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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짝사랑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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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8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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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선생님이었어. 
20대 후반? 
이제 생각해보니 그 땐 나이도 정확히 몰랐었네. 
처음엔 그냥 ‘늘 거기 있는’ 선생님으로 밖에 생각 안했어. 
초5 였던 나는 친하게 어울리는 무리가 있었는데 
우리들끼리 그 사람한테 엄청 짖궂게 장난을 많이 쳤어도 한번도 짜증을 내거나 화낸 적이 없었어. 
친구들하고 난 찬양대여서 오전에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먹고 나면 
꼭 다음주에 할 찬양을 연습하기 때문에 교회 주변에서 신나게 놀다가 다시 초등부실로 돌아왔었어. 
일요일은 그냥 하루종일 교회에 있는 것이 당연했지. 
그 사람도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하느라 연습을 하다가도 불쑥불쑥 초등부실에 나타나곤 했는데 
하루종일 자주 보는데도 왠지 모르게 너무 반가운거야. 
마냥 기분이 좋았어. 
또 장난칠 궁리를 하느라 그랬을까. 
여튼, 그렇게 나를 웃게 만드는 그 사람을 조금씩 좋아했어. 

당시 내가 찬양대원에 임원 역할도 했었는데 어느 날 초등부 전담 전도사님이 임원 애들만 모아서 
기독교 관련 어린이 뮤지컬을 보여주시겠다고 봉고차 한 대로 다같이 간 적이 있었어.
그 사람도 인솔자로 동행했지. 
뮤지컬을 볼 때 바로 내 옆자리인거야. 
뮤지컬 시작하기 전에 날 보고 씩 웃으면서 ‘잘봐~’ 하는데 어? 뭐지?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고 뮤지컬이 눈에 안보이는거야. 

그 순간이었어. ‘좋은 선생님’ 에서 ‘좋아하는 선생님’ 이라고 깨달은 게. 

어떻게 뮤지컬이 끝났는지 기억은 안 남고 그렇게 다시 봉고차에 올라타서 교회로 돌아왔는데 저녁 시간이었어. 
친구들은 다 교회 주변에서 사는데 나는 차로 20분 거리에 살고 있어서 나만 따로 데려다줘야 하는 상황이었어. 
그래서 전도사님 개인 차로 가게 됐는데 나 데려다 준 다음에 그 사람도 내려주겠다고 해서 뒷좌석에 나랑 그 사람이 또 나란히 타게 된거야. 
근데 이미 난 좋아하는 선생님이란 걸 인식해버렸으니 마음이 그 전같지 않은거야. 
그 때의 그 긴장감, 콩닥콩닥거렸던 떨림이 아직도 생생해. 
그런 내 마음을 알리가 없는 그 사람은 아까 본 뮤지컬 이러이러한 부분이 좋지 않았냐면서 생글생글 웃고..
그러다가 갑자기 배가 살살 아프다면서 슬며시 내 어깨에 기대는거야. 
어깨에 기대는 순간 내 몸이 경직되는 느낌을 처음 알았어. 
뭐라 장난스러운 말을 꺼내야 하는데 그것도 마음처럼 안되고, 그냥 그 자세로 가만히 있었어.
솔직히.. 그대로 오래오래 있었으면 했어.
집 앞에 다 와서 차에서 내렸는데 ‘늦은 시간인데 안되겠다, 엘리베이터까지 같이 가줄게.’ 하면서 정말 엘리베이터까지 데려다주는거야. 
그러면서 자기 폰 번호를 알려주고는 자기 전에 문자하라고.. 

그 땐 모토로라 시절이라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받는 기다림이 지금의 톡 어플과는 좀 달랐어. 
공감 못할수도 있겠지만 난 그렇더라. 
한번 보내놓고 폰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답장 왔을 때 열어보는 그 기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미치도록 떨리더라구.
아, 그 날 밤엔 살짝 통화도 했어.
무슨 배짱인진 모르겠지만 내가 걸었어. 
집에 잘 들어가셨냐고. 통화는 그리 길지 않았어.

수련회 때는, 교회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곳으로 갔어.
갈 때는 다같이 이동했는데 그 사람은 집안에서 장남인데다 그 사람만 신앙을 가진 상태인지라 
아버지 제삿날과 수련회 날이 겹쳐서 집에 가야 한다는거야. 
내심 너무 아쉽지만 잘가시라고 했지. 
당연히 수련회장에 다시 돌아올거라고 생각 안했으니까.
그런데 밤 9시쯤 지나 한창 대강당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옆자리로 불쑥 들어와 앉는거야. 그 사람이었어.
너무 놀라서 내가 어떻게 왔냐고 했더니 제사 마치고 바로 다시 왔다고. 
하루만에 그렇게 왔다갔다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너무 고맙고 반갑고.. 
순간 울컥했는데 안 들킬려고 부던히 애썼지.

발렌타인데이에는 그 사람만 주기엔 너무 티날까봐 전도사님, 다른 선생님들꺼 까지 챙겼는데 
그 사람껀 좀 더 특별히 예쁜 포장지에 담아서 줬었어.
예상보다 더 크게 기뻐해줘서 뿌듯했어.
그래서 화이트데이 때 어떻게든 사탕을 받고 싶은거야. 
사실 나 사탕 별로 안 좋아하는데 진짜 꼭 받고 싶어서 그 사람한테 친구들이랑 같이 사달라고 졸랐어. 
그랬더니 정말 왕사탕을 하나씩 사줬는데 오렌지맛이었어. 
전혀 의미도 뭣도 없는 사탕인 걸 알지만 그 큰 사탕을 꾸역꾸역 먹고 있는 걸 보고 
엄마가 뱉으라고, 그만 먹으라고 한심하게 쳐다보던 게 아직도 생각난다. 누가 줬길래 그렇게 열심히 먹냐고..

그 밖에도 나랑 유독 대화를 많이 하긴 했는지 항상 날 잘 챙겨줬어.
추억거리는 많지만 이미 너무 글이 길기도 기니까 여기까지..
그 사람, 지금은 부목사님이 됐더라. 
그 때부터 신학 공부를 막 시작하던 참이어서 너무 늦지 않나 고민이 많은 것 같더니 정말 목사님이 되셨더라구. 
내가 이사하는 바람에 교회도 떠나게 됐고 자연히 연락이 끊겨서 
한동안 가끔 떠올리기만 했다가 오늘따라 잠도 안오고 자꾸 생각나서 끄적여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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