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전역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집에서 〈무한도전〉을 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어디를 좀 같이 가자시는 거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무한도전〉 보는데 방해하는 거지만, 왠지 모르게 그날은 따라가야만 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아빠 친구의 어머니가 우리 옆 동에 사는데 연락이 안 된다고 좀 가 봐달라고 하더라.”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뭔가 굉장히 복잡한 문장이었다. 아빠 친구는 누구고, 그 친구의 어머니는 누구고, 그 사람이 우리 옆 동에 살았다니 금시초문이고, 연락이 안 된다는 건 어떤 식으로 연락이 안 된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뭔가 이상한 느낌만 갖고 쫓아갔던 것 같다. 그리고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면제인 아버지보다는 얼마 전에 전역한 예비역 병장이 조금 더 쓸모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딩동.’
‘딩동, 딩동, 딩동.’
아무도 없었다. 발로 문을 쾅쾅 걷어차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안쪽에서는 대꾸가 없었다. 할머니가 그냥 어디 놀러 가신 거 아니냐고 물었지만, 아버지는 쉽사리 대답을 내놓지 않으셨다. 그리고 친구분에게 전화를 걸었고, 열쇠공을 불러도 된다는 허락을 받으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열쇠공이 왔다.
“집주인이세요?”
“아니요?”
“그럼요?”
“집주인의 딸의 친구의 아들인데요?”
“네?”
“그리고 이분이 집주인의 딸의 친구입니다.”
열쇠공은 알 수 없다는 식의 표정을 지었고, 아버지 친구분과 통화를 하신 뒤 문을 열어주기에 이르렀다.
‘끼익’
문이 살짝 열렸다. 불은 켜져 있었지만, 어둑어둑했다. 형광등을 갈 때가 되었나 싶었다. 옛날 우리 할머니 방 냄새 같은 것이 나기도 했다. 문을 살짝 열어도 인기척이 없는 것을 보니, 집 안에 사람이 없는 것도 같았다. 혹여나 만약 그랬을 때는 열쇠공에게 면목이 없겠다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곧이어 문이 활짝 열리고 정면으로 불이 켜진 화장실이 보였다.
…
아버지와 나, 그리고 열쇠공은 몇 초간 말이 없었다. 화장실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는 노인을 보고 쉽게 입을 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했다. 열쇠공은 문득 아버지가 지갑에서 빼 드신 현금 몇 장을 받아 넣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냉큼 걸어 내려갔다. 아버지를 쳐다봤다. 생각을 하고 계시는 듯했다. 그리고 난 그 순간이 어쩌면 그리 많은 생각이 필요한 상황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했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 화장실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남의 집에 들어가면서 신발도 벗지 않았던 걸 보면 뭔가 이상한 느낌을 본능적으로 받았던 모양이다.) 열 걸음 남짓 되는 거리였다. 이변이 없다면 이분이 아빠 친구의 어머니일 테고, 머리 옆 배수구에는 피가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피를 흘리고 계시는데. 119에 신고해야 될 거 같은데?”
현관 앞의 아버지는 신고를 하시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할머니의 발로 시선을 옮겼다. 손을 갖다대니 차가웠다. 뭔가 많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옷을 젖혀 등을 만져보았다. 따뜻했다. 옷에 싸여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아직은 큰일이 일어난 건 아니라는 걸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관통했는데, 사실은 생과 사, 그 두 단어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던 것 같다.
“돌아가셨습니다.”
경찰관과 구급대원이 할머니를 살핀 뒤 말했다.
“화장실에서 쓰러지시면서 머리를 바닥에 부딪힌 모양입니다.”
널브러진 성인용 보행기와 미끄러운 타일 바닥, 그리고 배수구로 흘러가던 핏줄기. 정황상 경찰관의 말은 믿을 만한 것이었고, 난 그 자리에서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살면서 처음 만난 분의 상태가 죽음이라는 것이 여간 충격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순식간에 찾아온 삶의 끝에서 할머니가 그리워했던 사람이 적어도 나는 아니었을 텐데, 그분의 끝을 처음 마주한 게 나라는 것이 송구스럽고 죄송스럽기도 했다.
밤이 되었고, 아버지와 나는 장례식장을 찾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난 지금도 할머니 얼굴을 모른다. 본 것이라곤 곱슬하게 파마가 된 할머니의 뒷머리 모습이 전부였고, 영정 사진도 본 적도 없으니 당연한 노릇이다. 마침 아버지의 친구분이 병원 밖으로 나오셨고, 내 손을 잡고 고맙다며 울었다. 나는 “아닙니다”를 연발했다. 정말이었다. 내게 고마울 것이 없었다. 난 심지어 할머니 얼굴도 모르는데, 되레 내가 죄송하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처음 가보는 곳에서 휘몰아친 몇 분의 폭풍. 누군가에게는 비극이고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고 누군가에게는 갑작스러운 충격이었던 그 짧은 순간. 스물둘의 나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에 많이 어렸던 것 같다. 그다지 슬프지도 않았고, 오히려 살면서 쉽게 겪어볼 수 없을 것 같던 그 순간에 흥분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에 와서야 그 순간이 엄청난 비극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난 정말로 그때 아버지의 친구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친구분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무엇이 그렇게 고마우셨을까. 알 수 없지만, 그때의 나는 그 일련의 사건들을 온몸으로 튕겨내고 있었다고, 이제 와서 당신의 슬픔에 조금이나마 공감한다고, 정말 죄송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 박정민 배우 '언희' 글을 슼에 매일 하나씩 올리고 있으니 궁금한 덬들은 검색하면 지금까지 내가 올린 글 나올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