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만화로 본 세상]윤필의 <다리 위 차차>
239 0
2018.09.19 12:25
239 0

[만화로 본 세상]윤필의 <다리 위 차차>

기사입력 2018-09-19 09:42

ㆍ다리 위 ‘자살방지로봇’ 차차가 살아가는 법

CHA-88K는 다리에 앉아 있다가,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이 찾아오면 상담해 돌려보내는 일을 한다. ‘자살방지로봇’의 도입은 초기에는 아주 성공적으로 보였다. 환호하는 대중에게서 CHA-88K는 ‘차차’라는 이름을 얻는다.

만화가 윤필은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가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은 우리 사회 곳곳의 갖가지 불합리하고 부정의한 모습을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매 작품마다 참신한 접근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언제나 그는 작고 여린 것들에 대한 애정을 담뿍 표현해 왔다. 현재 연재 중인 〈다리 위 차차〉(윤필 글, 재수 그림, 저스툰) 역시 윤필의 이러한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밀도는 더욱 높아졌고, 재수 작가가 연필만으로 그려낸 그림은 이 따뜻하고도 서늘한 이야기의 결을 한층 더 살려줘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0000038006_001_20180919094205053.jpg?typ
윤필 작가가 쓰고 재수 작가가 그린 만화 의 한 장면. | 저스툰

‘세금 먹는 기계’로 비난받는 차차



근미래의 한국 사회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확산되었다. 특히 복지서비스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자살방지로봇’이 도입된다. 순한 얼굴의 사무직 여성 모습을 한 모델명 CHA-88K의 일터는 ‘자살명소’로 유명한 바로 그 다리다. CHA-88K는 다리에 앉아 있다가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이 찾아오면 상담해 돌려보내는 일을 한다. ‘자살방지로봇’의 도입은 초기에는 아주 성공적으로 보였다. 환호하는 대중에게서 CHA-88K는 ‘차차’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러나 자살은 방지된 것이 아니라 유예되었을 뿐이었다. 애초에 자살을 결심한 이들의 고통은 잠깐 이야기를 나눌 상대를 찾는 것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팽팽하게 당겨진 실이 끊어진 순간, 자살 행렬이 급증한다. 차차는 ‘세금 먹는 기계’로 비난받는다. 차차는 프로그래밍된 대로 수행했으나 기대하지 않은 결과 앞에서 당황한다. 그의 다음 행보는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외적인 모양·태도·목소리의 높낮이 등을 바꿔보며 이유를 찾아보지만, 실패한다. 점차 도시의 기능 변화로 차차가 있던 다리는 사람이 찾지 않는 곳으로 바뀌었다. 차차는 다리 위에 홀로 남겨진 채 잊힌다.

그런 차차를 쭉 지켜보던 인공지능분야의 선구자이자 천재인 박사 B는 수년 뒤 버려진 차차에게 다른 로봇과의 ‘무한동기화’ 권한을 준다. 몸은 다리 위에 남겨진 채로 차차는 로봇들의 눈을 통해 세상 곳곳을 촘촘히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차차는 인간사회의 온갖 부조리와 부정의를 마주하게 된다. 가장 먼저 목격한 것은 참혹한 아동학대의 현장이었다. 어렵사리 도망치려던 아이가 다시 아버지에게 붙들리던 순간 차차는 눈을 감는다. B는 차차에게 묻는다. “어떻게 할 건가. 계속 이어갈 건가.”

나는 수년 전부터 참사의 유가족, 국가폭력의 피해자와 같이 사회적 고통을 겪는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을 꼽자면 이것이 아닐까 싶다.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듣는 일이 괴롭지 않나요? 어떻게 그걸 견디나요?” 처음 들었을 때는 기록자의 수고를 다독여주려는 마음이 감사했다. 그러나 비슷한 질문을 여러 번 만나면서 어쩐지 마음 한구석에서 불편함이 자라났다. 그것은 두려움과 회피하고 싶은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아픈 이야기를 외면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의 ‘가슴 아픈 사연’은 미디어가 좋아하는 이야깃거리이기도 하다. 고통은 일상적이지 않으며 감정을 자극하므로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아마도 사람들이 고통에서 눈을 돌리기 시작하는 건 그 고통이 스쳐지나가는 잠깐의 풍경을 넘어, 복잡한 이야기를 걸어오기 시작할 때가 아닐까.

사회적 고통 앞에서 우리는 그 거대함에 압도된다. 거대함이라는 말은 피해의 물리적 규모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고통은 한 존재를 사물화하거나 차별하는 사회적 제도, 국가나 자본 등 거대권력이 가하는 유무형의 폭력이 발생시킨 고통이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앞에서 피해자는 모멸감과 무력감, 수치심을 몸에 새긴다. 사회적 언어는 권력을 가진 이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짓밟히는 이들은 고통을 설명할 언어조차 갖지 못한다. 피해자는 고통을 고통이라 말하는 일부터도 투쟁해야 한다. 폭력은 복잡한 구조 안에서 작동하며 때로는 폭력이라는 인식조차도 없이 행해진다.

사회적 고통이 구조의 문제라는 것은 고통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하는 데 지난하고 힘든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의미한다. 사건을 발생시킨 책임자를(구조를) 당장 모두 알기는 어렵다. 사건을 다각도로 조사해야 하고, 새로운 개념이나 인식적 도구를 찾아내야 하기도 한다.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은 권력을 점한 이들 사이에 있으므로 진실을 파헤치려는 노력을 저지하기 위해 애쓴다.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안다고 해도 처벌하기는 어렵다. 이 비인간성, 부정의의 거대함이 우리를 압도한다. 그 순간 눈을 질끈 감고 싶다.

로봇이 걷는 ‘인간’의 길

참혹한 이면을 목격할 것인가, 안온한 이곳에 머물 것인가. 그 갈림길에서 차차의 선택은 고개를 돌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 결과 차차는 깊이 상처 입는다. 차차에게 세상을 보여준 B는 인간사회에 일찌감치 냉소적이었다. 그는 그가 만들어낸 특수한 기술을 통해 차차가 인간사회를 재구성하길 바란다. 인공지능의 개입을 통한 인간사회의 재구성은 현재까지의 연재분에서 아직 그 내용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인간들 입장에서는 그리 긍정적인 일은 아닐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차차는 인간에게 깊이 상처 입고도, 그 갈림길 앞에서 망설인다.

이 대목에서 나는 최근에 만난 한 여성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30대인 그녀는 전남 신안의 한 섬에 있던 시설에 갇혔다가 탈출한 지 4년째이다. 폭력이 난무하고 자유의지가 박탈된 그곳에서 그녀는 마치 첩보작전을 하듯 밤을 이용해 몰래 장애인권활동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드디어 그녀가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들이 어렵사리 배를 타고 그녀에게 당도했다. 그때 그들이 건넨 첫인사를 그녀는 늘 눈물과 함께 추억한다. “많이… 기다렸죠?”

시설을 나온 그녀는 자립생활을 시작했고, 시설은 얼마 뒤 그간 저질러온 각종 비리가 세상에 폭로되어 폐쇄됐다. 시설에 갇힌 그녀의 손을 잡았던 이들은 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갇힌 삶’이며, ‘장애인도 사회 속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다.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따지는 태도로 사람을 대해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이 사람들은 마치 밀려오는 해일 앞에서 작은 돌담을 쌓아올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냉소는 쉽다. 포기하는 건 더욱 쉽다. 나야말로 참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고통을 기록하는 일에 마음을 빼앗긴 것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기록은 차차에게 부여된 ‘무한동기화’의 권한과 같다.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통로라는 점에서 통한다. 그것은 다치고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쉽게 삶을 짓밟는 욕심투성이의 세상과 맞서 싸우는 ‘거대한’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수없이 부서지면서도 다시 서로의 곁을 세워나가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내동댕이친 마음을 다시 주워 모으고 부끄러운 얼굴을 닦는다.

갈림길에 선 차차는 어느 쪽이든 ‘사람을 살리는 길’을 택할 것이다. 차차를 움직인 것은 죽어가는 이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목숨의 가치를 판별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차차의 쌍둥이 같은 또 다른 로봇 ‘아이’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박희정 기록활동가
목록 스크랩 (0)
댓글 0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영화이벤트] 세상의 주인이 바뀌었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예매권 증정 이벤트 333 04.24 36,739
공지 ▀▄▀▄▀【필독】 비밀번호 변경 권장 공지 ▀▄▀▄▀ 04.09 574,276
공지 공지접기 기능 개선안내 [📢4월 1일 부로 공지 접힘 기능의 공지 읽음 여부 저장방식이 변경되어서 새로 읽어줘야 접힙니다.📢] 23.11.01 3,041,337
공지 비밀번호 초기화 관련 안내 23.06.25 3,830,341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0.04.29 20,320,075
공지 성별관련 공지 (언급금지단어 필수!! 확인) 16.05.21 21,322,975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43 21.08.23 3,415,567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17 20.09.29 2,255,086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344 20.05.17 2,970,484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53 20.04.30 3,535,095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글쓰기 권한 포인트 상향 조정) 1236 18.08.31 7,910,524
모든 공지 확인하기()
2392741 기사/뉴스 대구 박정희 동상 조례, 시의회 상임위 통과… 시민단체 반발 2 15:02 56
2392740 유머 카페에서 갑분조 ( 갑자기 분위기 조용함 ) 가 될때 3 15:01 561
2392739 팁/유용/추천 오늘자 푸바오🐼 14 15:00 530
2392738 이슈 닮은 연예인들 많다는 여자 솔로가수& 걸그룹 멤버.jpg 5 14:59 371
2392737 이슈 아직도 올라오는 중인 하이브 언플.jpg 37 14:58 2,058
2392736 이슈 민희진-하이브간 주주간 계약(경업금지조항)의 핵심을 관통한 것 같은 댓글 71 14:58 3,869
2392735 유머 막내는 아빠 닮았네 8 14:56 1,001
2392734 기사/뉴스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안 본회의 상정 의결 18 14:56 585
2392733 유머 요즘 군대 2년 갔다왔다고 하면 듣는 말 10 14:55 1,503
2392732 유머 과거에 돌덕질 한 사람들 비번 여기 있음 21 14:54 1,030
2392731 이슈 바다 신곡 뮤비에 출연한다는 S.E.S 유진 근황 14 14:53 1,577
2392730 유머 하이브 민희진 기자회견도 예견한 무한도전 26 14:51 2,865
2392729 정보 민희진이 이 친구로는 뭘 해볼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하게 만들정도로 예뻤던 뉴진스 민지 36 14:50 4,689
2392728 이슈 현재 유튜브 인기급상승 Shorts 1위 46 14:48 5,242
2392727 이슈 (여자)아이들 우기가 풀어준 뮤비 속 빨간머리.jpg 14:47 430
2392726 유머 어느 타코집 사장님의 ㄷㄷ한 스펙 8 14:46 2,559
2392725 유머 찐따가 성공을 만나면......x 9 14:45 1,592
2392724 이슈 지금 보니 진짜 다시 보인다는 민희진 내부 문건 내용....... (feat.궁극적으로는 하이브를 빠져나간다) 303 14:43 21,021
2392723 기사/뉴스 'SF9 탈퇴' 로운 "배우 전향, 리스크 알았다…내가 감당하고 증명해야"('목요일밤') 20 14:43 2,204
2392722 이슈 남초에서 선조로 비유되고 있는 방시혁 18 14:42 4,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