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새 보물’ 전시회
간송미술관 소장 22건 관람포인트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추사 김정희, 겸재 정선….
요즘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나들이 하면 만날 수 있는 우리 서화의 거장들이다. 오는 9월27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2017-2019’에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전시는 최근 3년 간 새로 지정된 국보·보물 157건 중 83건 196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특히 간송미술관 소장 유물 22건이 이례적으로 나들이해 사실상 ‘간송 특별전’으로 불린다.
간송미술관은 국보 12건과 보물 32건 등 총 48건의 지정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1960~70년대 상당수 지정된 데 이어 지난 2017~2019년에 ‘미인도’ 등 22건이 ‘보물’에 추가됐다. 알려진대로 이들 유물은 일제강점기 국외로 빠져나갈 위기에서 간송 전형필(1906~1962)이 가산을 처분해가며 사들인 것이다. 간송미술관은 매해 봄·가을 정기전시회를 열어왔지만 올해는 수장고 신축 등 문제로 전시회가 없다. 이번이 당분간 간송 작품을 접할 유일한 기회란 얘기다.
게다가 22건이 한번에 선보이는 게 아니라 3주 단위로 교체 전시된다. ‘미인도’는 8월12일 온다. 전시는 휴관일 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2시간 200명 제한으로 예약 운영된다. 박물관 측은 “이번 주말 예약분은 매진이며 ‘미인도’ 전시 시점의 예약도 밀려들고 있다”고 전했다. 각 시기별로 꼭 봐야할 작품과 전시 포인트를 국립중앙박물관 이수경 학예연구관의 안내로 소개한다.
한눈에 보는 금강산 1만2000봉
보물 제1951호 정선 ‘풍악내산총람도(楓嶽內山總覽圖)’
절대 한눈에 다 볼 수 없는 내금강 가을 풍경을 한 폭에 담은 대작이다. 왼쪽에 내금강 최고의 전망대 정양사를, 오른쪽에 일만이천봉을 배치하고 그 위로 가장 높은 비로봉을 두어 금강산 전체를 한눈에 들어오게 했다. 필선을 다채롭게 구사해 바위, 흙, 물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겸재 정선(1676∼1759)은 정양사의 문루인 헐성루(歇惺樓)에서 바라본 일만이천봉을 묘사하되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게 아니라 경치가 가진 특성을 더욱 아름답게 드러냈다. 금강산 그림으로 명성을 얻은 정선의 기량이 절정에 달한 작품으로 실재하는 산수를 그리는 가장 좋은 방식을 일러준다.
조선 사람 일상 유머러스하게 포착
보물 제1987호 김득신 ‘풍속도 화첩’ 중 ‘병아리를 채가는 들고양이(野猫盜雛)‘
김득신(1754~1822)은 정조 때 도화서 화원으로 활약하며 선배인 김홍도(1745~1806 이후)를 따랐다. 김홍도 풍속화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구체적인 상황 설정과 서정적인 배경 묘사에서 독보적인 세계를 이뤘다.
이 그림은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 때문에 벌어진 소란을 그렸다. 남자는 담뱃대를 휘두르며 고양이를 잡으려다 마루에서 떨어질 판이다. 고양이를 피해 흩어지는 병아리들과 새끼를 되찾으려 달려 나가는 어미 닭이 대조적이다. 이수경 연구관은 “긴박한 순간을 정지화면처럼 포착한 재치에 반했는지 젊은 관객들이 특히 좋아한다”고 전했다. 김득신 풍속화첩은 총 6점이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데, 각 회차마다 2점씩 선보인다.
자연을 벗 삼은 선비의 풍류
보물 제1970호 김홍도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봄날 길을 나선 선비가 꾀꼬리 노래에 홀린 모습이다. 선비는 부채를 쥔 채 눈과 귀를 집중하고, 머슴아이도 버드나무 위로 시선을 옮긴다. 생전에 ‘오늘날의 신필’이라 칭송받았던 김홍도의 무르익은 솜씨가 돋보인다. 동료 화원인 이인문이 꾀꼬리의 생태를 아름답게 은유한 시가 그림에 격조를 더한다.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감수성을 사려 깊게 표현했다. 김홍도는 새소리의 청각적 자극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며 시적인 정취까지 담아냈다. 그림에 ‘심취호구(心醉好求, 마음으로 취하여 즐거이 구하다)’라는 인장과 함께 자신의 이름과 자 ‘홍도(弘道)’와 ‘사능(士能)’을 찍었다.
자유분방하되 절묘한 균형의 추사체
보물 제1978호 김정희 ‘대팽고회(大烹高會)’
김정희(1786~1856)가 세상을 떠난 해에 쓴 대련(對聯), 즉 한 쌍으로 이뤄진 족자다. 중국 명나라 문인 오종잠의 ‘중추가연’ 시구를 인용해 두 글자를 바꾸어 썼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본문 외에 양쪽에 작게 쓴 협서(脅書)는 보다 날카로운 행서로 써서 변화를 줬다.
“최고 가는 반찬이란 두부나 오이, 생강과 나물/ 최고 가는 모임이란 부부와 아들딸과 손자” 평범한 일상이 가장 높은 경지라는 노년의 깨달음이 소박하면서도 노련한 필법과 혼연일체를 이룬다. 이 연구관은 “귀공자로 살았던 추사가 유배 생활을 겪고 말년에 인생을 돌아보는 자세가 요즘 말로 ‘소확행’에 가까워 관람 후 ‘인스타’에 많이들 올린다”고 전했다. 추사 글씨의 시기별 변화를 알 수 있게 나란히 늘어놓은 패널을 눈여겨보자.
조선 미의 이상을 제시한 초상화
보물 제1973호 신윤복 ‘미인도(美人圖)’
꿈꾸는 듯한 시선으로 옷고름을 매만지는 여인의 초상이다. 머리에 얹은 가체와 꼭 끼는 저고리, 풍성한 치마는 조선 후기 미의 상징이었다. 마노 노리개와 저고리 안고름의 붉은 색이 담담한 화면에 생동감을 더한다. 치밀한 심리 묘사와 매끈하고 부드러운 필치, 은은한 담채가 어우러진 수작이다.
신윤복(1758~1813 이후)은 여성의 풍속을 많이 그렸던 도화서 화원이다. 이 작품은 여인의 전신을 초상처럼 보기 드물게 그려 19세기 화가들이 미인도의 전형으로 본받았다. 베일에 싸였던 신윤복의 삶을 두고 한동안 대중문화에서 다채로운 상상력이 쏟아지면서 이 미인도가 혜원의 자화상이라는 파격까지 나온 바 있다. 전시 때마다 인기가 높지만 이번에도 ‘모나리자’ 못지않게 치열한 관람 경쟁이 예상된다.
한양의 명소, 청풍계의 수려함
보물 제1952호 정선 ‘청풍계도(淸風溪圖)’
청풍계는 인왕산 동쪽 기슭 골짜기로 현재의 청운동에 해당한다. 15세기부터 장동 김씨 문중이 터를 잡았고 1608년 김상용(1561~1637)이 별장을 조성했다. 김상용이 병자호란 때 순절하자 이곳이 충절의 상징이 되어 1708년에는 그의 사당인 늠연사(凜然祠)가 세워졌다. 정선은 화면 중앙에 우뚝 솟은 전나무와 상단의 절벽을 힘 있게 표현하여 장소의 중요성을 강조한 듯하다.이 그림은 청풍계가 한 가문의 공간에서 18세기 후반 한양의 명승명소로 의미가 확대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부드럽고도 날카롭게, 추사체의 개성
보물 제1979호 김정희 ‘차호호공(且呼好共)’
중국 한나라 때 새긴 ‘축군개통포사도각석(君開通褒斜道刻石)’과 같은 쓰촨성 금석문을 탐구하여 예스럽고 굳센 필의를 살렸다. 고증학자의 태도로 고대 필적을 연구해 자신의 것으로 녹인 추사다운 작품이다.
1747년 금강산 유람 후의 서화첩
보물 제1949호 정선 ‘해악전신첩’의 ‘삼부연(三釜淵)’
정선은 금강산을 몇 차례 방문하고 같은 주제를 여러 번 그리며 자신만의 구성과 화풍을 이루었다. 1747년에 제작한 화첩에는 금강산과 인근 명승명소를 그린 21점의 그림과 함께 이병연의 시, 당시 강원도 관찰사였던 홍봉조가 쓴 김창흡의 시가 실려 있다. 각 장소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구도와 강하고 활달한 필치, 물기 많은 먹의 능숙한 사용 등 정선의 원숙한 화법이 잘 나타나 있다. 삼부연은 강원도 철원군 용화산에 있는 높이 20m의 폭포다. 절벽에 가마솥같이 생긴 곳이 상중하 세 군데 있다고 하여 삼부연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정선은 물기가 많은 붓으로 폭포 양쪽 절벽을 과감히 쓸어내려 실경의 특징을 잘 전달했다.
18세기 문인들이 꿈 꾼 은거의 삶
보물 제1953호 정선 ‘여산초당도(廬山草堂圖)’
중국 명산 여산에서 초가집을 짓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은자(隱者)의 모습을 그렸다. 은자가 사는 공간은 고요해 보이는데, 둘러싼 산의 형세가 강렬하다. 짙푸른 산수 속에서 초가집 난간, 학의 머리, 동자 짐보따리에 사용된 붉은색이 생기를 불어넣는다.
중국 고사를 빌려왔지만 그림 속 주인공을 조선의 문인으로 표현했다. 초가집, 울창한 대숲, 연꽃이 만발한 연못, 앞뜰에서 유유히 노니는 학 등은 조선 18세기 문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품격 있는 은거 생활을 보여준다.
절벽처럼 웅장한 추사의 필획
보물 제1980호 김정희 ‘침계(梣溪)’
‘침계(梣溪)’ 두 글자와 발문 및 두 개의 인장으로 이뤄진 서예 작품이다. ‘침계’의 필획은 절벽처럼 거칠고 웅장한 느낌. ‘침계’는 윤정현(1793~1874)의 호다. 그의 부탁을 받은 김정희가 예서로 된 ‘침’자를 한나라 비석에서 찾을 수 없어 30년을 고민한 끝에 예서와 해서의 필법을 혼용하는 파격으로 썼다고 한다. 옛 비석의 글자를 연구하여 스스로 해법을 찾은 끝에 이뤄진 추사체의 파격과 강건한 기세를 대표하는 글씨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새 보물 납시었네’ 간송미술관 유물 22건 교체 전시 일정 | ||
전시 일정 | 지정 번호 | 문화재 명칭 |
7.21.(화)~8.11.(화) | 보물 제1986호 | 〈심사정필촉잔도권〉 |
※ 8.12. 이후 영인본 전시 | ||
보물 제1951호 | 〈정선 필 풍악내산총람도〉 | |
보물 제1970호 | 〈김홍도 필 마상청앵도〉 | |
보물 제1949호 | 《정선 필 해악전신첩》 〈화적연〉, 〈정양사〉 | |
보물 제1950호 | 《정선 필 경교명승첩》 〈독백탄〉, 〈녹운탄〉 | |
보물 제1971호 | 《김홍도 필 고사인물도》 〈무이귀도〉, 〈황정환아〉, 〈융봉취하〉 | |
보물 제1987호 | 《김득신필풍속도화첩》〈야묘도추〉,〈주중가효〉 | |
보물 제1978호 | 〈김정희 필 대팽고회〉 | |
보물 제1969호 | 《이광사 필 서결》 1·2면 | |
보물 제1982호 | 《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 1·2면 | |
보물 제1984호 | 《이정 필 삼청첩》 〈형란〉, 〈연죽〉 | |
보물 제1983호 | 《김정희 필 난맹첩》 〈세외선향〉, 〈수식득격〉 | |
8.12.(수)~9.3.(목) | 보물 제1986호 | 〈심사정 필 촉잔도권〉(영인본) |
보물 제1952호 | 〈정선 필 청풍계도〉 | |
보물 제1973호 | 〈신윤복 필 미인도〉 | |
보물 제1949호 | 《정선 필 해악전신첩》 〈해산정〉, 〈칠성암〉 | |
보물 제1950호 | 《정선 필 경교명승첩》 〈미호〉, 〈우천〉 | |
보물 제1971호 | 《김홍도 필 고사인물도》 〈동산휴기〉, 〈동강조어〉, 〈화외소거〉 | |
보물 제1987호 | 《김득신 필 풍속도 화첩》 〈밀희투전〉, 〈송하기승〉 | |
보물 제1979호 | 〈김정희 필 차호호공〉 | |
보물 제1969호 | 《이광사 필 서결》 3·4면 | |
보물 제1982호 | 《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 3·4면 | |
보물제1984호 | 《이정 필 삼청첩》〈노죽〉, 〈고매〉 | |
보물 제1983호 | 《김정희 필 난맹첩》 〈적설만산〉, 〈이기고의〉 | |
9.4.(금)~9.27.(일) | 보물제1986호 | 〈심사정 필 촉잔도권〉(영인본) |
보물 제1953호 | 〈정선 필 여산초당도〉 | |
보물제1972호 | 〈김홍도 필 과로도기도〉 | |
보물제1949호 | 《정선 필 해악전신첩》 〈화강백전〉, 〈삼부연〉 | |
보물제1950호 | 《정선 필 경교명승첩》 〈장안연월〉, 〈빙천부신〉 | |
보물제1971호 | 《김홍도필고사인물도》〈오류귀장〉,〈서호방학〉 | |
보물제1987호 | 《김득신필풍속도화첩》〈성하직구〉,〈목동오수〉 | |
보물 제1980호 | 〈김정희 필 침계〉 | |
보물제1969호 | 《이광사 필 서결》 5·6면 | |
보물제1982호 | 《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 5·6면 | |
보물제1984호 | 《이정 필 삼청첩》 〈우죽〉, 〈난죽〉 | |
보물제1983호 | 《김정희 필 난맹첩》 〈운봉천녀〉, 〈산중멱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