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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약혐주의)누군가 자네 이름을 부르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대답을 해서는 안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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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5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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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없는 호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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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지금으로부터 약 칠백 년 전에 시모노세키 해협 단노우라에서 오랫동안 패권을 다퉈오던 겐지와 헤이케이의 마지막 전투가 있었다.
여기에서 헤이케는 완전히 패하여 헤이케의 여자나 아이들, 지금은 안토쿠천황으로 기억되는 어린 천황도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이 바다와 해변 역시 약 칠백 년 동안 망령에 씌어 있었다

나는 이전에 다른 책에서 헤이케라 불리는 단노우라 특유의 기묘한 게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이 게의 등딱지에는 사람 얼굴 모양이 새겨 있고, 거기에 헤이케 사무라이의 혼령이 붙어 있다. 그 해안을 따라가면 이것 말고도 많은 기묘한 일을 보고 듣게 된다
달이 없는 밤에는 으스스한 불이 수천 개씩 해변을날아다니며 파도 위에서 춤춘다. 어부들은 이 푸르스름한 불을 도깨비불이라 부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떠들씩한 전투소리와도 같은 커다란 함성이 바다 쪽에서 들려온다.
사실 이전에는 헤이케의 망령들도 지금보다 훨씬 사나웠다.
망령은 밤마다 근방을 다니는 배들의 현에 몸을 들이대어
배들을 가라앉히고자 하였다.
혹은 헤엄치고 있는 사람을 노려 차례차례 물속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아가마가세가제에 아미다지(단노14 전투 이후 안토쿠 천황과 전사자를 모신 절)가 세워진 것은 이러한 사자의 혼령을 공양하기 위한 것으로, 절 근처 해변 쪽에는 묘지도 조성되었다.

그리고 절의 경내에는 물속에 투신하여 목숨을 잃은 천황을 위시하여 가신 중에서 중요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한 탑도 세워졌다.

이 혼령들의 사후명복을 빌기 위한 법회가 정해진 날에 거행되었다.

절과 묘가 세워지고부터는 헤이케의 망령들도 예전만큼 소란을 피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씩 기묘한 짓을 저지르곤 했다

아무래도 망령들은 성불하여 완전히 안정을 찾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몇백 년쯤 전에 아카마가세키에 호이치라는 맹인이 았다.

그는 비파를 타며 노래하는 솜씨가 좋기로 유명했다.
어릴 때부터 기예를 훈련받아 젊을 때 이미 스승들을 능가했다고 한다.
그는 비파법사로 생계를 유지했는데,
겐지와 헤이케이야기를 노래할 때 특히 뛰어나서 호이치가 단노우라 싸움
대목을 부르는 모습은 귀신도 울린다고들 할 정도였다

아직 비파법사로 이름을 떨치기 전, 호이치는 가난의 괴로움을 사무치게 맛보았다.

하지만 운 좋게 그를 도와줄 좋은 사람을 만났다.

시가와 음악을 좋아하던 아미다지의 주지는 가끔 호이치를 절에 불러 비파에 맞춰 헤이케 이야기를 불러달라고 했다.

젊은이의 뛰어난 기예에 감탄한 주지는 얼마 뒤 호이치에게 절에 기거할 것을 권했다. 호이치는 그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였다.

절 안에 방한칸을 얻은 호이치는 밥과 잘 곳을 제공받는 대신, 별다른 볼일이 없는 저녁 무렵 가끔 비파를 타서 주지를 즐겁게 해주었다.
어느 여름밤 주지는 죽은 단가의 법사에 불려갔다
그가 동자승을 데리고 외출하자 절에는 호이치 혼자 남았다.

밤은 무더웠고 눈이 보이지 않는 호이치는침소 앞 툇마루 바람을 쐬고 있었다.
마루는 아미다지 뒤편의 작은 마당을 향해 있었다.

거기서 호이치는 주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비파를 타면서 쓸쓸함을 달래고 있었다.

한밤중이 지났는데도 주지는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침소에 들기에는 여전히 너무나도 더웠기에 호이치는 밖에 남아 있었다.

마침내 문 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마당을 가로질러 마루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고는 호이치를 마주하고 멈춰 섰다.

그러나 주지가 아니다.

갑자기, 사무라이가 아랫것을 부를 때처럼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굵직한 목소리가 맹인의 이름을 불렀다

'호이치!'
호이치는 깜짝 놀라 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목소리는 한번 더 엄격한 명령조로 “호이치" 하고 불렀다
눈이 보이지 않는 호이치는 상대의 목소리에 깃든 위협적인 어조에 겁에 질려 대답했다.
“저는 눈이 안 보입니다.
저를 부르시는 분은 어디의 누구십니까?”

"아무 걱정할것 없다"
낯선 상대방은 조금 전보다 온화해진 말투로 대답했다
"나는 이 근처 절에 숙박하고 있는 사람인데, 전언을 부탁받아 여기 왔다 .내가 현재 모시고 있는 주군은 신분이 매우 높으신 고귀한 분이신데, 지금 지체 높은 친구 분들 여럿과 함께 아카미가세키에 체류중이시다.
단노우라 전투의 옛 전장을 보고 싶다 하셔서 오늘 그곳에 납시었다.
그 전투 광경을 노래하는 네 기예가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꼭 한곡 들려달라는 분부이시다.
사정이 이러하니 비파를 들고 나를 따라 나리를 비롯해 손님들이 기다리고 계시는 저택까지 지금 곧 와줘야겠다"

당시에는 사무라이의 명령을 가볍게 무시할 수 없었다.
호이치는 조리를 신은 뒤 비파를 집어들고는 낯선 사무라이와 함께 나섰다.
사무라이는 길을 잘 안내해주었지만, 걸음을 바삐 옮기도록 재촉했다.

호이치를 이끌고 가는 그의 손은 강철로 빚은 듯 단단했고 큰 보폭으로 걸을 때마다 금속성이 들려왔는데, 이를 통해 호이치는 사무라이가 갑옷과 투구로 무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틀림없이 어딘가에 있는 지체 높은분의 처소를 경호하는 무사일 것이다.
호이치의 의구심은 사라졌다.

그는 이거 행운을 얻었구나 하고 남몰래 기뻐하기까지했다.

사무라이가 '신분이 매우 높으신 고귀한 분'이라고 한 이상 자기 노래를 듣고 싶어한다는 나리가 가장 높은 다이묘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사무라이가 걸음을 멈췄다
호이치는 그들이 커다란 문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
아미다지의 산문을 제외하면 시모노세키의 이 근방에 이렇게 커다란 문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호이치가 희한하게 여기고 있는데 사무라이 가 "문을 열라!"하고 외쳤다.
그러자 빗장을 여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사람은 문을지나 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또 다른 입구 앞에 섰다
여기서 사무라이는 커다란 소리로 불렀다
"안에 계십니까? 지금 호이치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자 급한 발소리, 장지 문 여는 소리 , 덧문 밀어올리는소리, 소곤거리는 여자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들의 말씨를 듣고 호이치는 어딘지 모를 지체 높은 집안을 모시는 여인들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자신이 어디로 이끌려왔는지 여전히 짐작도 가지 않았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돌계단을 몇 개 올라간 후 마지막 단에서 조리를 벗었다.

잘 닦은 마루가 깔린 긴 복도를 따라가며 시녀의 손이 호이치를 안내했다.

기둥이 있는 모퉁이를 몇 번이나 돌았는지 기억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놀랄 만큼 넓은 다다미 방을 몇 칸이나 가로질러 널찍한 연회석 중간쯤에 나섰다.

여기에 수많은 높으신 분들이 모여 계시는구나 하고 호이치는 생각했다.

버스럭거리는 옷자락이 숲속의 잎사귀가 서로 스치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소리도 들린다.
귀족들의 말투였다
호이치는 마음을 편히 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를 위해 방석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위에 앉아 악기의 상태를 바로잡고 있자니 시녀들을 관리하는 시녀장인 듯한 사람의 목소리가 호이치에게 이렇게 고했다.
"헤이케를 노래하고 비파를 타시오."

전곡을 부르려면 몇 날 밤이 걸린다.
그래서 호이치는 마음을 다잡고 물었다

"전곡은 금방 부를 수는 없으니 어떤 권을 불러드리면 좋겠습니까?"
시녀장이 대답했다

"단노우라 전투 편이 특히 정취가 깊다고 알고 있습니다.그 대목을 부르십시오.”

그래서 호이치는 소리를 드높여 괴로운 전투를 시작했다.
울리는 비파의 음색은 노가 삐걱거리는 두배가 서로 돌진하는 듯, 또 활이 윙윙거리면서 어지러이 나는듯했고, 무사의 우렁찬 부르짖음이나 뱃전을 구르는 소리,투구에 강철이 부서지는 소리, 나아가서는 찔려 죽은이가 허망하게 파도 사이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호이치의 좌우에서 감동하여 칭찬하는 소리가 숨을 돌릴 때마다 들려왔다

“이 얼마나 훌륭한 기예인가.”
“우리들 고장에서는 이같은 노래를 들은 적이 없소."
아니 일본을 다 뒤져도 호이치와 같은 헤이케 이야기꾼은
없을 것이오."
점점 더 신이 난 호이치는전보다 더 솜씨 좋게 노래하고 연기했다. 주위에서는 감탄의 침묵이 깊어갔다. 하지만 마침내
아름답고도 무력한 이의 운명을 노래하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여자들의 애처로운 최후와 팔에 어린 천황을 안은 채 바다에 뛰어든 니이노아마의 투신을 노래하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 듣던 이들은 모두 일제히 비통한 탄식을 길게 내질렀다.

그리고 미친 듯이 커다란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호이치는자신의 소리가 이끌어낸 비애의 격렬함에 저도 모르게 겁을 먹고 말았다.

오랫동안 오열과 흐느낌이 계속되었지만 이윽고 한탄하는 소리는 사라졌고, 이어지는 침묵 속에 시녀장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여자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비파를 타고 헤이케를 노래하는 데는 그대에게 견줄 자가 없을 만큼 능하다고 들었으나, 오늘밤 노래해 보인 만큼 기예가 뛰어난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주군께서는 그대에게 마땅한 사례를 하고 싶어하십니다 오늘은 분명 돌아가야만 하시겠지요. 그러니 내일 밤도 오늘밤과 같은 시간에 오셨으면 합니다. 오늘밤 그대를 안내한 사무라이가 데리러 갈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려야만 할 일이 있습니다 주군이 아카마가세기에 체류하시는 동안 그대가 이곳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됩니다.
지체 높으신 분의 미행인 까닭에 이 일에 관해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십니다
이제 절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호이치가 감사의 인사를 마치자 여자의 손이 호이치를 저택 현관으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조금 전에 자신을 데려온 사무라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라이는 호이치를 절마루까지 데려온 후 거기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호이치가 돌아왔을 때는 벌써 동 틀 무렵이었다. 아무도 호이치가 절을 비웠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주지는 밤늦게돌아왔기에 호이치가 자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낮 동안 호이치는 좀 쉴 수 있었다.
이 희한한 일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밤이 되자 또 사무라이가 데리러 와서 높은 사람들의 모임에 데리고 갔다.
호이치는 전날 밤과 같이 또 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이 두 번째 외출로 절을 비웠던 것이 뜻밖의 일로 들통 나버렸다.

다음날 아침 돌아왔을 때 호이치는 주지 앞에 불려나갔다.

주지는 부드럽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호이치, 자네 때문에 안절부절못했다. 눈이 안 보이는 자네가 혼자서 이렇게 늦은 밤에 외출한다는 건 영 불안한 일이야,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외출을 했는가? 나간다면 하인이라도 아무나 같이 보냈을 텐데, 대체 어디를 갔었나?'

호이치는 얼버무리듯이 대답했다
"주지스님, 용서하십시오. 조금 사사로운 볼일이 있어서요.
다른 시간에는 하기 힘든 일이었기에 그리 되었습니다."

호이치의 머뭇거림에 주지는 기분이 상했다기보다는 놀랐다. 그는 호이치의 대답에서 어딘가 어색한 솔직하지 못함을 느끼고 좋지 못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이 젊은이가 귀신에라도 홀린 것은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그 이상 캐묻지는 않았지만 주지는 호이치의 동정을 지켜보라고 일꾼들에게 슬쩍 일러두었다.

그리고 밤이 되어 또 절을 빠져나가기라도 하면 뒤를 밟도록 명했다

과연 그날 밤 호이치가 절을 빠져나가려 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하인들은 즉각 초롱을 들고 뒤를 밟았다.

그날 밤은 비가 내려 무척 어두웠다.
절 사람들이 한길로 나오기 전에 호이치는 벌써 모습을 감췄다.
아무리 봐도 그가 무척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길도 좋지 않았고, 호이치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기묘한 일이었다

머슴들은 마을을 서둘러 둘러보고 호이치가 갈 법한 집을 죄다 찾아갔다.

그러나 그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하인들은 결국 해변에서 발길을 돌렸는데, 이때 웬걸, 아미다지의 묘지에서 격렬한 비파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이곳은 캄캄한 밤이면 보통 도깨비불이 떠돌곤 했는데, 그 외에는 아무런 빛이 없어 칠흑같이 캄캄했다.

놀란 사람들은 곧장 묘지로 달려갔다. 그리고 빗속에 홀로 안토쿠천황의 묘지 앞에 앉아 비파를 타며 단노우라 전투 대목을 큰 소리로 하는 호이치의 모습을 발견했다.

호이치의 등 뒤와 주위의
모든 무덤이란 무덤 위에 수많은 도깨비불이 흡사 촛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일찍이 이렇게 많은 도깨비불이 사람들 눈에 띈 적은 없는 듯 했다
“호이치 씨. 호이치 씨," 머슴들이 외쳤다. "당신은 귀신에 홀린거요 호이치 씨.."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호이치에게는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정신없이 비파를 울리며 점점 더 광적으로 단노우라 전투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하인들은 호이치의 몸을 붙들고는 그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호이치 씨, 호이치 씨. 빨리 같이 절로 돌아갑시다"
호이치는 나무라듯 대답했다.

"이처럼 송구스러운 곳에서 노래를 방해하다니, 용서받지 못할겁니다"
이 말을 들으니 아무리 기묘한 상황이라고는 해도 하인들은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호이치가 귀신에 홀린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하인들은 그를 붙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운뒤 서둘러 절로 끌고 갔다.
절에 도착한 그들은 주지의 명령으로 곧장 비에 젖은 호이치의 옷을 갈아입히고, 먹을 것과 마실것을 억지로나마 권하였다.

그러고 나서 주지는 호이치의 기막힌 거동에 관해 자초지종을 들려달라고 요구했다

호이치는 오랫동안 입을 열까 말까 망설였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훌륭한 주지스님을 정말로 걱정시키고 화나게 했음을 깨닫자, 더이상 숨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사무라이가 처음에 찾아온 때부터 생긴 일을 전부 털어놓았다

주지는 말했다
“호이치 불쌍하게도 자네는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했네, 전에 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어.
뛰어난 기예를 타고난 것이 자네에게 이런 생각지도 못한 재난을 불러왔군. 이제는 자네도 알겠지만, 자네는 어딘가의 저택에 불려간 게 아닐세. 실은 매일 밤 묘지에서 헤이케의 무덤에 둘러싸여 밤을 지샌 것이야. 절 사람들이 오늘밤 자네를 발견한 곳은 안토쿠 천황의 무덤 앞일세.
자네는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그곳에 앉아 있었어. 망자들에게 정말로 불려갔었다는사실을 제외하면 자네가 믿고 있던 것은 전부 다 환영이야
일단 망자가 하라는 대로 한 이상 자네는 그들의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네. 이리 되었으니 만일 또 한 번 망자가 하자는데로 하게 되면 자네는 그들에게 갈기갈기 찢길 게 분명하네.
어찌되었건, 늦든 빠르든 간에 자네는 목숨을 잃었을게야
그러나 나는 오늘밤도 자네와 함께 있을 수가 없네. 다른 높은 분의 법사로 부름을 받았다네.
허나 나가기 전 네 몸에 경문을 써서 자네 몸에 해가 없도록해두지.”
날이 저물기 전에 주지와 동자승은 호이치를 발가벗기고는
붓으로 그의 가슴과 등, 얼굴, 복, 손발과 발바닥 등 전신에 반야심경 문구를 써넣었다. 일이 끝나자 주지는 호이치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밤, 내가 나가면 자네는 툇마루에 앉아 가만히 기다리도록 하게.
허나 누군가 자네 이름을 부르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대답을 해서는 안되네.
움직여서도 안 되고, 아무 말도 말고 잠자코 명상하듯 앉아 있게. 만일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면 자네는 갈기갈기 찢기고 말 게야. 당황해서 도움을 청하거나 해서도 결코 안 되네. 도움을 청해도 소용없기 때문이지.

지금 말한 것처럼만 하면 위험할 게 없네. 그리고
그걸로 두번 다시는 걱정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될 게야


날이 저물자 주지와 어린 중은 절을 나섰다. 호이치는 주지
가 시킨 대로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비파를 마루 위에
올려두고는 참선하는 듯한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기침을 하거나 숨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고
앉아 있었다

그러자 길에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문을 지나, 마당을 가로질러, 툇마루로 다가와, 호이치 바로 앞에서 멈췄다. "호이치"
깊숙한 목소리가 불렀다.
그러나 눈이 보이지 않는 호이치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호이치"
목소리가 한 번 더 퉁명스레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다시 세 번째로 거칠게 “호이치” 하고 소리쳤다
호이치는 돌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자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대답이 없군. 곤란한 걸..이놈이 어디 있는가 찾아봐야겠어"
무거운 발이 툇마루를 딛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길은 천천히 다가와서 호이치 곁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죽음과 같은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동안 호이치는 전신이 심장 고동에 맞춰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거친 목소리가 호이치 곁에서 중얼댔다.
"비파가 여기 있군. 허나 비파법사는 두 귀만 보일 뿐。
과연 이래서는 대답을 할 수 없는 게 당연하군
대답하려 해도 대답할 입이 없는 게다. 이 자에게 남아 있는 것은
귀뿐이야 그렇다면 가능한 한 말씀에 따랐다는 증거로
주군에게 이 두 귀를 가져가도록 하자"

그순간 호이치는 좌우의 귀가 강철 같은 손가락에 뜯겨나가는 것을 느꼈다. 고통은 끔찍했지만 그래도 호이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묵직한 발걸음은 툇마루를 따라 사라져갔고 마당에 내려서더니 한길로 접어들어 들리지 않게 되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호이치는머리 양 옆에서 진하고 뜨끈한 것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느꼈지만, 까딱할 기력조차 없었다
주지는 동이 트기 전에 돌아왔다.
절 뒤편으로 서둘러 툇마루에 오르던 그는 뭔가 끈적끈적한 것을 밟고 미끄러졌다. 그러고는 오싹해져서 비명을 질렀다.

손에 든 초롱 불빛으로 끈적끈적한 것이 피임을 알아차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호이치는 명상에 빠진 자세 그대로 거기 앉아 있었다.

상처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오오. 호이치, 이렇게 가여울 데가.”

주지는 떨리는 목소리로외쳤다

"이는 또 무슨 일인가. 자네, 부상을 입었나?"

주지의 목소리에 눈이 보이지 않는 호이치는비로소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갑자기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울면서 밤중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다.
"호이치, 미안하게 되있다. 호이치"

주지는 외쳤다
"미안하네, 내 잘못이네. 내 불찰이야 자네 온몸에 빠짐없이 경문을 적었다고 생각했는데, 귀에도 쓰는 것을 잊어버렸군. 그 부분은 동자승에게 맡겨두었는데 제대로 썼는지
확인하지 않은 것은 미안하네. 내 실수였네…… 허나 이제는
도리가 없네. 가능한 한 빨리 자네 상처를 치료하는 수밖에 자, 기운을 내게. 이제 위험한 일을 당할 일은 없을거야, 두 번 다시 그런 망자들에게 불려 갈 일은 없을테니"

훌륭한 의사의 치료 덕분에 호이치의 상처는 머잖아 차도를 보였다. 호이치가 당한 희한한 사건은 사방팔방에 퍼졌고 그는 대단히 유명해졌다.

고귀하고 지체 높은 분들이 몇 사람이나 호이치의 노래를 들으러 아가마가세키에 찾아왔다.

대단한 액수의 보답을 받은 호이치는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호이치는 오로지 귀 없는 호이치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는 이야기다.

괴담 (怪談、Ghost Story,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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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판타지 | 일본 | 164분

감독 고바야시 마사키

출연 미큐니 렌타로, 아라타마 미치요, 와타나베 미사코, 나카다이 타츠야, 키시 케이코, 나카무라 카츠오, 탄바 테츠로, 나카무라 가네몬

귀 없는 호이치, 흑발, 설녀, 찻잔 속에
네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는데 미학적으로 뛰어나고
일본 특유의 공포분위기가 있어서 소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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