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대통령을 연기한 것이 ‘정치 경력’의 전부인 코미디언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될 것이 확실시된다.
AP통신은 22일(현지시간) 전날 치러진 우크라이나 대선 결선투표 개표를 52% 진행한 결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1) 후보가 73%를 얻어 25%를 얻은 현직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53) 후보를 큰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할 것이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젤렌스키는 당선이 확실시되자 기자회견을 열어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다”면서 “우크라이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구 소련 국가들을 향해 말하고 싶다. ‘우리를 봐라. 모든 게 가능하다’”고 밝혔다. 포로셴코 대통령은 출구조사 결과 73.2% 대 25.3%로 자신이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개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대통령직은 떠나지만 정치는 떠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젤렌스키는 2015년 방영된 TV 드라마 <국민의 종>에서 교사 출신 대통령을 연기해 ‘국민배우’가 됐다. 젤렌스키는 TV 토론이나 언론 인터뷰 등을 기피하고 자신의 코미디 프로그램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선거운동을 했다. 젤렌스키는 선거 과정에서 뇌물수수 전력이 있는 공직자의 공직 진출을 영구적으로 금지하고 러시아와의 직접 협상을 통해 2014년 이후 러시아 반군과의 교전이 지속되고 있는 동부 지역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드라마 <국민의 종>의 한 장면.사업가 출신으로 우크라니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인 포로셴코 대통령은 2014년 혁명으로 친러시아 정권이 축출된 이후 정권을 잡았다. 그는 부패 척결, 유럽연합(EU)·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추진, 러시아에 병합된 크림반도와 친러 반군들이 장악한 동부 지역 탈환 등을 약속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포로셴코 대통령은 국방 강화를 외치며 국방비를 늘렸으나 대선 결선 투표(3월31일)을 한 달여 앞둔 지난 2월 방산 비리가 터졌다. 포로셴코의 사업 파트너였던 올리가르히(구 소련 해체 후 등장한 신흥 재벌)의 아들이 러시아산 무기를 헐값에 사들여 우크라이나 국방부에 고가에 팔아넘긴 사실이 탐사보도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젤렌스키 앞에는 부패 청산, 경제 살리기,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반군과 교전이 진행 중인 동부 지역 탈환 등의 과제가 있다. 공직을 맡은 적이 없는 그가 당면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하지는 미지수다. 가디언은 그가 부패 청산이나 경제 살리기와 관련해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젤렌스키의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사실상 대선 캠페인 창구 노릇을 했던 방송채널 1+1을 소유한 올리가르히 콜로모이스키와의 연루 의혹을 푸는 것도 걸림돌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