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우리나라의 전쟁 역사에서 전투용 낫의 비중이 크다는 사실.
뭐 고증이 만족스럽지 않은건 다 예산 문제 탓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전투용 낫의 전성기는 삼국시대였다. 변변한 상비군이 없던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에서
일단 농사짓던 백성들을 징집해서 쓰다보니 손에 익은 낫을 주로 쥐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낫을 든
백성은 평소에 손에 익기 때문에 창칼을 훈련시키는 것 보다 바로 실전 투입이 가능했다.
공주 하봉리 유적에서 출토된 한국의 크고 우람한 전투용 철낫,
자세히 저 낫의 밑을 보면 뾰족하게 나와 있는 철재의 무언가가 보일 것이다.
이것은 물미라고 하는 것인데, 창과 같은 무기를 땅에 꽂을 때를 위해 장착되어 있는 것이다.
즉 이건 땜방용 즉석 무기가 아니라 당당한 전투용 무기로 생산된 것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낫의 유틸성은 기병을 상대할때 빛이 났는데 도검보다 우수했다.
보병들은 근접한 기병을 낫으로 끌어당겨 낙마시키거나 아예 말의 다리를 낫으로 손쉽게 자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