원 정도를 받았다. 업무 강도가 높고 잔업도 많았지만, G-1(난민 신청자) 비자 소지자가 주로 가는 일자리에 비해서는 복지가 좋았다. 사내 협력사의 모든 노동자에게 숙식이 무료로 제공됐다. 식사에는 할랄 음식도 포함돼 있었다. 1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기도실도 회사 내부에 있었다. “이전 일터에서는 말이 안 통해서 힘들었는데 여기엔 예멘인도 많고 다른 아랍 사람도 많아서 좀 더 편해요.” 이주노동자가 많다 보니 업무 시간이 끝난 저녁에는 회사에서 한국어 수업도 열어줬다. 라만 씨는 수업을 들은 지 2주째다. 라만 씨의 동료인 검단일리 씨는 최근에 4개월간의 한글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수료증도 받았다. 아래에는 ‘현대삼호중공업㈜ 협력사지원팀장’ 직인이 찍혀 있었다.

내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에는 이유가 있었다. 라만 씨보다 4개월 전에 이곳에 왔던 모하메드 씨는 허리에 복대를 차고 있었다. “일을 하다가 발이 미끄러져서 허리를 다쳤어요.” 척추에 생긴 염증이 치료될 때까지 일을 쉬고 있다고 했다. 모하메드 씨는 7개월째 일하지만 아직 건강보험이 없다.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으면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는 있다. 모하메드 씨는 건강보험 가입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했고, 그가 취업한 회사에서도 건강보험에 따로 가입시켜주지 않았다. 라만 씨도 모하메드 씨도 근로계약서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실제 계약을 맺은 건 하청업체인데 회사마다 계약 조건이 달랐다. “사인은 했는데 제가 근로계약서를 가지고 있진 않아요. 하나는 출입국·외국인청에 있고, 다른 하나는 사장님이 가지고 있거든요.” 회사 이름을 묻자 라만 씨가 작업복에 새겨진 문구를 보며 말했다. “현다이, 빅 컴퍼니.” 라만 씨의 출입 카드에는 하청업체인 ○○산업, 모하메드 씨는 □□산업이라고 쓰여 있었다.


숙소 바로 앞에는 바다가 펼쳐졌다. 날씨가 맑아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의 크레인 수십 개가 선명하게 보였다. 라만 씨는 잠이 오지 않을 때면 혼자 바닷가를 찾는다.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거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할 때 와요.” 그럴 때면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매일 안부 전화를 하죠.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요.” 숙소로 돌아오니 통돌이 세탁기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7명이 함께 살다 보니 휴일에는 온종일 빨래를 해야 한다. 방 한쪽에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때 묻은 회색 작업복이 잔뜩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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